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후원 사역† 1913

가정에서의 사역

가정에서의 사역 성경 말씀에 따르면 결혼은 인위적인 제도가 아닌 신성한 제도이므로, 시편 68편 6절,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십니다. 사실 성경은 안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며 풍성하고 서로 협력하는 가정생활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상은 우리가 가정에서 생활을 시작하여 부모와 형제자매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일반적인 목적에 따라 결혼하여 우리 자신의 가정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우리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갖게 됩니다. 젊은이가 집 밖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찾고 개발하는 것은 물론 자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집을 호텔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부모도 자기 직업이나 ..

증거와 섬김

증거와 섬김 그렇다면 우리의 섬김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개념이 우리 사이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하고 좀 더 완전한 개념이 되기를 기원하고 싶습니다. "섬김(service)"과 "사역(ministry)", 이 두 단어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인 "디아코니아(diakonia)"를 영어로 번역한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역"은 특히 정관사를 위하여 "그 사역"이라고 할 때 성직자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사역에서는 목회자 못지않게 평신도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며,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세속 사회에서도 그러합니다. 사실 그 단어야말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섬김을 ..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 마지막 주제인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입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2-53장에서 종의 본문에 대한 최종적인 성취자로 오신 "여호와의 종", 바로 그 봉으로 말입니다. 그분은 자신은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누가복음 22장 27절에서는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복음서에서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분은 설교하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셨습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으며, 발을 씻어 주..

성만찬-감사②

성만찬-감사② 로마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제단"이라는 단어 대신 "성찬대" 또는 "주님의 식탁"으로 부르는 이유는 성찬식의 집례자를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보지 아니하고, 식탁에서 봉사하는 봉사자(minister)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성례를 베푸는 일을 할 뿐이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도 트렌트 공의회의 규범들을 공식적으로 무효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성만찬 희생의 교리를 개신교의 개념과 가급적 대립하지 않는 표현으로 재진술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전 세계의 조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하고 충분한 희생 제사였다"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고백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에 의해 단번에 완성되었던 그 일의 반..

성만찬-감사①

성만찬-감사① "성만찬(Eucharist)"은 감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성만찬은 처음부터 주의 만찬을 일컫는 명칭이었으며, 오늘날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예식은 하나님의 구속은 물론이고 그분의 모든 자비하심과 창조와 섭리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예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성만찬의 두 요소, "떡과 포도주"가 이점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체들이 우리의 수고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 자신의 수고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서 우리의 감사의 초점은, 우리를 대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과 그 결과로 우리가 얻..

성만찬-교제

성만찬-교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무려 열여덟 절이라는 지면인 17-34절을 할애하면서까지 주의 만찬과 관련해서 "함께 모인다"는 동사를 다섯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일에 주의 백성들이 주된 모임을 함께 가졌다는 사실을 시사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성찬식에서 가구 배치는 이런 모임을 더욱 용이하게 합니다. 이미 1662년 기도서에서 성찬대는 "교회의 본당이나 성단소(성가대석고 강단이 놓이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의도는, 식사를 위해 한 가족이 식탁을 중심으로 함께 둘러앉듯이 회중이 그 주위에 무릎 꿇고 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라우드 대주교는 성탄대가 항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단소의 동쪽 벽에 위치해야..

성만찬-참여②

성만찬-참여②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톨릭의 대답은, 떡과 포도주의 내제적인 실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 요소들을 먹고 마시는 것은 실제 그대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화체설"이라고 부릅니다. 루터파 교회들은 "공재설"을 가르치는데, 앞의 주장과 다소 유사합니다. 하지만 성공회 신조는 이것을 기부합니다. 제28항에 보면, 화체설은 성경에서 입증될 수 없으며, 또한 상징과 상징하는 대상을 혼동함으로써 성례의 본질을 뒤엎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제29항에서는, 살아 있는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설사 성례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단코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아니다"라고 말합니..

성만찬-참여①

성만찬-참여① 예수님은 떡을 취하여 떼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를 취하여 부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요 내 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취하여 먹고 마시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들을 사도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드라마의 보고 듣는 관객이었을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심으로써 거기에 참여한 참여자였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성만찬은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기념식의 의미를 넘어서,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재의 은택들을 나누는 교제이니다.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 강조했던 점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

성만찬-기념

성만찬-기념 가장 간결하면서도 명백한 성만찬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글로 남긴 이 제도에 대한 가장 초창기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떡을 취하여 떼시면서 그것을 자신의 몸이라고 언급하신 후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식사 후 동일한 방법으로 잔을 취하사 그것을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라고 부르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을 반복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1:23-25). 따라서 그분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행하신 일(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것)과 그것에 대해 그분이 말씀하신 것, 이 양자를 통해서 그분은 자신의 죽음과 그 목적을 주목하도록 하셨으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기념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한 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