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성령 24

하자 있는 수로②

하자 있는 수로② 요한복음은 아주 단순한 표현으로 그녀가 행한 놀라운 일을 기록했습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한복음 4:39). 여인이 예수님에 대해 전할 때 예수님은 우물가에 계셨고 사람들은 동네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의 증언만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이 그녀의 입술을 통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말한 생명수를 마신 그녀 속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줄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행하신 일을 지금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아니 그..

S.D. 고든/성령 2022.07.25

하자 있는 수로①

하자 있는 수로① 생명의 힘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개념 안에는 더 놀라운 도전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념 안에는 더 놀라운 도전이 들어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꿈이 당신과 내 안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똑같은 약속 앞에서 어떤 사람은 그 꿈을 실제로 갈구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내세우며 두려워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떻습니까? "저도 물론 그런 생명을 얻기 원하지만 저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분은 저를 잘 모르실 거예요. 저는 재능도 없고 소망도 없으시까요."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주님의 계획이 바로 당신을 위해 세워졌음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통해..

S.D. 고든/성령 2022.03.09

주님의 꿈③​

주님의 꿈③ ​ 물길의 시작은 어디인가? 물은 "그의 배에서 흘러나온다"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이 말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했습니까? 나는 줄곧 "그의 배"를 "그의 심장"으로 이해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은 사람의 심장이 배(복부) 근처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정확히 "배"라고 표현했습니다. 피는 생명이고 심장은 피를 순환시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만드는 곳은 복부입니다. 간단히 말해 생명의 출처는 심장이 아니라 복부입니다. 간단히 말해 생명의 출처는 심장이 아니라 복부입니다. 해부학 책에 나오는 피의 순환도에 의하면 피는 각 방향에서 각각 다른 크기의 혈관들 속으로 흐르다가 결국 가장 큰 혈관인 복부동맥에서 합쳐집니다. 이렇게 피가 흐르다가 결국 가장 큰 혈관인 복부동맥에서 합쳐집니..

S.D. 고든/성령 2021.12.14

주님의 꿈②​

주님의 꿈② ​ 또한 우리는 "흘러나온다(out of)"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들어가는 것"이 있으면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강물이 흘러 들어가서 빠지지 않으며 결국 죽은 바다(사해)가 되는데 많은 사람의 삶이 이러한 사해와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흘러 들어오면 주님은 우리 안에서 바깥쪽으로 수로를 만들어 메마른 땅을 향해 흐르게 하십니다. 하지만 물은 어디엔가 충분히 채워진 후에만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결국 "밖으로 흐릅니다(outflow)"는 곧 "차고 넘친다(overflow)는 의미입니다. 물은 안에서 홍수처럼 흘러넘쳐야 밖으로 흘러 나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풍성함이 있을 때 그것이 밖으로 흘러넘쳐 다른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게..

S.D. 고든/성령 2021.11.03

주님의 꿈

주님의 꿈 ​ 그리스도인 중에는 또 다른 부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부류의 사람들을 앞의 부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나는 당신이 이런 부류에 속하길 바랍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꿈꾸시는 그런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때 대화를 통해 당신이 주님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분명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라고 권하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는 초막절 기간 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예루살렘에 모였던 일이 그려져 있습니다. 거대한 민족적 명절을 연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은 초막절 기간인 일주일 동안은 나뭇가지로 만든 초막에서 생..

S.D. 고든/성령 2021.09.15

동여매임

동여매임 요한복음 11장으로 넘어가면 무능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또 다른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조금 다릅니다. 요한복음 11장은 부활 장 도는 나사로 장으로 불리는데 이 사건은 베다니라는 동네 밖에서 일어납니다. 저 멀리 무덤이 있고 그 안에는 한 시신이 있었는데 그 앞에 예수님이 서계셨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여러 제자들과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까지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또렷하고도 큰 소리로 이미 시신이 된 나사로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요한복음은 이 명령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당신이라면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올 때 똑바로..

S.D. 고든/성령 2021.08.24

니고데모 이야기②

니고데모 이야기② 나는 니고데모가 예루살렘의 어느 길모퉁이에 서서 팔짱을 끼고 산헤드린의 한 바리새인과 솔직하고 은밀하게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혹시 예수라는 젊은이와 대화해 본 적이 있나요?" "아니오. 없습니다." "그래요? 저는 사실 예수가 머무는 곳에 찾아가서 밤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예수는 바로 우리가 기다려온 메시아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그분에게 충성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신도 한번 그분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 보지 않으시겠어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니고데모가 이 정도로 예수님을 위해 발 벗고 나섰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만약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습니까? 많은 ..

S.D. 고든/성령 2021.07.20

니고데모 이야기①

니고데모 이야기① 그런데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정치 지도자와 바리새인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 당면이 나옵니다. 니고데모도 그 무리 중의 한 사람으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속에 어울려 앉아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의 계략에 의해 곤란에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때 니고데모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어떻게 되기를 바랐을까요? 만약 당신이 니고데모라면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니고데모는 이 상황에서 "나는 그 사람과 밤에 만나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고 또 그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약속된 메시아가 분명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모든 것이 간단하게 해결됐을지도 모릅니다..

S.D. 고든/성령 2021.07.02

밤에 찾아온 손님

밤에 찾아온 손님 나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삶에서 성령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기독교인과 그렇지 못한 기독교인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의 주인공은 이렇게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요한의 기록은 그가 당시 어떤 부류의 사람이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사회의 상위 계층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에 대해 수많은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갈릴리에서 온 예수라는 젊은 설교자에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지도층으로부터 급진론자인 예수님과 어울렸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밤 시간을 이용해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와서 만..

S.D. 고든/성령 2021.06.12

교회 밖의 비기독교 인들..

교회 밖의 비기독교 인들.. 두 번째는 교회 밖의 수많은 비기독교 인들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신앙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모르며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기독교인의 삶을 추측할 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우리가 삶을 추측할 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우리가 살아가는지를 비판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삶이 자신들과 다를 바 없다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비기독교인들은 순수하며 열정적인 기독교인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온유함과 친절, 그리고 평안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의 특별함을 금방 알아차리고 자신들과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오늘날 비기독..

S.D. 고든/성령 2021.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