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한절 묵상 412

예레미야 44장 9절

예레미야 44장 9절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너희의 악행과 너희 아내들의 악행을 잊었느냐" 사람들은 새 마음, 새 출발을 좋아합니다. 자신들을 옭매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내가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심판을 초래한 과거를 잊고 죄악된 생활로 돌아가는 자에게 예정된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내가 어떤 죄인이었는지,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와 연단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때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43장 2,3절

예레미야 43장 2,3절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오만한 사람은 진실과 진리에 귀를 닫습니다. 순종하면 복이 되는 생명의 말씀을 저주의 말씀으로 왜곡합니다. 이는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의지와 결정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운 완악함의 결과입니다. 진리에 대한 고의적인 배반은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사도행전 5:1-5).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성취됩니다(마태복음 5:18)...

예레미야 42장 14절

예레미야 42장 14절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인간은 손해와 이익을 계산해 가장 유리한 것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선악과를 먹은 하와도,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향한 요나도 스스로 옳다고 여긴 행동을 했지만 실상 가장 어리석은 판단이었습니다. 우리가 귀 기울일 것은 이성의 판단을 넘어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따를 때 우리 영혼은 안전합니다.

예레미야 36장 3절

예레미야 36장 3절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하나님은 유다 가문이 재난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말씀을 기록하고 낭독하게 하십니다. 모든 백성이 경고의 말씀을 듣지만 모두가 그 말씀에 선한 반응한 것은 아닙니다. 들을 귀 있는 '각 사람'만이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누구든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면 하나님이 악과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어떤 재난이 와도 우리 인생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생 집을 견고하게 세우는 영원한 반석입니다.

예레미야 35장 17절

예레미야 35장 17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유다와 예루살렘 주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노골적으로 무시했습니다. 말씀이 듣기 싫어 말씀의 대언자인 선지자를 가두고 억압했습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그분의 공의를 영원히 미루시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권고하고 타이르실 때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드릴 것은 신속한 순종입니다.

예레미야 34장 17절

예레미야 34장 17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가문의 왕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성전과 다윗 가문의 왕은 그들을 지켜 주는 보증 수표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을 조금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형제와 이웃의 자유였습니다. 마땅히 누려야 할 형제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통해 증명됩니다(요한..

예레미야 33장 3절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마음의 소원을 구하고 그것을 얻어 내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약속하고 보상받는 거래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은밀한 일이 오늘 이전에는 듣지 못한 것이어서 우리가 아미 알고 있었다고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이사야 48:6,7). 그 은밀한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찾고 발견하려는 외침이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32장 41절

예레미야 32장 41절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세상 모든 악에는 기한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잠시'와 '잠깐'이 세상의 모습을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기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이 땅의 거처뿐만 아니라 하늘의 거처까지 준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들의 십자가 죽음으로써 확증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예레미야 32장 25절

예레미야 32장 25절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인간은 '내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정말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 생각과 이해를 초월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지성과 이해만으로 가질 수 없습니다.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기꺼이 순종하는 태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2장 3-5절

예레미야 32장 3-5절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예언하였느냐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일의 원인을 현재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일어나는 일의 원인은 과거에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직면한 바벨론 침공이라는 재앙은 그들에게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