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후원 사역†/신앙생활 가이드 194

성만찬-감사②

성만찬-감사② 로마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제단"이라는 단어 대신 "성찬대" 또는 "주님의 식탁"으로 부르는 이유는 성찬식의 집례자를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보지 아니하고, 식탁에서 봉사하는 봉사자(minister)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성례를 베푸는 일을 할 뿐이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도 트렌트 공의회의 규범들을 공식적으로 무효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성만찬 희생의 교리를 개신교의 개념과 가급적 대립하지 않는 표현으로 재진술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전 세계의 조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하고 충분한 희생 제사였다"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고백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에 의해 단번에 완성되었던 그 일의 반..

성만찬-감사①

성만찬-감사① "성만찬(Eucharist)"은 감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성만찬은 처음부터 주의 만찬을 일컫는 명칭이었으며, 오늘날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예식은 하나님의 구속은 물론이고 그분의 모든 자비하심과 창조와 섭리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예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성만찬의 두 요소, "떡과 포도주"가 이점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체들이 우리의 수고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 자신의 수고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서 우리의 감사의 초점은, 우리를 대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과 그 결과로 우리가 얻..

성만찬-교제

성만찬-교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무려 열여덟 절이라는 지면인 17-34절을 할애하면서까지 주의 만찬과 관련해서 "함께 모인다"는 동사를 다섯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일에 주의 백성들이 주된 모임을 함께 가졌다는 사실을 시사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성찬식에서 가구 배치는 이런 모임을 더욱 용이하게 합니다. 이미 1662년 기도서에서 성찬대는 "교회의 본당이나 성단소(성가대석고 강단이 놓이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의도는, 식사를 위해 한 가족이 식탁을 중심으로 함께 둘러앉듯이 회중이 그 주위에 무릎 꿇고 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라우드 대주교는 성탄대가 항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단소의 동쪽 벽에 위치해야..

성만찬-참여②

성만찬-참여②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톨릭의 대답은, 떡과 포도주의 내제적인 실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 요소들을 먹고 마시는 것은 실제 그대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화체설"이라고 부릅니다. 루터파 교회들은 "공재설"을 가르치는데, 앞의 주장과 다소 유사합니다. 하지만 성공회 신조는 이것을 기부합니다. 제28항에 보면, 화체설은 성경에서 입증될 수 없으며, 또한 상징과 상징하는 대상을 혼동함으로써 성례의 본질을 뒤엎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제29항에서는, 살아 있는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설사 성례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단코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아니다"라고 말합니..

성만찬-참여①

성만찬-참여① 예수님은 떡을 취하여 떼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를 취하여 부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요 내 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취하여 먹고 마시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들을 사도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드라마의 보고 듣는 관객이었을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심으로써 거기에 참여한 참여자였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성만찬은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기념식의 의미를 넘어서,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재의 은택들을 나누는 교제이니다.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 강조했던 점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

성만찬-기념

성만찬-기념 가장 간결하면서도 명백한 성만찬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글로 남긴 이 제도에 대한 가장 초창기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떡을 취하여 떼시면서 그것을 자신의 몸이라고 언급하신 후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식사 후 동일한 방법으로 잔을 취하사 그것을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라고 부르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을 반복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1:23-25). 따라서 그분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행하신 일(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것)과 그것에 대해 그분이 말씀하신 것, 이 양자를 통해서 그분은 자신의 죽음과 그 목적을 주목하도록 하셨으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기념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한 예로..

성만찬-서론

성만찬-서론 대부분의 교회는 그리스도인들 간의 교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성만찬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일컬어 "주의 만찬"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곧 주님의 초대를 받아 제자들이 나눈 교제의 식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던 마지막 날(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날) 저녁에 직접 시행하신 이 성만찬 의식은 그날 이후 기독교 예배의 핵심으로 널리 인식되어 왔습니다. 누가는, 적어도 주후 57년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안식 후 첫날(즉 주일)에 "떡을 떼려"고 모이는 것이 교회의 관습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사도행전 20:7).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도 주의 만찬이 없었다면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는 성만찬을 주일 예배의 핵심 순서로 삼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들②

그리스도의 지체들② 다른 비유를 한번 들어 봅시다. 스코틀랜드의 한 목회자가 근간에 주일 예배를 계속 빠지고 있는 신자를 심방했습니다. 그 목회자는 벽난로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벽난로를 응시하다가 화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불 속에서 한창 잘 타고 있는 사탄 하나를 집어서 벽난로 바깥에 꺼내 놓았습니다. 그 석탄은 얼마간 깜박이더니 불씨가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꺼진 석탁을 들어다가 벽난로 속에서 타고 있는 다른 석탄들과 함께 두었습니다. 몇 초가 지났을까, 꺼졌던 석탄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심방 내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그 신자가 교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이 책..

그리스도의 지체들①

그리스도의 지체들① 과거 영원 전부터 계획되었던 하나님의 목적이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가고 있으며, 장차 도래할 영원 속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서로 간에 고립되어 있는 개개인의 영혼을 각각 구원함으로써 그들의 고독을 영원히 계속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를 세우고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든 나라와 문화로부터 하나로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수많은 생생한 비유를 통해서 이러한 거룩한 사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의 아들 딸이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하나님의 전의 주춧돌입니다(에베소서 2:19-22).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양 떼이며, 그분의 포도나무의 가지이며, 그분의 몸의 지체입니다(요한복음 10:14-16). 한마디로 우리는 감히 ..

교제

교제 그리스도인의 건강과 발전의 첫째 조건이, 매일 성경 읽기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조건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고립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때 교제의 기쁨을 맛보았다가, 그것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새 신자들은 교회의 정식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교인들의 기대가 마음 내키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확실히 안절부절못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공동체의 이상은 그야말로 거창하게 들리지만, 막상 그들이 경험한 실체는 이상과 거리가 멉니다. 이처럼 교회를 마주 대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