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한절 묵상 412

출애굽기 28장 2, 3절

출애굽기 28장 2, 3절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때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은 아름다운 영화로운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옷을 입는 순간부터 제사장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수행하는 영광의 공직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왕 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9)의 직분을 주시고, "시 사람의 옷"(에베소서 4:24)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새사람의 옷을 입은 사람은 누구나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공직자입니다.

출애굽기 27장 20절

출애굽기 27장 20절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하나님의 성소를 밝히는 등불의 기름은 아무것이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감람으로 짠 순수한(히, 지크) 기름이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불순물이 섞인 부정한 기름으로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기름이 준비되었다면, 그다음은 등불을 끊이지 않게(히, 티미드) 계속 켜 놓는 한결같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정결함으로 준비되어 성실함으로 충성하는 사람에게 거룩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출애굽기 26장 34절

출애굽기 26장 34절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은혜를 모르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증거궤가 놓인 지성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임재하시는 속죄소로 인해 지성소는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 은혜를 상징하는 복된 자리로 바뀝니다. 그래서 속죄소는 시은좌(施恩座) 곧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라고도 불립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출애굽기 26장 14절

출애굽기 26장 14절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거무스름한 해달(혹은 돌고래) 가죽으로 덮인 성막의 겉모습은 너무나 수수하고 평범합니다. 아름다운 색채와 금으로 꾸며진 성막 내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안을 보지 못하고 겉만 훑어보면, 성막은 보잘것없는 텐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으로는 성막의 존귀함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겉에 머무르는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그분에 영광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출애굽기 25장 37절

출애굽기 25장 37절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하나님은 등잔대 위에 일곱 등잔을 두어 "앞"을 비추라 명하십니다. "앞"(히, 파네)은 "얼굴"을 뜻합니다. 등잔은 성소를 밝히는 유일한 빛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제사장이 등잔의 빛으로 나아갈 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몸소 경험합니다. 그 빛으로 얼굴이 환해집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우리 삶을 환하게 비추시는 빛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아 살아가는 성도를 통해 온 땅에 하나님이 전해집니다.

시편 11편 1절

시편 11편 1절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세상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산"으로 도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께 피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세상은 "높은 산"을 주목해 바라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높은 산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제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내 주 하나님이 계신 곳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믿음에 구원이 임합니다.

시편 9편 19, 20절

시편 9편 19, 20절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사람의 삶은 인생(人生)이고 하나님의 생명은 영생(永生)입니다. 영생 앞에서는 천년의 세월도 밤의 한순간일 뿐이며 인생은 티끌로 돌아갈 운명입니다(시편 90:3 ,4). 그래서 인생은 결코 영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인생은 죄인이기에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로마서 3:23) 하나님 영광을 욕되게 합니다(4:2).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인생임을 깨닫고 영생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시편 9편 10절

시편 9편 10절 주님의 이름을 난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처럼 그저 이름만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응답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신뢰요, 주님을 찾는 간절함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분은 내게 구원의 꽃으로 다가오십니다.

시편 8편 2절

시편 8편 2절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어린이와 젖먹이의 입이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을 세울 수 있을까요? 어린이는 항상 "엄마, 아빠"를 입에 달고 삽니다.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엄마와 아빠기 때문입니다. 젖먹이는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시키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을 때, 어린이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만을 의지하는 연약한 자들을 통해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시편 4편 4절

시편 4편 4절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죄인의 속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헛되고 거짓된 것으로 바꾸기를 좋아합니다. 죄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로마서 1:23). 인간은 어리석게도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영광과 존귀를 추함과 더러움으로, 진리를 거짓으로 바꿉니다. 진리 없는 세상은 패역을 진리와 도리로 둔갑시킵니다. 하지만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참된 도리를 깨달아 순리대로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