ε♡з하나님께로..ε♡з/그리스도인의 삶 2501

하나님 앞에 서라

하나님 앞에 서라 라는 찬양의 마지막 부분에는 "누님 앞에 내가 서 있네/주 앞에 내가 서 있네.."라며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찬양의 영어 제목은 입니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내가 주님을 경외함으로 선다"라는 뜻입니다. 주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다른 날로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자의 모습은 대개 하나님 앞에 엎드리거나 무릎 꿇는 것입니다. 저도 많은 시간 많은 예배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무릎 꿇는 기도를 많이 했고 지금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특히 감동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할 때 "하나님 앞에 서 있다"(시편 134:1, 2)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이것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를 그대로 말해 줍니다. 즉 예배할 수 없을 것 같은..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것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것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형 교회의 목사가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가 주님의 진정한 제자들 양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하며 사과했습니다. 사람들을 모으고 감화시키고 리드하는 것에 탁월했던 그는 자기 사역에 실패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좌절감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했다. 우리는 교인들이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했다. 주중에 말씀을 읽고 스스로 영적 훈련을 열심히 하도록 가르쳐야 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면서 하나님과 청중들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교회는 수십 년간 최고의 시설과 첨단의 프로그램 그리고 교회 홍보에 수천만 달러를 사용했지만 성도를 세우는 일에서는 실패했습니다. 교인들을 늘리는 데만 자원..

거룩한 소명감의 옷을 입고..

거룩한 소명감의 옷을 입고.. 스펄전 목사는 자기 교회에서 목사 지망생이 생기면 대개 목사가 되지 말라고 먼저 충고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말려도 기어코 목사가 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면, 그는 그제야 그것이 바로 "거룩한 소명감"이란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소명이 있는지를 확인한 후, 목사가 되는 길을 지도하고 후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거룩한 소명감"이란 "이 길이 아니면 저는 삶의 의미를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라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자신의 삶을 모두 주님이 주신 사명에 쏟아붓는 것이지요. 이렇게 거룩한 소명감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사역자가 아닐까요? 나 역시 신학대 지원자 면접을 맡았을 때, 수험생들에게 소명감이 없으면 아예 처음부터 신학 공부를..

어떤 성화를 이루고 있는가?

어떤 성화를 이루고 있는가? 어떤 영역에서 성화가 이루어져야 할까요? 우리의 성격이 십자가에서 계속해서 수술을 받지 않고 입과 교리로만 성화를 말하는 것은, A. W. 토저의 말을 빌린다면 "종교적 소꿉놀이"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고는 합니다. 성경 지식을 박사 수준인데 태도나 행동이 무례한 사람들 때문에 교회는 골치가 아픕니다. 또박또박 성경에 대해 따지고 물으면서 분란을 일으키기 일쑤이고, 목사의 설교나 성경공부에 대한 지적이나 반박을 밥 먹듯이 하고, 대놓고 다른 성도들의 험담을 일삼기 일쑤입니다. 성화는 성품으로 시작해 일상생활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성화"라고 하면 기도하는 모습,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을 먼저 상상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화로 들어가는 문이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 과거 미국의 한 법원이 음주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는 차의 범퍼에 "이 차의 주인은 음주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습관성 음주 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해 교육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범법자가 두 번째 것을 선택했습니다. 만일 주님이 우리를 향해 다음과 같은 표지를 달고 다니든지 아니면 거듭난 생활을 위한 프로그램에 들어가라고 명령하신다면, 우리는 아마도 모두 두 번째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붙여 주실 표지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험: 나는 교회에 다니지만 지금까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전혀 변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경고: 나는 남의 험담과 이간..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맛볼 수 있는 경험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주어집니다. 우리는 그 경험을 소망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그런데 종종 예배 기획자나 인도자들이 임재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곤 합니다. 어떤 예배 인도자들은 자신이 예배자들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예배 인도자는 예배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리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일 뿐입니다. 예배를 준비하고 인도하는 자들은 예배자들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와 있음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 임..

같은 것과 다른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이는 구별을 뜻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차이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기 위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이웃이 되어서 살아가지만, 오히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다른 것이 거룩함입니다. 겉은 다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이 다른, 선교사적 삶이 거룩함입니다. 선교사적 거룩함이란 자신의 삶의 영역 이상의 영적 영역에서의 거룩함이요, 복음을 중심으로 한 거룩함입니다. 이러한 거룩함은 구별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사실 때,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셨습니다. 평범한 유대인 가운데 유대인으로 사셨고, 그들이 입는 옷을 입으셨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드셨습니다. 하지만 ..

분노하지 않는 삶

분노하지 않는 삶 망가진 세상에서 사노라면 분노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분노하는 것과 분노의 거인 대문에 마음의 기쁨을 잃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들끓는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삶만큼 불쌍한 것도 없습니다. 날마다 이를 갈며 원한을 품고 사는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바로 내려놓음입니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라." 이렇게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고 하는데, 내게는 이것이 더없이 강력한 분노 퇴치법이었습니다. 내려놓음보다 더 강력한 분노 퇴치법은 없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분노는 여느 죄들처럼 기만적이어서, 분노를 표출하면 내가 상황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분노로 우리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동안, 가해자는 어디선가 세상 편하게 휴가를 즐기..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 2011년, 차가 전복되는 사고 순간에 나는 살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나는 온몸의 힘을 빼고 낮은 목소리로 "주님, 저.. 지금.. 죽는 건가요? 잘못.. 했어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봐도 심각한 대형 사고였는데, 나는 상한 곳 하나 없이 뒤집힌 차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아마도 사고 앞에서 진심으로 마음을 드러내 회개하게 하신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렇게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는 것입니다. 사고 뒤 나는 성공 가도를 달리던 일터인 국제백신연구소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강사로 섭외 받은 부산의 코스타 연합 모임에 무조건 가겠다고 했습니..

저주가 변해 축복으로..

저주가 변해 축복으로.. 몇 년 전 그해의 "우크라이나의 영웅"으로 선정된 한 기독교 가정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가장은 젊은 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에이즈에 걸려 깊은 좌절을 경험하다가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하나님께 매달리며 매일 성경을 읽다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이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라는 구절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약 중독자였다가 새 생활을 시작한 자매와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쌍둥이를 임신했으나, 한 아이는 사산되었습니다. 깊은 신음의 강을 건넌 그들은 아무도 입양하려 하지 않는 에이즈 보균 고아들을 입양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자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