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한절 묵상 412

디모데전서 6장 6, 8절

디모데전서 6장 6, 8절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바울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 "자족"은 자기 능력으로 환경에 저항해 세상에서 자신의 필요와 안전을 스스로 충족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자족"은 세상적인 부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안전함을 찾는 것입니다(빌립보서 4:11-13). 곧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만족하는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의 자족은 자기 능력과 교만에 기반하지만, 성도의 자족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데서 나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9절

디모데전서 5장 19절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장로"는 감독과 같이 교회 지도자를 지칭합니다. 특히 나이 많음을 강조하며, 경험가 지혜가 오랜 세월 축적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지도자는 존경도 받지만 공격도 많이 받는 자리입니다. 성도는 지도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을 들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 두세 증인의 분명한 증언으로 확정될 때까지 모든 판단을 유보해야 합니다(신명기 19:15). 소문에 좌우되지 않고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5-6절

디모데전서 5장 5-6절 바울은 남편과 사별한 일반적 의미의 "과부"를 넘어 "참 과부"에 대해 언급합니다. 참 과부는 세상에 의지할 것이 전혀 없는 자로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그는 세상 향락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야로 기도합니다. 교회는 이렇듯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참 과부를 우선 구제함으로 존대해야 합니다. 이는 성도의 요구 사항(felt needs)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요구 사항(real needs)을 분별해 지혜롭게 나누는 중요한 사역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

디모데전서 3장 6절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새로 입교한 자"란 회 심한 후 교회에 새롭게 들어온 자를 뜻합니다. 이런 자가 교회 지체들과 충분한 사귐이 없이, 그리고 섬김의 경험 없이 갑작스럽게 감독의 직분을 맡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교만해지다"라는 "눈이 멀어서 어리석게 되다"라는 뜻으로, 공동체 지체들의 사정과 속내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지도자(감독)는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생명의 역사"슬 함께한 자라는 공동체의 검증이 필요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디모데전서 1장 15절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괴수"는 흉측하고 섬뜩하게 생긴 짐승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괴수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토스"는 "첫째 가는(first)"이란 뜻입니다. 그의 고백은 자신이 "죄인 중에 첫째 간다"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죄인 됨과 무력함을 철저하게 고백하는 사람일수록 주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필요함을 인정하며 사모합니다(14절). 은혜의 분량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 고백하는 정도에 비례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4절

디모데전서 1장 4절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신화"는 꾸며 낸 상상의 이야기입니다. "족보"는 혈통이나 가계도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흥미진진한 "신화적 족보"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아브라함 묵시록, 모세의 유언, 이사야 승천기, 에녹서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끝없이 시간을 소모하게 하는 망령되고 허탄한 것입니다(4:7). 요즘 내가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몰입하는 것은 생명을 주는 예수님 이야기입니까, 허탄한 세상 이야기입니까?

사사기 20장 47-48절

사사기 20장 47-48절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을 지냈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합니다. 수많은 용사가 죽었고, 살아남은 600명은 광야로 도망해 숨어야 했습니다. 베냐민의 성읍은 불타고 가축은 동족 이스라엘의 손에 진멸당합니다. 마치 이방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진멸(히, 헤렘) 전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종할 때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사사기 20장 13-14절

사사기 20장 13-14절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넘기라는 요구를 거절합니다. 아무리 패역한 일을 했어도 같은 지파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동족인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의보다 인간적 의리를 앞세웁니다. 죄악을 척결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두둔하기까지 합니다. 성도는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는 누룩과 같은 죄를 내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행해야..

사사기 19장 30절

사사기 19장 30절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상태는 하나님의 부재(不在)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하나님 없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그분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으면, 죄는 더 크고 잔인한 악을 쉬지 않고 확대, 재생산합니다. 죄가 장성하도록 내버려 두면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야고보서 1:15). 성도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로마서 12:21).

사사기 18장 31절

사사기 18장 31절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신앙이 침체되면 쉽고 편한 것만 구합니다. 단 지파는 본래 배정받은 땅을 차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무방비 상태의 라이스를 공격해 점령합니다. 또한 멀리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내려가는 것이 힘들어지자 미가가 만든 우상을 섬깁니다. 이는 갈렙이 견고한 성이 있던 헤브론 산지를 믿음으로 정복한 것과 대조됩니다(사사기 1:20; 여호수아 14:12).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담대한 믿음의 싸움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