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한절 묵상 412

마태복음 13장 11절

마태복음 13장 11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지만(디모데전서 2:4), 천국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비밀이란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리킵니다. 오랫동안 감춰졌던 천국 비밀이 예수님을 통해 계시되었습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죄의 자리를 자처한 이들은 천국 비밀이 선포되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오직 가난한 심령으로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이 그 비밀을 깨닫습니다(마태복음 5:3).

마태복음 12장 28절

마태복음 12장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나무나 지푸라기 같은 땔감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땔감에 불이 붙으면 큰 산을 태울 만큼 큰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땔감과 같은 존재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으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능히 해냅니다. 악한 영을 내쫓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웁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에 성려의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사도행전 10:38). 성령의 능력만이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고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0절

마태복음 12장 20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고대 근동에서는 갈대로 피리를 만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꺾이고 휘어진 갈대로 피리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지만, 실상은 마무 쓸모 없는 "상한 갈대"입니다. 기름을 부어도 타지 않는 "꺼져 가는 심지"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꺾이고 다 타 버린 소망 없는 우리 인생 가운데 오셔서 만나 주시고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람은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마태복음 11장 28,29절

마태복음 11장 28,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우리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없애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인생의 무게는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쉼과 평안을 누리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이들이 누리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십자가의 길을 배우며 따르는 사람에게 주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약속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

마태복음 10장 34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만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몸을 상하게 하는 환부를 째고 곪은 것을 긁어 내야 살 수 있습니다. 새살이 돋아나도록 싸매야 합니다. 복음은 거짓 평화와 감상적인 위로를 거부합니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잘못된 것을 드러내고 치료합니다. 타협 없는 신앙으로 불법에 맞서 성령의 검으로 싸울 때 진정한 평화가 임합니다.

마태복음 10장 8절

마태복음 10장 8절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님은 세상과 다른 원리와 방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세상은 주고받는 교환에 의해 돌아갑니다. 어떻게든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 살리는 일에 가격표를 매기지 않으십니다. 복음은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이런 나눔이 사라졌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됨은 먼저 받은 사랑을 삶을 통해 조건 없이 나눌 때 증명됩니다.

마태복음 9장 33,34절

마태복음 9장 33,34절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바리새인은 율법과 경전의 전문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을 목격하고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귀신의 왕을 의지한다고 비난했습니다. 하나님과 영생에 관한 겸손한 관심 없이 지식만을 추구했기에, 안다는 것이 구원의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한 믿음입니다. 축복은 마음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 17절

마태복음 9장 17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로 담근 술은 발효가 활발합니다. 그래서 신축성이 떨어지는 낡은 가죽 부대에 새 술을 넣으면 터지고 맙니다. 거듭남 없이 옛사람의 모습을 고집하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담을 수 없습니다. 율법의 형식이 아닌 복음의 자유 안에서 행할 때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정도가 아닙니다. 물이 변해 포도주가 되는 것 같은 완전한 변화, 곧 성령으로 거듭난 심령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9장 5,6절

마태복음 9장 5,6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한 전능자 시기에 그분께 어려운 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것도, 죄를 사하는 것도 인간에게는 모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으심을 확증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관심은 육체의 치유에 머물지 않고 더 중요한 영혼의 치유 곧 죄 사함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절

마태복음 8장 1절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사람들은 도망갈 곳을 찾습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며 신랑이라는 산으로 도피합니다(17:4). 하지만 고난을 피해 은혜받는 곳에만 머무는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 많은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현실은 산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