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717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6. 27. 11:33

예림의집 2717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행복한 결혼 생활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결혼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영원한 행복을 안겨주고 삶을 변화시켜 줄 것을 꿈꿉니다. 하지만 막상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가 나의 행복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가 있는데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잘못했구나!"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아난 행복은 배우자 탓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문제입니다. 행복이란 습관과 같아서 혼자일 때도 행복한 사람은 결혼해도 행복을 잘 유지하고 그것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막연한 행복을 꿈꾸기 이전에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깊은 좌절이나 실망에 빠지지 않고 결혼 생활의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배우자는 소중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내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과 일상의 균형을 찾고 상대에게 행복을 구하려 매달리지 않아야 합니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면 결혼에서의 행복도 뒤따라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닭살 부부

저는 모태신앙이라는 타이틀을 등에 지고 안일하게 신앙생활인 아닌 교회생활을 하였습니다. 예배시간에 앉아서 잠을 잘 지언정 교회를 가면 뿌듯했고, 안 가면 왠지 큰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왜 믿는지, 교회를 왜 다니는지도 모르고 그냥 가야 할 것만 같아서 교회에 출석을 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공허한 생각이 들었으며, 허무주의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허무감과 공허함이 바로 주님이 채워주셨어야 할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믿지 않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고, 결혼한 후부터 너무 많은 생활환경의 차이와 집안의 문화의 차이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손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낳고서는 더욱더 심해져서 밤낮 울어대는 아이를 보면서 왜 나만 고생을 해야 하는지 화가 났고, 풍족할 것 같았던 결혼생활은 계속되는 남편사업의 실패로 상대적 빈곤감이 더욱더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저는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남편에게 화를 내며,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 돌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선배를 통해 주님은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내가 왜 죄인이며, 왜 돌아가셨는지, 왜 회개를 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이 제가 경험한 것과 같이 주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사실로 믿어졌습니다.
또한 강안삼 장로님의 예림의집을 알게 되었고 가정의 중요성, 남편과 아내와 아이들의 위치에 대해 너무 성경적으로 설명해 주었고, 남편에게 지기 싫어하고 내가 그를 주장하고 싶어 하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변하지는 못하였지만 가정의 머리는 남편이라는 생각으로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힘들었지만 그 가운데서 정말 행복해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아! 이것이 주님의 질서로 아름다워지는 과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남편과의 관계는 정말로 놀랍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던 우리 부부였지만 지금은 남들이 ‘닭살 부부’라고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회원으로 가입해서 매일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며 예림의집을 통해서 많은 영혼들이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 사랑, 가정에 대한 주님의 비전을 잘 나타내 주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원리, 남편과 아내가 왜 다른지, 다르게 지어졌기 때문에 남편은 세워지고 인정받을 때 행복해하고, 아내는 사랑받고 남편을 섬길 때 행복하다는 것을 너무 쉽게 알게 해 줍니다.
생활 속에서 넘어질 때도 많이 있지만 넘어진 것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손잡아주시는 주님께 너무 감사드리며 가정의 질서 속에서 남편이 우리 가정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은초롱이)

 

예림단장 칼럼

영적 대화에서 개인적 대화로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갈증을 해소해 줄 물을 제시하셨습니다. 그의 요지는 영적인 것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물질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한 번 마시면 갈증이 영원히 해소되는" 이 황당한 물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16절,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에 여자는 자신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예수님이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고, 이어서 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4장 17-18절,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왜 꺼내셨을까요? 결국 영적 대화에서 개인적 대화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접했다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방과의 연결점을 찾아 줘야 합니다. 성경이 그저 일부 사람이 믿는 2천 년 된 옛 문서에 불가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를 온전히 아시고 사랑하시며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책이라는 점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나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개인적인 대화로 넘어가기가 가장 수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고통은 자신에게 없는 답이나 도움을 찾게 만듭니다.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기도해 보길 권합니다. "지금 누가 상처로 신음하고 있는지 알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나 불치병 진단을 받은 사람,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 가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사람이 절실히 원하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담대한 복음 전도자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사도행전 4장 13-2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다가 공회에 잡혀가 신문을 받는 장면입니다. 15절, "공회"는 대제사장을 포함해 제사장, 장로, 서기관 등으로 구성된 유대 최고 종교 회의이자, 자치적으로 최고 법원의 기능을 담당하던 모임을 말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병 나은 사람으로 인해 사도들을 비난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표적에 대한 소문이 더 퍼지지 못하도록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합니다. 관리들은 백성을 의식해 사도들을 위협만 하고 석방합니다.
 
사도들을 경계하는 공회원들(13-17절).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려면 죽음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공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13절의 "학문 없는 범인"은 전문적으로 지식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랍비 교육을 받지 않음을 가리킵니다. 이는 자신들과 비교하며 사도들을 무식한 자들이라 비아냥거리는 그릇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최고 지혜자이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기에 짜임새가 있고 논리적인 말을 했으며, 최고위층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적이 일어난 사실이 너무도 분명하기에 공회원들은 이를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이 가져올 파장을 두려워해 그 이름을 금하고자 합니다. 이는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의 속성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만으로도 두려움에 떨고, 그 이름을 가리고 지우려고 모든 노력과 모략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언변으로 전하는지, 성령님의 능력과 지혜로 전하는지 묵상합시다.
 
경고를 거부하는 사도들(18-22절).
공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예수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 경고를 거부합니다. 20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계속 전하겠다고 합니다. 19절, 베드로와 요한이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한 것은 이것이 열두 사도의 공통된 신앙 고백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부활 신앙이 있기에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담대합니다. 이적을 본 백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도들을 지지하자 관리들은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위협만 하고 놓아줍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스라엘 최고 법정인 공회의 말에 불복종하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욈을 믿는 성도가 할 일은 그분에게서 보고 들은 것에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깊이 묵상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는 담대한 복음 전도자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또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다짐하게 하시옵소서. 안개같이 사라질 세상 것을 지키려다 구원의 기회를 놓쳐 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되새기게 하시옵소서. 배운 것이 많지 않아도, 보고 듣고 경험한 주님의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증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심함을 버리고 주님의 제자답게 행하도록 우리에게 용기와 은혜를 더하여 주시사 복음을 힘 있게 전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마지막가지 복음을 전하는 이유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시절,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폐암에 걸린 이후로 교회에 출석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믿으며 열심히 성경 공부를 하면서 믿음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이분이 천국을 봤습니다. 거기에는 주님이 보여 주시는 생명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책에는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아는 성도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분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한 일은 가족과 친척들을 부러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족과 친척들을 전도했습니다. 고통으로 힘겹게 버티는 순간에도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하며 기뻐했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최대 위기는 핍박이나 환난이나 고난이 아닙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고, 구원의 기쁨이 사라지고, 성령으로 인한 기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쁨으로,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상의 두려움을 이겨 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성령으로 기뻐하라/김은호 목사)

 

S.D. 고든의 성령

애매한 기준①

수년 전 나는 미주리 주의 여러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호텔에서 나와 대학가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한 남학생을 만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대화를 하던 나는 그 학생에게 "혹시 기도교인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교회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가 관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는 마지못해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너무 표면적이어서 울타리 틈새로 안마당을 슬쩍 들여다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그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지만 그날의 대화는 그 이후로도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 나는 다른 대학의 신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그 학교의 교수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여기는 신학교니까 모든 학생들이 기독교인이겠군요." 그러자 교수는 흥미로운 질문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학생 대부분이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처럼 살아가는 학생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날도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분하는 애매한 기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몇 주 후 캔자스시티의 어느 치과대학을 방문했을 때 나는 강의실의 책상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새 학기를 맞이하면서 강의실을 아직 정돈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학장을 만나 학교 운영과 개학 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학장은 갑자기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며 속사이듯 말했습니다. "저는 사실 교회에 잘 다니는 집사입니다."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기독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공허함과 갈급함이 묻어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달 후 나는 미주리 주 남서부 지역의 한 아연 광산촌을 방문했는데 그곳의 한 감리교회에서 오륙백 명의 회중과 목회자에게 강연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강단에서 내려가 앞줄에 앉아 있던 한 목사에게 다가가서 이곳에 모인 회중이 어떤 사람들인지 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교회 안을 한번 둘러보더니 바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 모인 사람들의 삼분의 이는 이 교회 사람들 같네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은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여기는 광산촌이잖아. 이곳 상황은 아마 다른 곳과는 다를 거야!' 하지만 이런 사건을 연속적으로 겪으면서 나는 교회의 회중이 되는 것과 일주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사이의 차이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러한 구분 자체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목회자는 이 문제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 보았을 것입니다!

 

기도의 횃불

전쟁을 멈추게 하옵소서!

오 주님,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 없게 하시옵소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로써 이 땅을 가득히 덮어주시옵소서. 치유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이산가족의 아픔과 꿈에 그리는 고향을 두 번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실향민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국방력을 높여야 하고, 수많은 젊은이가 청춘의 때를 희생해야 하며 군비 경쟁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굽어보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을 기뻐하시는 주님이여, 남과 북이 대립을 그치고 하나가 되는 날이 언제입니까?
전쟁의 위협과 무기 경쟁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로운 공존과 미래를 위해 손 잡으며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는 날이 속히 이르게 하시옵소서. 전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돌보아주시옵소서. 속히 전쟁이 멈추게 하시고 그 누구도, 어떤 나라도 전쟁으로 이득을 보지 않게 하시옵소서. 파괴되었던 건물이 다시 세워지게 하시고 전쟁에 희생당한 가족들이 다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은총과 위로를 베풀어주시오소서.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다시는 전쟁 연습하지 않는 참된 평화가 이 세상에 임하게 하시옵소서.
곳곳에 화목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게 하시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흘러넘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욕심이 인생을 망친다
 
왜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까요? 그 이유는 사람이 욕심의 노예로 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욕심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사냥하기 위해 나뭇가지에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린 조롱박을 매달아 놓고, 그 안에 열매를 넣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원숭이는 조롱박에 맛있는 열매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고는 열매를 꽉 쥔 채 조롱박 밖으로 손을 빼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사냥꾼들이 와도 끝까지 손에 잡은 열매를 놓지 않다가 결국 사냥꾼에게 붙잡히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잇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인생을 망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