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그리스도인의 삶 2501

우리에게 필요한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날마다 종종 신앙에 문제가 생길 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시작된 초대교회의 모습을 모델로 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 보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가 다 온전하게 변화된 것일까요?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도 많은 문제와 사건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이기에 무조건 신앙이 자라고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잘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했느냐"보다 "얼마나 했느냐"가 그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에 탁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에 힘쓰며, 덕을 떼고 음식을 먹으며, 찬미..

부활의 증인을 기다리는 사람들

부활의 증인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전도하기 힘든 곳이 "이슬람교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선교하는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약 1,400년간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회심한 사람보다 더 많은 이슬람교도가 최근 10년 동안 주님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꿈과 환상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나고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톰 도일 목사가 쓴 이란 책에 소개돈 이야기입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위험에 직면한 채 2년째 복음을 전하고 있는 하산이라는 전도자가 어느 날 마스크를 쓰고 총을 든 사람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한동안 골목길로 끌려간 그가 도착한 곳은 버려진 낡은 창고였습니다. 10명의 건장한 사내가 그를 둘러서더니, 그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성령 충만을 받은 삶

성령 충만을 받은 삶 제가 주례를 설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신부가 입장할 때입니다.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식장에 들어오면 신랑이 그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신부의 아버지는 잡고 있던 딸의 손을 사위에게 건네줍니다. 그런데 신부의 아버지는 무엇을 믿고 딸을 넘겨준다는 말입니까? 생명을 줘도 아깝지 않은 딸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위에게 맡겨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런 그 손을 놓아야 딸은 신부가 됩니다. 딸을 사위에게 넘겨주어야 결혼을 통해 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자신을 포기할 때만 가능합니다. 약 120명의 사람이 예루살렘의 한 장소에서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은 비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감각 기능이 하나 더 있습니다. 믿음으로 보고 듣고 알게 되는 감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느낍니다. 이 감각이 살아나면 다른 차원의 인생이 열립니다.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믿음으로 보면 보입니다. 삶을 업그레이드하려면 믿음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믿음의 안테나를 올려야 합니다. 믿음의 고성능 수신기를 달면 모든 것이 막힌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리며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는 가운데 보게 됩니다. 인생은 보는 것의 싸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건과 현상 너머, 위기 상황 너머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성령의 비를 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늘 문이 열립니다. 학창 시..

먼저 자신을 다스리라

먼저 자신을 다스리라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평범한 우리와 그다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다스림의 사명"을 받은 우리를 위해 주어진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영역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일터와 각자가 선 영역을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고 있습니까? 자기 유익과 자랑을 위해 통치권을 남용하지는 않습니까? 왕의 권력은 백성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하지만 권력은 가진 자를 타락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자기를 위해 권력을 사용할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권력을 가진 자는 타인을 다스리기 전에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권력이 자기에..

국밥 한 그릇의 사랑

국밥 한 그릇의 사랑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생활이 힘들어졌습니다. 종종 차비조차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할 수 없이 시청에서 일하던 막내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조카가 오면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셨지만, 시청 운전사였던 삼촌도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서였습니다. 찾아간 사간은 대부분 저녁이었습니다. 좁은 기사 대기실을 지키고 있던 삼촌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삼촌은 "높은 분들" 퇴근 시간 체크하느라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신 후 시청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우거지탕 한 그릇을 시켜 주시고는 "어서 먹어."라고 하셨습니다. 그 짧은 말에 눈물이 핑 돌던 나는 우거지탕 한 그릇을 ..

자비로운 정의

자비로운 정의 예수님은 성경의 핵심이 가장 큰 두 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의"이고,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여기서 "정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가차 없는 심판과 정죄를 내리는 무자비한 정의가 아닙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정의는 늘 사랑에 기초한, "자비로운 정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의를 말씀하실 때마다 항상 네 부류의 사람을 빼놓지 않으셨는데, 그들은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우상 신은 항상 강한 자와 편먹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악한 자의 편을 드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

소망이 되는 공정한 심판

소망이 되는 공정한 심판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분노합니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 헛소문이 돌고 오해를 받을 때, 선한 의도가 왜곡될 때 분노합니다. 시간이 지나 억울함이 해결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분노가 되고, 끝 모를 좌절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런데 자신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의를 경험할 때면 분노하며 하나님께 왜 가만히 계시냐고 따집니다. 만약 하나님이 용서와 사랑만 하는 하나님이시라면, 억울해하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왜 억울해하니? 용서하고 ..

모델링 신앙 교육

모델링 신앙 교육 10년 전쯤 캐나다의 어느 청소년 집회에 강사로 참석했을 때, 강의하는 시간 외에는 학생 상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담했던 몇몇 학생이 놀랍게도 "절대로 우리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똑같이 말했습니다. "너희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르니까 편하게 이야기해."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몇 번씩 확인하고 나서야 "교회에 다니기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면 엄마 아빠가 교회에서는 헌신적으로 봉사하는데, 집에만 오면 온갖 인상을 쓰며 화내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싫어서 교회에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기쁘고 행복한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데 필요한 교육은 바로 "모델링"입니다. 부모가 본이 되어 자녀가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우상을 다루실 때

내 삶의 우상을 다루실 때 우리에게 닥치는 많은 실망과 고민거리는 각자의 우상과 관계가 있습니다. 삶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의 우상이 위협받거나 제거될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감정의 흙탕물 속에서 뒹굴며 상대를 원망하다가 영영 낙심한 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그것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주님이 저를 그것 없는 삶으로 부르시는군요. 주님만 계신다면 제게 정말 필요한 부와 건강과 사랑, 명예, 안전은 다 있는 것이며 결코 잃을 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함을 알려면 우선 예수님밖에 남은 게 없어야 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는 것인데 오히려 죽이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