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그리스도인의 삶 2501

어떤 순간에도 기도 먼저!

어떤 순간에도 기도 먼저! 한 조사에 따르면 교회 내의 주요 직분자도 보통 하루에 6분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겨우 6분이라니! 이런 형편없는 기도 생활이 큰 문제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5:5). 그리고 그분께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은 "거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5:4). 거함은 곧 기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기도 없이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라는 표현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예수님은 일부러 이 표현을 선택하셨습니다. 기도할 필요가 전혀 없는 분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의 삶은 기도록 가득했..

영적 회복 탄력성

영적 회복 탄력성 "회복 탄력성"이란 심각한 삶의 고난 속에서 다시 일어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삶이 더욱 풍부해지는 마음의 근력을 말합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긍정적이며,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참고 노력해서 끝까지 그 일을 이루어 냅니다. 영적으로도 회복 탄력성이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예배를 준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회복이 필요한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예배자가 되는 것이고, 나아가 이런 예배자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뜻하는 "워십(worship)"은 "가치 있는"이란 뜻의 단어(worth)와 "신분"을 나타내는 단어(-ship)가 합해져 만들어졌습..

십자가가 증거입니다..!

십자가가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은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내게 별 관심이 없으신 듯합니다. 내가 이렇게 부끄럽고 창피한 상황에 놓였는데도, 나를 돌아보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항변합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증거,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을 수 있는 궁극적인 증거 곧 "십자가"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분은 최악의 명예 훼손을 당하셨습니다. 극심한 조롱과 수치를 경험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께서 마치 벌레와 같은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찰스 스펄전의 주석에 따르면, "사람에게 밝힐 때면 몸을 뒤틀 뿐, 어떤 저항의 능력도 없이 다만 고통할 뿐인 존재"..

십자가에서 만나는 참된 나

십자가에서 만나는 참된 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활동 무대인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본질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나고,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희망의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파멸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 운명의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결정된 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우리의 존재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인 변화 이전에 정체성의 변화가 선행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대면하는 "나"는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잇는 내가 아닙니다. 죄의 노예로 평생 살아가도록 ..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할머니와 마지막 이별을 한 후, 내 마음은 후회로 가득 찼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 드릴걸..'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여러 후회가 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마지막에 웃으며 갈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삶의 역사를 "사랑"으로 채운 사람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다른 사람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추구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바보처럼 사랑한 사람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새롭게 마음먹었습니다. "삶의 역사를 사랑으로만 채우자!"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랑만 채우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내 안에 사랑 아닌 것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했..

하나님께 드려진 삶

하나님께 드려진 삶 은평 평화공원에는 한 외국인 동상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로, 한국 전쟁에 참전해 인천 상륙 작전 후 서울 탈환 작전에서 전사했습니다. 참전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그는, 이미 사관학교 교관으로 복무했음에도 재입대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21년 조선에 선교사로 들어와 평양 광성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윌리엄 해밀턴 쇼, 한국 이름으로 서위렴 선교사입니다. 아버지와 이름이 같았던 쇼 대위는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아버지처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휴전 후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는 한국 전쟁 참전을 결심하고 부모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 아내와 저는 앞으로 한국에 가서 선교사로..

예배에 대한 열망

예배에 대한 열망 군목 훈련 첫 주, 훈련생은 저녁에 수요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훈련 목적상 첫째 주에는 모든 종교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통보를 받고 군종 장교 후보생 목사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예배 허락을 받기 위해 훈육관을 거듭 찾아갔습니다. 훈육관은 훈련생이 예배에 참석할 경우 저녁에 쉬는 시간도, 씻을 시간도 없고 예배 후 바로 내무반으로 복귀해야 하며 그 후에 해야 할 일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면 수요예배를 안 가겠다는 말이 나올 만한 조건을 건 것입니다. 그래도 예배만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밥도 먹는 둥 마는 등 하고 훈련 후 씻지도 못하고 흙투성이인 채로 예배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군인 교회 예배당에 들어서는데 그때부터 어찌나 눈물이 ..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두려움과 좌절 속에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너, 나 믿니?"라고 물으십니다. 저는 처음 사역했던 교회에서 갑자기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3년간 교회 대부분의 부서에서 사역했는데, 갑자기 다음 주까지만 사역하고 다른 교회를 찾아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온종일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구직 게시판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들어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아내가 들어와 저의 썩어 있는 표정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래? 혹시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죽었어?" 창피함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지금도 일하시며 그분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비참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다면..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다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는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한 남자가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듬고 있는 조형물이 잇습니다. 그 주인공은 "코르차크"라는 폴란드의 의사이자 작가입니다. 코르차크는 자신의 일을 모두 포기하고 유대인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는 데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에 태워야 한다는 나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때 코르차크는 "우리 아이들이 기차를 처음 타서 무서워하면 누가 손을 잡아 주어야 하지 않겠나? 난 결코 이 아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네."라고 말하며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고, 그들과 함께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코르차크를 역사적으로 가장 위해한 스승으로 여기며 존..

최선의 사람

최선의 사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최고의 사람이 아니라 최선의 사람입니다. 주님은 갈릴리의 어부들을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또 바울과 바나바 등 안디옥 교회의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이 최선을 다할 때, 그들을 세계 역사를 변화시키는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최고가 되려는 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쉽게 불의와 타협합니다. 신앙 양심을 삶의 현장에서 거리낌 없이 저버립니다. 최고를 지향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주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합니다. 최고라고 하는 것, 최고를 추구한다는 것이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적으로 평가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