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예림의집으로ε♡з/인생 가이드북 1834

난 네가 잘 웃지 않는 게 더 걱정이었어!

난 네가 잘 웃지 않는 게 더 걱정이었어! 거울을 볼 때마다 유독 신경 쓰이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입술 위에 자리한 작은 흉터입니다. 아니, 어쩌면 작지 않습니다. 간혹 처음 만난 사람이 저의 입술을 가리키며 묻는 걸 보면 제법 큰 흉터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볼록 튀어나온 흉터가 덜 보이도록 입술을 꽉 무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본의 아니게 굳은 표정으로 사람을 대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잡지를 보다가 성형외과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TV를 보고 있던 친구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나도 흉터 제거 수술이나 해볼까?” 그러자, 친구는 “무슨 흉터?”하면서 저를 봤습니다. 제가 손으로 입술을 가리키자, 친구는 처음 보는 듯 낯설어하다가 피식 웃었..

비난을 옮기는 입술이 되지 마라

비난을 옮기는 입술이 되지 마라 비난을 옮기는 입술이 되지 마라.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며 표현 방법도 다르다. 가끔은 마음과 다른 말도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더구나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흉보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친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당사자에게 말을 옮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더구나 그 비난이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라도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은 너의 목소리다. 주의하고 또 주의하라.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부서지면 사라지지만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은 영원히 맺힌다는 것을 세상 일을 다 알 필요도 없고 때로는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나쁜 소식을 옮기는 입술이 되지 말고 환하게 웃어..

퍼싱 전차의 영웅

퍼싱 전차의 영웅 한반도 최고의 비극 6.25 전쟁. 대한민국을 위해 숭고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영웅 가운데, 마치 영화에서처럼 대단한 전과를 남겨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은 소련으로부터 받은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점령해 갔습니다. 당시 우리 국군은 북한군의 전차부대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게 되었는데요. 다행히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은 반격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950년 8월 31일, 미 제2보병사단 소속의 M26 퍼싱 전차 2대가 방어하고 있던 낙동강 지역에 500명이 넘는 북한군 보병들이 돌격해 왔습니다. 그 시점에 다른 전차 1대는 고장으로 사용 불능이 되었고 얼마 되지 않는 미군 보병들도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장에..

디모클레스의 칼​

디모클레스의 칼 ​ BC 4세기,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 디오니시오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복종했고, 그의 궁전은 아름답고 값진 물건들로 가득했습니다. 디오니시오스의 부하인 다모클레스는 이런 왕의 권력과 부를 부러워했습니다. 하루는 다모클레스가 디오니시오스에게 아뢰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왕께서는 누구나 바라는 것을 모두 가지고 계시니 말입니다. 단 하루 만이라도 폐하처럼 누려 보는 것이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그러자 왕은 아무렇지 않게 다모클레스에게 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일 하루 그대가 왕이 되어 보겠는가? 내일은 그대가 왕이니, 마음껏 누려보게." 다음날 다모클레스에게 왕을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향기로운 술과 아름다운 여인, 흥겨운 음악.. 모든 것이 완벽..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좋았던 날도 힘들었던 날도 결국 지나간다. 좋았던 날을 붙잡을 수 없듯이 힘들었던 날도 나를 붙잡을 수 없다. 좋았던 날, 힘들었던 날, 모두 어제이다. ​ 오늘이 지나가면 난 내일 안에 서 있을 것이다. 좋았던 날이거나 힘들었던 날이거나 과거에 서 있지 마라. - 박광수 작가의 에세이,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중 한 페이지의 글입니다. 행복으로 가득했던 날은 그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정열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불행이 가득한 날은 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행복도 불행도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날에도 혹시 찾아올 불행을 피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힘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독서는 가장 넓은 세계를 가장 손쉽게 경험하고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좋은 스승입니다. 19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물리화학자 프레드릭 오스트발트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독서'라는 공통점을 찾아냈습니다. 그 좋은 예로, 시카고 대학은 1930년대에 그레이트 북(The Great Books)이라는 144권의 고전을 필독서로 지정하여 졸업할 때까지 다 읽어야 하는 '시카고 플랜'을 가동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계획에 대해 많은 반대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시카고 대학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독서 현실은 어떠할까요? 1년간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의 비율은 성인이 60%, 학생이 92%로 각각 나타났습니..

여배우의 주름살

여배우의 주름살 실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어떤 사진작가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원로 여배우의 사진을 찍게 된 것입니다. 작가는 오랜 시간 고민하며 사진 촬영을 준비했지만, 혹시나 자신의 능력 부족과 사소한 실수로, 여배우의 마음에 차지 못한 사진을 찍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촬영은 순조로웠습니다. 혹시 여배우가 지나치게 깐깐한 성격은 아닐까 하던 걱정이 무색하게, 여배우는 사진작가에게 편하게 대하면서 촬영장의 분위기도 밝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다 끝나고 여배우가 그날 촬영된 사진을 한 장씩 한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잘못되었나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

1,004명의 생일을 축복합니다

1,004명의 생일을 축복합니다 저는 너무도 사랑하는 17살 딸 미연이 엄마입니다. 벌써 4년째 딸의 생일을 직접 챙겨주셔서 따뜻한 하루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가져다주는 반찬 도시락도 고마운데 꼬박꼬박 미연이 생일에는 케이크를 가지고 오시고 가족이라고는 저밖에 없는 생일날 함께 축하해 주시고 격려도 해 주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따뜻한 하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지만 사고를 당해 활동하기 불편한 이 몸이 원망스럽습니다. 술만 마시면 나와 미연이를 칼로 위협하고 피멍이 생기도록 때리던 남편과 이혼하고, 어떻게 든 살아보겠다고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는 정말 모든 것을 그냥 끝내고만 싶었습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평생 힘겨운 가난 속에서 고생하며 노력해온 한 청년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방문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물건을 팔기 위해 한 노인의 집을 방문한 청년은 그 집 거실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도 아니고 오래된 골동품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는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이 쓰러질 듯 놓여있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어딘지 우울한 기분마저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 아래와 같이 짧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바로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그림과..

마스크와 손 편지

마스크와 손 편지 이제는 마스크를 구하는 것이 조금 편해졌지만 한때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 약국에 줄을 길게 서기도 했습니다. 다들 마스크가 모자라 전전긍긍하던 시기에 저는 운 좋게도 지인이 오래전 구매해놨던 마스크를 넉넉하게 선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TV 뉴스를 통해 약국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문득 아래층에 사시는 노부부 어르신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래층에 이사 왔을 때 시끄럽게 해 미안하다며 음식을 싸 와서 인사하시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모두 외국에 나가 살고 있어 일 년에 한 번 손자 손녀 보기도 힘겨우신 분들입니다. 외국에서 손자 손녀들이 다녀간 다음 날이면 애들 뛰어다니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게 해 미안하다며 또 음식을 싸 와서 전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