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예림의집으로ε♡з/단장 칼럼 1999

이웃과 화목하고 예배를 드리라

이웃과 화목하고 예배를 드리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즉 당신이 가해자일 때 어떻게 하십니까? 찾아가 용서를 구하십니까? 아니면 미안한 마음에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십니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만고의 진리로 여기며 그냥 묻어버린 적은 없습니까? 예수님은 남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상처를 준 사람들은 마땅히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24). 당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 한 곳에서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물..

용서, 최고의 선물

용서, 최고의 선물 만 달란트 빚을 면제받은 사람의 비유를 기억하십니까? 평생 벌어도 다 갚지 못할 만큼의 막대한 빚을 탕감 받은 직후 그 사람은 무엇을 합니까?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찾아가서 기를 쓰고 돈을 받아내려 합니다. 결국 일이 여의치 않으니까 동료를 옥에 가둡니다. 그러자 만 달란트를 탕감해 준 주인이 대노하여 그 사람을 붙잡아 옥에 가두고 맙니다. 이 비유를 마친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을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18:35). 예수님께 칭찬받고 싶었던 베드로는 "제게 죄를 범한 형제를 일곱 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영적 전쟁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영적 전쟁 다윗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미친 왕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했음에도, 끝까지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긍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선대했고, 적장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다윗은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손과 이웃, 나라의 장래가 형통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어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도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하던 시절, 다윗은 나발이라는 지역 유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부탁을 거절합니다. 이에 다윗은 맹렬히 분노합니다. 나발 가문의 모든 남자를 죽이겠다는..

영혼을 옥죄는 밧줄; 판단과 정죄

영혼을 옥죄는 밧줄; 판단과 정죄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끌려왔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인에게 던질 큼지막한 돌멩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간음한 사람을 처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인을 죽어야 할 죄인, 회복할 수 없는 실패자, 소망 없고 가치 없는 존재로만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기 기준 하나만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결론을 내려 남을 비판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보이는 것으로 전부를 평가합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간음을 했다고? 율법에 돌로 쳐 죽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그럼 그대로 해야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범한 사람의 처지가 어떤지,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킬 가능성은 없는지, 이것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문제는 ..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보는 사람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보는 사람 현재 코로나19로 고생은 하고 있지만 풍부함과 온갖 편리를 누리는 시대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다들 열심히, 그리고 만족하며 사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가슴속 상처까지 없애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내면의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외부적인 억압과 작업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내면이 아픔이 여기저기서 폭발하고 있는 사회 현상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고 숨 가쁘게 살기도 합니다. 또 사회와 국가에 그 책임을 돌리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염려를 달고 살며, 질투와 미움에 매여 있습니다. 삶에 어떠한 의욕도 없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며, 늘 죄책감과 정죄에 시달립니다. 당신은 오늘 수많은 ..

자신을 사랑하기..

자신을 사랑하기.. 사람들 모두 주님을 떠나도 자신은 결코 떠나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 그러나 그 역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배신합니다. 새벽닭 울음소리가 드리자 베드로는 통곡합니다. 아마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나는 배신자야! 아젠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어.. 다 끝났어! 나는 실패자야!"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안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그 당시 다시 어부로 살겠다고 배를 타지만,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는 완전한 실패자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런 베드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승리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저는 두 번 다시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부끄러운 죄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

부적격자 꼬리표 떼기

부적격자 꼬리표 떼기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일에 자신의 약점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약점 때문에 손해 보고 무시당하고 공격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점을 극복하려고 많은 시간과 재정, 열정을 쏟아붓습니다. 현세대 사람들은 상대의 약점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노려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애씁니다. 자신을 위장하고 부인하고 핑계를 대면서 방어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약점을 건드리면, 화를 내고 인생을 비관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결국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 쓸모없는 존재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점을 지닌 사람과 일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책임 못 질 큰소리만 치고 덜렁거리던 ..

질그릇에 담긴 보배

질그릇에 담긴 보배 대부분의 사람은 지식과 지혜, 능력과 명예가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성공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목숨 걸고 실력을 키웁니다. 하나니도 더 배워서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도달하려 애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라고 그 기준에서 자유로울까요?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사도 하면서, 슬그머니 세상의 인재상을 기준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나요? 주님은 사람의 힘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면 반드시 깨어지고 분쟁이 생깁니다. 허무와 실의, 더 큰 절망과 좌절이 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 중 누가 가장 어리석을까요? 더 많은 지식과 능력을 자기 안에서 끌어내려고 시간과 힘을 쏟아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세워주기..

자신을 세워주기.. 당신이 자신에게 가장 많이 들려주는 "셀프 토크(self-talk)는 무엇입니까? 에모토 마사루 박사는 5년 동안 물의 결정체를 사진에 담으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일종의 실험이었는데, 물에게 말을 들려주고 글로 쓴 단어를 보여 주며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놀랍고 신비한 반응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사루 박사는 그 내용을 사진과 함께 책으로 펴냈는데, 그 책이 바로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입니다. 이 실험은 물이라는 한 객체에 행한 실험이지만 참고할만합니다. 어느 나라말이든 상관없이 "사랑, 감사"를 표현한 물의 결정은 아름답고 완전한 육각형이 나타났고, "멍청한 몬, 바보, 짜증 나, 죽여 버릴 거야" 같은 부정적인 표현을 한 물의 결정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

용서하기..

용서하기.. 오늘 다룰 주제 용서하기는 제가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꼭 품고 있는 삶의 주제입니다. 흔히 용서는 과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 지나간 것에 대한 반응이 중에 하나가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미움, 분노, 저주 등과 반대편에 서 있는 감정이죠.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겪은 모욕과 부당한 대우, 억울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늘 그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 부정적인 늪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계속 떠올리며 그 상처를 준 사람을 끊임없이 미워하고, 당시의 느낌을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현재를 과거에 계속 묶어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선택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