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날마다 감사 399

상처를 주는 친구의 말..

상처를 주는 친구의 말..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고,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어 필경 화살이 간을 꿰뚫는 것 같은 창녀의 말보다, 당장은 마음에 상처를 주는 친구의 말이 훨씬 낫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불의에서 떠나지 않고,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합니다. 신앙고백이라는 등(燈)으로 회개가 입증되는 것이라면 어리석은 처녀들이 쫓겨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구원이 문이 그토록 넓다면, 구원을 받겠다고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게 돌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상처에 쓰라림을 안고 회개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회심한 사람들의 도성

회심한 사람들의 도성 실천이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우리 주님이 준비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상아탑 기독교, 즉 듣기 좋고 눈부신 사상(思想)만이 존재하는 추상적 신앙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이 회심한 사람들과 새 예루살렘에 대해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새 예루살렘이 회심한 사람들의 도성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천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린양의 피와 증거의 말씀으로써 죄의 속박을 깨고 그것에서 벗어났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죄의 사슬에 묶여 저주 아래에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약력(略歷)에서 "사망"이라는 단어 뒤에 "이제 후로는.."이라는 말을 덧붙이십니다.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행복한 내일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에 주님께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숭배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실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옛 선지자는 "나의 것을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그런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겠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사랑의 놀라운 속성..!​

사랑의 놀라운 속성..!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일을 언제나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놀라운 속성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섬길 때 지겨워하거나 짜증 내지 않습니다. 주권자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기이함을 피조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불경건한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크고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지역과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한 지역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지식을 아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로운 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소중히 여기는 심령입니다. 겸손하고 정결하고 신뢰하는 심령을 찾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통해 그분의 능력과 은혜와 생명을 드러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는 거듭남,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 성령의 조명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참으로 헛수로 안타깝습니다!

무엇이 회개인가?

무엇이 회개인가? 무엇이 회개입니까? 회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자(人子)가 우리 대신 심판과 형벌을 기꺼이 담당하신 것에 감동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그분의 찔림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깨끗케 됨으로 끝났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상함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정화(淨化)로 끝납니다. 또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었다 할지라도 언제나 회개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이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우리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정(矯正)의 의미..!

교정(矯正)의 의미..! "죄악"이라는 단어는 좋은 단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단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십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회피한다고 해서 죄악의 결과까지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교정(矯正)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고치고 온전케 만들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이 고난으로 시작하여 고난으로 끝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으로 시작하여 치유로 끝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거들랑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시작되었다고 여기십시오!

다리와 같은 분..!

다리와 같은 분..! 예수님께서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놓인 다리와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여 이 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지옥에 계속 머무르든지 해야 합니다. 현대는 이상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 심판의 확실성,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구주(救主)의 필요성에 대해 서로 침묵하자는 공모(共謨)입니다. 오늘날 우리 속에서 용광로처럼 솟아오르는 분노와 악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을 행하는 당신의 근본적인 부정직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이 구명정(救命艇)이시라면..

예수님이 구명정(救命艇)이시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구명정(救命艇)이시라면, 우리는 살기 위해 온전히 구명정을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타고 있는 건물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밧줄과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밧줄을 믿고 의지하여 탈출하든가 아니면 죽든가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삶과 성령 충만한 삶의 능력에 대해 묻고 그런 능력을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간절히 원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변명을 하지 않는다..!

변명을 하지 않는다..! 통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가 모든 계명을 다 어긴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법을 모두 어겼기 때문에 무법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를 믿으려는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이 범한 악한 죄들 중에서 자신은 어떤 것을 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지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합니다. 내가 어긴 계명이 단 하나라 할지라도 나는 그것에 대한 죄책감의 무게에 못 이겨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자복하고 낮아질 것입니다. 죄의 무게는 그 정도로 무겁고 엄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