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성경공부반...♡з/사도신경 12주 77

하나님이 안 계신 곳, 지옥

하나님이 안 계신 곳, 지옥 지옥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보다 지옥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이 훨씬 유익합니다. 지옥은 지구 땅속 어떤 어둡고 무서운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철저한 단절된 곳, 또는 그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의 삶 또한 어떠한 의미에서는 지옥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이 세상 속에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사는 것이 바로 지옥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버리시나이까'라고 현재형을 쓰지 않고 '버리셨나이까'라고 과거형을 쓰셨는데, 이것은 그대 이미 하나님이 예수님을 떠나 지옥의 ..

예수님이 지옥에 가셨다고?

예수님이 지옥에 가셨다고? 사도신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지옥으로 내려가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역사신학자는 이 문구가 4세기 후반에 사도신경에 추가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이 말이 첨가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한글 번역에서 빠진 게 차라리 잘 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서구의 기독교인들은 지난 1,400년 동안 변함없이 예수님이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문구가 담긴 사도신경을 고백해 왔습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이 인간이 말하는 모든 것을 다 체험하셨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처절함, 절망, 죽음의 밑바닥까지 처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특권이 있어서 지옥 같은 곳은 피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

참 사람 예수님의 죽음

참 사람 예수님의 죽음 사도신경 영문 번역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고(crucified), 죽으셨고(dead), 매장되었으며(buried), 지옥에 내려가셨다(descended into hell)는 네 가지 사건이 모두 과거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참 인간으로서 우리와 똑같은 죽음을 겪으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며 그분의 삶이 이 세상에서는 정말로 끝났다는 것을 네 차례나 과거형으로 밝힘으로써 확실히 한 것입니다. 한 번 "장사 지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아무개 어디 있어? 요즘 그 친구 보이질 않네." "그 친구? 죽었지. 벌써 장사 지낸 지 여러 날 되었어." 이쯤 되면 끝난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장사가 ..

사라진 사도신경

사라진 사도신경 구절 이어서 조명해 볼 대목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아시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우리말 번역과 영문 번역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구절이 영문 번역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영문과 대조해 보면 "장사한 지 사흘 만에"라는 문구가 제대로 문맥을 따라 번역되지 못했으며, 특히 "He descended into hell" 곧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라는 말이 완전히 삭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한국의 기독교인은 유난히 성경의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하여 오래전에 번역..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고난에는 두 가지 특별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한 고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또한 앞으로도 누구든지 고난받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위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받지 않고 있는 사람은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고난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의 연민과 절규와 호소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보면 결국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이기는 길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내가 곧 본디오 빌라도이니

내가 곧 본디오 빌라도이니 한때 유럽과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라는 라디오 드라마가 있습니다. 도로시 세이어즈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마태복음 27장 11-26절까지의 이야기에서 빌라도의 아내가 빌라도에게 하는 말이 기록된 19절에 초점을 맞춰 각색했습니다. 이 구절을 볼까요?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드라마에서 빌라도의 아내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수백 가지 언어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열두 번씩 외워 대는 꿈을 꾸다 놀라서 깨어납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 불길한 꿈예기를 하고 예수를 놓아 줄 것..

이해관계 앞에 무너지는 정의

이해관계 앞에 무너지는 정의 신학자이며 정치사상가인 라인홀드 니버는 그의 유명한 저서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에서 개인은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이성과 양심이 작용해서 악해지는 데 한계가 있지만, 일단 집단이 형성되면 그 속에서는 이성과 양심이 작동하지 않아서 사악함이 끝 간 데 없이 진행된다고 했습니다. 즉 개개인은 큰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지만 그들이 모여 집단행동을 할 때는 무서운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에 행해지고 있는 군중 시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모든 군중 시위는 의로운 것인데 이따금 의롭지 못한 시위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모든 시위가 위험한데 이따금 의로운 시위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

역사적 종교인 기독교

역사적 종교인 기독교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로마의 역사학자 티투스(Titus)의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A.D. 26-36년까지 유대의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또 유대의 역사가 필로(Philo)도 빌라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예수라는 사람이 민란을 일으켜 빌라도가 A.D. 30년에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들보다 몇 십 년 후에 활동했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빌라도가 너무 혹정을 해서 시저가 그를 다시 로마로 불러들였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가 철저히 역사적인 종교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오직 영적이거나 신앙적인 데서 가 아니라 삶의 한복판에서, 역사의 현장을 바탕..

고난받는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님

고난받는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님 물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인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동시에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신 분 이기에, 그분의 공생애 동안의 삶은 우리의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와서 닿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우산을 뒤집어 놓은 모양을 떠올리면서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산이 하나님 나라이고 우산 꼭지가 예수님이라고 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끄트머리로서 그분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겹쳐졌..

고난과 십자가

고난과 십자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이사야 53:1-6; 마태복음 27:11-26; 마가복음 15:21-41 사도신경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곧바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따르면 예수님의 생애는 받아들이기 힘든 출생과 고난의 죽음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로 그때 당시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고, 극히 압축된 문장으로 사도신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