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그리스도인의 삶 2501

우리가 가진 공동체적 책임

우리가 가진 공동체적 책임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것을 나눌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세워 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또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에 감사하며 주님께 거저 받은 위로와 격려를 거저 나눕니다.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합니다.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남을 용납하며, 한마디라도 상대를 세우는 말을 합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면 자신도 정죄와 판단에 매입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면 누군가는 도 나를 정죄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세우고 소중하게 대하면,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를 나누며 다른 지체들도 경험하기를..

역경 지수와 연단 지수

역경 지수와 연단 지수 인생을 진단하는 데에는 역경 지수와 연단 지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역경 지수는 인생을 풀어 가는 이가 얼마나 수고하고 고생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사람은 많은 사람이 방해하고 힘들게 했지만, 자신의 결단력과 의지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냈음을 자랑합니다. 역경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겪은 역경이 훈장이 되어 자기를 빛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단 지수는 다릅니다. 연단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연단 지수는 역경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는지에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역경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사람의 일로 끝날 것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셔서 마음을 다루시고 인격을 다듬으신 하나님..

주님이 나의 브레인

주님이 나의 브레인 조직이나 공동체에는 뇌 역할을 하는, 소위 "브레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습니다. 브레인의 생각과 제안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돌아갑니다. 브레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로 똑똑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브레인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잘못을 저지릅니다.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고, 논란거리를 만들고,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 대부분 학력이 뛰어난 사람들로, 그 어려운 고시도 통과하고 성공 가도를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자기 머리와 능력을 믿고, 자기가 주도하는 인생은 얼핏 형통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의 브레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친밀한 교제의 축복

친밀한 교제의 축복 하나님과의 교제는 매일매일의 생활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듣는데 시간을 보내게 되면, 섬세하고도 놀라운 변화가 삶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첫째, 경건한 관점을 갖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확실히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지금 여기에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무엇인가 좀 하렴!" 이것이 이 시대에서 행동하라는 친밀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생각의 방식을 영적인 삶에 강요할 때 본래부터 위험성이 있습니다. 너무 자주 우리가 그 믿음을 선언하든지 안 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마구 행동합니다. 사실상, 우리는 교만한 자세로, "좋아요, 하나님. 나는 이것이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위하여 일하고 또 일하겠습니다!"라고 외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교만스러운 모습입니다. 우리 마음의 뒤편에 전통적으로 전해 들어오던 충고가 있는데,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이 이 충고가 성경에 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우리가 강당 중앙에서 수 천명에게 둘러 쌓여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만약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면, 많은 군중들 중에서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더욱이 당신은 결코 다른 사람의 소리를 구별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원칙이 기도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수없이 많은 소리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자녀들은 울며 요구하고, 피고용자들이 요구하며,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 열망합니다. 이 모든 요구들 때문에, 때때로 하나님의 음성이 아주 작아지거나 먼 것처럼 보이는 것이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효과적인 묵상을 하려면 격리된 장소가 요구됩니다. ..

무엇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무엇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왜 살아갑니까? 우리는 왜 교회에서 일꾼으로 봉사하고 섬깁니까? 그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이 마음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살다 보면 슬그머니 다른 생각이 들어옵니다. 내 것을 내세우고, 내 주장을 내세우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삶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짜증과 불평과 불만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에만 집중하면 불평이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훈련하는 조련사들에게는 곡 필요한 도구가 있습니다. 등받이가 없는, 다리가 4개 달린 작은 의자입니다. 조련할 때 사자 얼굴에 의자 다리를 갖다 대면, 사자는 의자 다리 4개 중 어느 다리에 집중해야 할지 헷갈리다가 정신이 혼미해져 조련..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중국 선교를 떠날 때 유일하게 저를 배웅해 준 중국 선교사 출신 후배가 있습니다. 평생 중국 선교사로 살고 싶었으나 막내딸이 일곱 살에 뇌종양 수술을 받게 되면서 중국 선교를 접은 그는, 제가 늦은 나이에 선교사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항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주며 자기가 다하지 못한 선교를 대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편지 봉투를 열어 보니 자신이 중국 선교를 하면서 쓰다 남은 중국 돈과 일곱 페이지의 긴 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편지가 저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며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선교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이 땅을 위한 기도부터 다시 가르쳐 ..

지저스 스푼..!

지저스 스푼..! 어느 권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금수저와 흙수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권사님이 아들을 보며 "우리 아들은 금수저는 못 되고 동수저쯤 되려나.."라고 말하자, 아들이 대뜸 어머니의 어깨를 팔로 감싸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검사님, 정신 차리세요! 저는 지저스 스푼(예수님 수저)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랫동안 "지저스 스푼"이란 말을 묵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금수저도 아니고, 은수저도 아니고, 흙수저도 아닌, 예수님 수저입니다. 인간의 사고에 깊이 은폐되어 있던 부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요즘 부각되면서, 사람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단어로 예민해지고 스스로 화를 돋우고..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 ​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많은 사람이 "떡을 먹고 배부를 까닭에"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한복음 6:26). 오늘날 부모들도 자녀에게 성공을 안겨 주고 떡을 배부르게 먹이실 주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자녀가 어려서부터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고 하면 많은 부모가 떠나갑니다. 나중에 대학에 가서 배워도 늦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에 막혀 있고 세상 가치관으로 살아온 아이가 대학에 가서 새삼 하나님과 그 말씀들이 그리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