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그리스도인의 건강과 발전의 첫째 조건이, 매일 성경 읽기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조건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고립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때 교제의 기쁨을 맛보았다가, 그것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새 신자들은 교회의 정식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교인들의 기대가 마음 내키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확실히 안절부절못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공동체의 이상은 그야말로 거창하게 들리지만, 막상 그들이 경험한 실체는 이상과 거리가 멉니다. 이처럼 교회를 마주 대할 때 느끼는 거북함에 대해서 C. S. 루이스만큼 정곡을 찔러 이야기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유신론자로 회심한 이후, 주일에는 지역 교회에 출석하고 주중에는 자신이 속한 대학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는 교인이 된다는 생각이 "정말 매력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성직자를 좋아하되, 곰을 좋아하는 것만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동물원만큼이나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일종의 집단이었다. 한마디로 따분하기 그지없는 친목회 그 자체였다. 내가 볼 때, 종교란 홀로 있을 때 기도하고, 도 두세 사람이 모여서 영적인 문제들을 토론하는, 일종의 선한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그런데 야단법석을 떨며 시간을 낭비하는 성가신 모임 그 자체였다! 종소리, 군중, 우산, 각종 안내문, 야단법석하는 모습, 쉬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모이는 일들 따위였다. 찬송도 내 귀에는 정말 듣기 거북했다.
모든 악기 중에서 나는 오르간만을 좋아했다. 나 역시 말과 행동에 영적으로 어색하기 그지없고, 이 때문에 어떤 존교적 예식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중에 수십 년 간 교회에 다닌 사람, 심지어 평생 교회를 다닌 사람은 새 신자가 교회에 적응할 때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기질상의 문제와 문화적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적응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회심하기 이전에 소외감에 젖어 있다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 이제까지 받아 보지 못했던 환대를 받고, 교회로부터 오로지 안식가 환희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주이 깊게 살펴보려는 사람들은 바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좀 더 민감하고 동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가능한 한 고통 없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에게 인내하라고 권면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헌신된 일원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도의 불가피한 일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헌신된 일원으로 적응되고 나면 인내야말로 대단히 즐거운 제자도의 일면이 됩니다.
요한 웨슬레가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바꾸는 것은 곧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에 고독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가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우리는 은밀한 중에 기도하지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란 우리가 함께 있을 때만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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