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한절 묵상 412

마태복음 25장 30절

마태복음 25장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난 무익한 종은 왜 슬피 울며 이를 갈았을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잘할걸..'이라는 뒤늦은 후회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쫓겨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의 특징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책망을 받으면 뉘우치기는커녕 원망합니다. 억울해하지 맙시다.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좋은 일꾼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마태복음 23장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올바른 믿음의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을 마실 때도 혹시 부정한 것이 섞일까 봐 헝겊으로 걸러서 먹었습니다. 십일조 규정은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믿음 좋음"을 과시하기에 적합한 재료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그만 한 외식이 또 없었습니다.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정의와 긍휼을 버린 채 행하는 믿음의 과시는 허울만 그럴듯한 위선일 뿐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절

마태복음 17장 2절 "그들 앞에서 변형 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이 산에서 변형되심은 제자들을 위해 하신 일이었습니다. "변형되다"는 "변모하다, 전혀 다른 것이 되다"라는 의미로,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자 신적 존재인 자신을 드러내셨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16:21). 이때 제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변형 사건은 이 믿음을 위해 준비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처럼 그곳에서 안주하려 하기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5절

마태복음 16장 15절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바른 신앙 고백은 제자 됨의 필수 요소입니다. 신적 계시와 신앙 고백은 한 쌍을 이룹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과 인격적으로 만나시고, 각 사람은 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습니다. 동고동락해 온 제자들로부터 흡족한 답을 얻길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답은 받은 은혜에 합당한 신앙고백입니다. 참된 제자의 신앙 고백은 언제나 분명하고 명료합니다.

마태복음 16장 4절

마태복음 16장 4절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시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따랐지만, 이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이해시키고자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들의 고난과 부활을 물고기 배 속 요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꺼이 그들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 주십니다. 믿지 못하는 이들을 변화시키는 최후 표적이 되기를 바라시면서 말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7,28절

마태복음 15장 27,28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가나안 여인은 남아서 떨어지는 작은 부스러기 은혜라도 임하기를 기다리며 끝까지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믿음에 크게 감동하신 예수님은 따뜻한 음성으로 "여자여!"라고 부르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십니다. 끈질긴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킨 여인은 결국 간절한 소원에 응답받았습니다. 겸손하게 끝까지 응답해 주실 것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작은 것이 예수님 눈에는 가장 큰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31절

마태복음 14장 31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의심하다"는 두 가지 혼재하는 상황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는 왜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고 바람에 마음을 빼앗겼느냐는 책망입니다. 믿음의 작은 자는 의심을 이기지 못합니다. 믿음과 의심은 놀이 기구인 시소와도 같습니다. 의심은 그것을 외면한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의심은 믿음을 키울수록 점점 약해집니다. 큰 믿음, 많은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6절

마태복음 14장 1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어두워져 가는 시간, 빈 들, 양식이 없음은 예수님 앞에 모인 불쌍한 사람들이 처해 있는 삶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앞으로 만날 많은 사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고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정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0절

마태복음 13장 30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지상 천국은 온실 속 화초가 아닙니다. 곡식이 가라지와 함께 자라는 것은 지상 천국, 곧 교회의 현실입니다. 악한 세력(가라지)은 정체를 숨기고 교회와 성도를 흔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성과 악은 항상 공존할 것입니다. 하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 날에 곡식 흉내를 내던 가라지를 예수님이 먼저 거두어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에 대해 상과 벌로 보응하시는 주님을 신뢰할 때, 이 땅의 불의를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2절

마태복음 13장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다각도로 가르쳐 주신 후,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해 바르게 가르칠 사명을 맡기십니다. 곳간에 먹을 것을 넉넉히 저장해 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 주는 집주인처럼, 제자들도 천국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풍성히 가르칠 수 있는 서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것과 옛것"을 모두 잘 알아 연결하고 해석해 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옛것"은 구약성경을, "새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