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그리스도인의 삶 2501

함께하시는 은혜

함께하시는 은혜 항상 함께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삶의 행복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비록 육신이 함께 있지 않을지라도 정신적으로 누군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크나큰 안정감과 평강이 생깁니다. 육신을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영적 풍성함이 있는 사람에게는 물질적 자원 이상의 자산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세상이 부러워할 부와 권력을 가지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생사고락을 같이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늘 하나님 아버지와 소통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 권능으로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건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임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상대를 완벽하게..

선한 양심을 체크하라!​

선한 양심을 체크하라!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브레이크는 없고 엑셀만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30km로 가다가 100km, 200km로 가속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죽음입니다. 인간이 너무나 쉽게 악행에 무감각해지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심각성을 똑바로 진단하기 원하십니다. 죄는 오염성과 부패성이 강하고 파괴력이 있어 결국은 파멸을 가져옵니다. 작은 죄를 숨기려고 거짓말을 하다 보면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됩니다. 불행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욕망의 수렁에 빠지게 되면 나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죄의 씨앗을 그대로 두면 그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짓고 계속해서 썩어 들어가다가 마침내 생명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선한 양심은 불의..

날마다 회개할 이유​

날마다 회개할 이유 ​ 나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7년 뒤에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즈음 주님이 엄청나게 회개를 시켰는데, 성경을 읽으면 한 말씀 한 말씀이 내 마음을 찔러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대 숙제를 안 했으면서 한 것처럼 엄마한테 거짓말한 일도 회개했습니다. 주님은 아주 작은 것까지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살던 내 실존에 대한 회심이 있었다고 해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회개 기도는 날마다 해야 합니다. 구원받았어도 회개 기도 없이 살아가면 우리 심령이 점점 굳어져서 어느새 양심의 기능까지 마비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왜 여기에 있느냐?

왜 여기에 있느냐?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며 물으십니다. "너는 왜 여기에 있느냐? 왜 예배드리느냐? 네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를 살펴보고 진솔하고 진실하게 질문 하나하나에 답을 하면 하나님께서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분주함, 세상의 염려와 근심에 가로막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를 놓치며 살고 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이 참진리입니까? 예수님이 참 생명입니까? 제 인생 전체를 드려도 괜찮은 분입니까?" 그리고 제 인생을 책임 지시는 예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성경을 통해서 답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참 진..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 오늘날 이 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고 쟁취하는 사람이 큰 자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는 원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희생과 죽음과 무너짐을 통해 낮아짐으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이한 것은 사람이 적어서도 아니고 재정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이기고 쟁취해야 한다는 세상 가치관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아닌 "어린양"의 모습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백석대학교 이우제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세상이 언제나 악을 처단하는 방식으로 선호하는 총칼의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연약함을 통해 이기셨다. 예수님의 방식은 져 줌으로써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힘과 권력으로 세상을 제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어 줌과 희생의 방..

구원의 은혜 안에 뛰놀며..

구원의 은혜 안에 뛰놀며..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심판의 자리임에도 사랑을 선포하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먼저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구원은 심판이 우리를 죽이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과할 수 없어서 심판하시지만, 그분의 자녀를 죄 가운데 그냥 죽게 하실 수 없기에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노아의 방주로, 모세의 갈대 상자로, 성막의 속죄소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로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사랑이 우리 찬양과 예배의 근거입니다. 죄 많은 인생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

말씀대로 사십시오..!

말씀대로 사십시오..! 교회에 다녀도 무엇인가 잘 풀리지 않으면 "성경 말씀대로 해보아도 별수가 없더라."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미성숙한 신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 밑바닥에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의 악한 심리를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을 고의적으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이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인지를 저울에 이렇게 달아보고 저렇게 달아보며 불순종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세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악이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시험하는 경우입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명분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한 초등학교의 교훈을 본 적이 있다. "00 있게, 쓸모 있게!" 그 "쓸모"라는 말이 슬프게 와닿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쓸모"일까? 가족? 학교? 국가? 최소한 자기 자신은 아닐 것입니다. 요즘은 그런 구호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자주 느낍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소리를 내면에서 마주하는 것입니다. "네가 정말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 봐!" 그래서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돈, 외모, 명품, 권력 등.. 그런 것들을 쉽게 얻지 못할 것 같으면, 하다 하다 "성품"이라도 내세우게 됩니다. 자기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시대와 신앙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면..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면.. 하나님이 거대한 일을 하려고 하시는데, 그분이 부르신 사람은 사실 너무도 미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마리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녀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통로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 거대한 약속을 이루어 나가시기 위해 스스로 비천함을 고백하는 이 작은 여인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을 누가복음 1장 38절에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매우 의미가 깊은 일입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한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QT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리아의 수태 고지 본문을 묵상하고 노트에 이렇게 적었는데, 저는 그것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주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주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 한 성도님이 제게 전화를 해서 딸의 병 때문에 가족 모두가 겪고 있는 아픔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성도와 딸이 살아온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데, 저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할 만큼 안타깝고 힘들었습니다. 그 성도님은 왜 자신과 가족에게 이렇게 힘든 일들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끝에는 이렇게 제게 물었습니다. "주님께 제가 알지 못하는 계획이 있겠지요?" 저는 그 성도님이 답답한 현실에서도 주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으려고 끝까지 주님만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의 고백에 오히려 내가 은혜를 받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역시 그 성도를 위한 기도가 간절해졌습니다. 제발 그 가정의 아픔을 치유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