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그리스도인의 삶 2501

깨어 있는 삶의 매뉴얼

깨어 있는 삶의 매뉴얼 깨어 있는 삶이란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기도의 삶이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피 흘리는 분투의 삶이며,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는 전도자의 삶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깨어 있는 심부름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태초부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본심", 아들을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결심",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눈을 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부르심을 받은 심부름꾼입니다. 어제가 지나 오늘이 왔고, 오늘이 지나 내일이 오듯 정말로 종말은 옵니다. "지금 헛되이 보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내일 예수님이 오실 것처럼 살아간다면 우리는 매일매..

마지막 때의 행동 지침

마지막 때의 행동 지침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의 통제 아래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들이 무엇이든, 그 일들이 얼마나 두렵고 혼란스럽든,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곧 오실 것임을 알리는 징조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식구들마저 등을 돌리는 그 적대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주의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조심하라, 복음을 전하라!"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동지침입니다. 장래에 일어날 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계획하시고 진행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난리와 혼란 가운데 살아야 할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

가장 좋은 것을 드립니다

가장 좋은 것을 드립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오시면 우리 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가셨습니다. 주일에 내가 헌금으로 종이돈을 들고 가려니까 할머니가 "너 참 용하다. 그렇지, 하나님께 그렇게 해야지."라고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종이돈을 자세하게 보시더니, "예, 그런데 틀렸다."라고 하셨습니다. 왜 틀렸냐고 물으니 돈이 구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돈을 다리미로 다려 주셨습니다. 그때는 전기다리미를 쓰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풍로를 돌려서 숯불을 피우고 그것을 다리미에 담은 다음, 물 뿌린 손수건을 대서 다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어린 나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돈을 다린다고 만 원짜리가 2만 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이 구겨졌다고 만 원짜리가 9천 원이 되는 것도 아닌데 할..

사랑의 매

사랑의 매 우리는 홍수로 세상이 멸망한 노아의 시대나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롯의 시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죄악이 가득했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사람의 생각과 계획은 항상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기 6:5).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교회 안에서 복음이 아닌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 윤리와 도덕 이야기를 하며 교회를 인본주의로 끌고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온갖 죄악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면서도 자신은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하실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에게 심판과 마지막 때를 생각하며 돌..

복음으로 생각을 넓히라

복음으로 생각을 넓히라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높으신 생각과 우리 인간의 너무나 좁고 낮은 생각의 간극을 점차로 좁혀 가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어긋났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열심은 컸으나, 생각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넓어지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면 오늘날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배워야 하는 것도 결국 생각의 확장입니다. 내 뜻을 관철하는 것에만 급급한 모습에서 생각의 지경을 더 높고 멀리 넓히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에게 십자가는 생각의 지경을 넓혀 주는 도구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좁은 생각으로 그저 평생을 이웃 교회와 경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나를 십자가와 복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 늘 하나님 앞에 있다는 생각, 즉 면전 의식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설교가 예배당 전체에 울려 퍼질 때, 어떤 사람은 푹 자고 또 어떤 사람은 딴생각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 면전에 있음을 의식하는 사람은 경외함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합니다. 기도와 예배만이 아닙니다. 섬김, 봉사, 구제, 전도 등 모든 일에서 하나님 면전에서 행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한 깊은 인식 없이 행하는 사람은 차이가 납니다. 말씀을 듣고 교회를 섬기면서도 마음에 무엇인가 불만이 싹트고 서운함이 자라난다면, 그것은 우리 삶이 하나님 면전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시험에 드셨습니까? 인생의 벼랑 끝까지 내몰리셨습니까? 당신이 잃어버린 것 중 가잔 큰 것은..

따뜻한 제자가 되자

따뜻한 제자가 되자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많은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가장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아이들은 정답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도 "정신 차리자! 공부하자!"라는 말로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은 감동을 받아야 변화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정 상황이 참 안 좋은 아이였습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사건 사고가 많았습니다. 집에 데리고 와서 재우기도 하고 놀아 주기도 하고 수련회 가서 밤새 기도해도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급하게 가 보니, 그 녀석이 여러 사람을 때려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전례가 있어서 쉽게 풀려날 수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피해자들에게 찾아가 사과하며 겨우 합의를 하고 나서야 그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받아들임과 믿음

받아들임과 믿음 많은 사람이 "믿음"은 미래 지향적이며, 이상적인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을 믿음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을 이런 차원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반쪽짜리, 조금 낮은 수준의 이해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기독교의 위대성은 '받아들임"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치 않는 결과, 상황, 그 모든 시간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믿음의 고차원입니다. 이런 믿음의 완성을 보여 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깨어진 마음"이란 이렇게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마음의 모양입니다. 인생을 ..

천국에 전심하라!

천국에 전심하라! ​ 주님이 "남국아, 네가 목회했으면 좋겠어."라고 하셨을 때 나는 고민했습니다. 그 길을 가려면 내 것보다 주님의 것을 더 우선시하고, 물질을 좇지 않아야 하며, 더 얻을 수 있어도 주님이 원치 않으시면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번은 돈을 크게 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의 종이고, 그분이 주신 것으로 이미 넉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질을 얻고 부유해질 수 있어도, 주님의 종은 그 길을 가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목사가 되면 성질도 함부로 못 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교회에 다니면서 내 성질이 반으로 줄었고, 주님의 종이 되면서 완전히 등신이 되었습니다. 내 성질대로 못 살고 재물도 추구하지 ..

돌이켜 깊은 곳으로..!​

돌이켜 깊은 곳으로..! ​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겉을 꾸미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형식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영혼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영성을 외면한 어떤 신학도, 교회도, 신학자도 21세기에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작하지 않은 내면은 황폐해지고 잡초가 돋아납니다. 영성은 외적 활동보다 내면의 작업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외면하면 궁핍해집니다. 영성은 상품처럼 단번에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깊이 성숙시켜 나가지 않아 찾아오는 영적 고갈은 탁한 물을 들이켜 표면적 신앙으로 표류하게 합니다. 깊이 없는 영성은 붕괴의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