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한절 묵상 412

사사기 10장 7절

사사기 10장 7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한 민족을 사고파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니 하나님이 그들을 이방인의 손에 파십니다. 하지만 영영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죄인)를 되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속전으로 내어 주셔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3:16).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다시 살게 된 하나님의 소유, 그분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사사기 9장 56-67절

사사기 9장 56-67절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하나님은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신 사람만 사사가 되던 시절,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피 흘려 쟁취하고 불의를 동원해 유지했던 그의 왕권은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 통치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의 도전을 공의로 갚으십니다.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 높아지거나 낮아지지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와 평강을 통해 세워지고 유지됩니다.

사사기 9장 45절

사사기 9장 45절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예배의 자리가 다툼과 죄악의 장소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세겜은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예배했던(창세기 12:6-7. 33:20; 여호수아 24장) 장소입니다. 하지만 아비멜렉은 세겜에서 스스로 왕이 되었고, 가알과 싸워 그곳을 피로 물들였으며, 결국에는 소금을 뿌려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사람이 높아지자 그곳이 황폐한 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높아져야 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사사기 9장 23절

사사기 9장 23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하나님은 진실한 연합을 원하시고 더러운 연합을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은 "거짓말하는 영"(열왕기상 22:22)이고 "어지러운 마음"(이사야 19:14)입니다. 아비멜렉과 세겜이 맺은 계산적인 연합은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에 의해 배반으로 끝납니다. 성령은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신비한 연합을 이루게 하시지만, 악한 영은 사람 간의 경박한 연합을 깨뜨립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과 맺은 연합만이 하나님 앞에서 선(善)입니다.

사사기 9장 4절

사사기 9장 4절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하나님 백성은 신실하게 하나님 왕권에만 충성합니다. 아비멜렉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방탕한(히, 레이크)"은 본래 "헛된"이라는 의미인데, 이들은 상황에 따라 충성의 대상을 바꾸는 변덕쟁이였습니다. 기드온의 권면(8:23)을 잊은 타락한 백성이 거짓 왕권에 그들의 충성을 바친 것입니다. 한결같지 않은 충성은 헛될 뿐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충성"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사기 8장 21절

사사기 8장 21절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은혜"로 시작한 일은 반드시 "찬양"으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초승달 장식"은 미디안 족속이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물건입니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죽인 후 이 장식을 취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시작하신 미디안 전쟁의 "엔딩"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 소리 대신, 경건하지 못한 복수와 이방 문화에 대한 그릇된 동경만을 드러낸 채 막을 내립니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거룩한 끝맺음"입니다.

사사기 7장 18절

사사기 7장 18절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은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이었음에도 하나님의 큰 은총으로 사사사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그 은혜를 잊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잊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기드온을 위하라"라는 명령에서 그 징조를 조금씩 보게 됩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주인공 행세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전도서 12:1).

사사기 7장 2, 3절

사사기 7장 2, 3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전쟁에서 싸울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동안 침입자 미디안을 피해 덜덜 떨었던 이스라엘이지만 기드온의 부름에 장정 32,000명이 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무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많은 숫자는 오히려 그분의 영광을 가리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사기 6장 34절

사사기 6장 34절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출정을 앞둔 장수는 먼저 갑옷을 단단히 갖춥니다. 하나님은 미디안과의 전투에 기드온을 장수로 세우시면서 "여호와의 영"으로 입히십니다(히, 라바쉬). 기드온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은 장수의 갑옷이요 승리의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평범한 사람 기드온은 "여호와의 영"을 입은 후 특별한 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임재는 또 다른 창조 역사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할 때 우리는 새사람을 입습니다(에베소서 4:24).

사사기 6장 31-32절

사사기 6장 31-32절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요아스가 아들 기드온을 위해 한 말에는 중요한 명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참신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알의 제단을 파괴한 기드온의 행동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대신해 싸우는 자로 그렇게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자신의 믿음을 나타낸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