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그리스도인의 삶 2501

지금 여기에서 충성하는 사람

지금 여기에서 충성하는 사람 출세와 성공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계속 흔들립니다. 이렇게 하면 더 잘살게 될 것 같고, 저렇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중심이 바른 사람,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분이 오늘 내게 주신 삶의 무대에 충실하게 임합니다. 미래에 내가 어떻게 쓰임 받을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주님 안에서 충실히 보내고, 충성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헛된 꿈을 꾸지 않습니다. 뜬구름을 좇지도, 무지개를 찾아 떠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꿈이 너무 소박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가끔 청소년들을 만나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어떤 아이들은 아예 꿈이 없..

하나님의 벗으로 살아가기

하나님의 벗으로 살아가기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자식이 생기지 않자 하갈이라는 여인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는 결정을 내릴 정도로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과 행함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기어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믿음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행함과 순종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 파트너"가 되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증명했습니다.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야고보서 2:23)으..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 영화에서 절정이 일어나려면 긴장이 있어야 합니다. 긴장이란 형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답이 없는 데서 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크게 비약되는 일들을 "드라마틱하다!"거나 "반전이 있다."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이야기들이 넘쳐 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길을 걸으셨을진대, 하나님이 우리를 늘 만사형통의 자리로만 초대하시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한계 속에서, 고뇌와 절망과 후회와 자책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배우게 하십니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하실까요? 그냥 좋은 것을 주시..

부르심과 택하심의 자격

부르심과 택하심의 자격 많은 신앙인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나열합니다. 부모님이 훌륭한 신앙인이셨다거나, 교회를 다니지 않던 때에도 성경을 읽었다거나, 기독교적 세계관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 속의 자격을 근거로 그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인간적인 배경은 이차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어도 실수할 수 있고, 선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내 구원의 근거가 내게 있지 않음을 알 때,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기준을 근거로 우월감을 느끼거나 상대를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내 속에 있는 요소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나를 향한 사랑과 계획이 나를 거듭나게 만들었기에, 내 삶과 내가 가진 것이 모..

죄를 죄로 느끼는 은혜

죄를 죄로 느끼는 은혜 우리가 사는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성령님이 내주 하십니다. 그런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이 소멸됩니다. 성령님이 소멸된다는 것은 사라진다,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가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의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과 불순종 가운데 있으면 성령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므로 죄를 지은 인간과 동역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소멸된 사람은 영적으로 무기력해지고 활력을 잃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힘이 없고 지치고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깨닫는 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지체..

끝까지 확실하게..!!

끝까지 확실하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예수님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십자가의 원수"(빌립보서 3:18)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척하지만 예수님을 다르고 싶은 마음도, 십자가만 바라보며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 나지 않게 조금씩 십자가에서 벗어나 결국에는 십자가의 반대 방향으로 걷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십자가를 잘 지고 가는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아니라 대충 믿는 사람들입니다. 대충 믿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좋은 자리에 설 때 십자가만 보고..

기도는 도끼다..!

기도는 도끼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기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기도는 도끼다!" 때린 곳을 또 때려야 나무가 넘어가듯, 타인을 위한 기도는 반복되고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영적 어두움이 해결될 때까지 반복해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이 낫고 심란한 영혼이 평안해지며 좌절한 심령이 일어설 때까지 기도로 찍어 대야 합니다. 지속한다는 것은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도기 기도"에는 목양 에너지를 올바로 집중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그를 위해 무엇을 더 기도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이것이 목양자의 영적 감각이 되어 기도에 집중하도록 돕습니다. 빙 둘러 가며 여기저기 한 군데씩 찍어 봤자 나무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지키는 기도는 찍는 데 똑 ..

거룩한 환대의 삶

거룩한 환대의 삶 무엇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든 늘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본자세입니다. 감사가 체질화되어야 하고, 그것이 응집되어 표현되는 곳이 바로 성만찬 예식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빵과 포도주를 주님께 받들어 올리고, 하나님이신 주님은 그 선물을 온전히 받으신 후 우리에게 돌려주어 양분과 힘이 되게 하십니다. 이 신비로운 교환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감사와 나눔의 한 복판에 들어섭니다. 세상에 나가서도 이 감사를 매 순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가 그분이 바라시는 평화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은 우리가 정복하거나 소유하거나 지켜 내거나 악착같이 붙잡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풍성한 선물이기에, 우리..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 회심 이전의 저의 어머니가 어느 날 절에 다녀오시고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너는 '상현'이다. 그렇게 해야 우리 집안이 잘된다고 했다!" 졸지에 이름이 "상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이름은 힘이 없습니다. 이름을 바꿔 불러 보아도 가정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제 이름은 다시 "기채"로 돌아왔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사람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살거나 이름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곤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지명이든 인명이든 특별한 사정이나 사건이 생길 때 이름을 새롭게 붙이거나 변경합니다. 또 하나님이 한 인간에게 특별한 섭리를 펼치실 때 기존의 이름 대신에 새로운 이름을 주시기도 합니다..

순종하는 손과 다리

순종하는 손과 다리 나는 플루트를 연주하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폐의 64%밖에 쓰지 못하고 천식이 심합니다. 왼손 새끼손가락은 남과 비교했을 때 한 마디가 짧다. 십자 인대가 파열된 오른쪽 다리는 한 번 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런 몸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게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나무야, 네가 평생 절뚝거리면서 나를 따라오더라도 나는 네 다리를 정말 자랑스러워할 거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순종하는 다리, 순종하는 손이란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 강함은 순종이구나!" 그래서 나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악기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세계 80여 개국을 다니면서 어떤 때는 하루에 아홉 번 연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