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719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7. 11. 11:57

예림의집 2719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이번이 마지막 화살

한 남자가 과녁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화살이 두 개가 있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스승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화살 중에서 하나는 버리거라!" 남자는 스승의 말에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화살 하나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남자는 평소보다 더 좋은 실력으로 과녁의 가운데를 맞출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이번이 마지막 화살이라고 집중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볼록렌즈는 햇빛을 모아 검은 종이를 태우지만, 오목렌즈는 초점이 흩어져 빛을 모으지 못합니다. 이처럼 모든 생각을 우리가 한 곳에 몰입하면 그곳에서 성공과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몰두는 "어떤 일에 온 정신을 기울여 열중하다"라는 단어의 뜻처럼 온 정신을 기울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볼록렌즈 인생인가요, 아니면 오목렌즈 인생인가요?

 

예림가족 이야기

전업 주부
 
"전업 주부가 역시 최고!” 신문 한쪽 귀퉁이에 실린 기사입니다. 미국인 4천 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인들은 직장 여성보다 전업 주부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취학 전의 자녀가 있을 경우, 남녀 응답자 중 거의 절반이상이 전업 주부가 직장에 다니는 엄마보다 더 소중하다고 답했으며, 초등학생 자녀나 심지어 고교생을 둔 경우에도 대답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엄마의 직장 생활이 필요할지 모르나 엄마가 집에 머물면서 가정과 아이를 돌볼 수 있다면 훨씬 더 바람직하다."라는 설문에 대해서도 거의 70%가 찬성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글이 눈에 띄었을까요? 나 자신이 전업주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혼 이후, 집안에서 살림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다른 여성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직위와 함께 경제적 능력도 인정받고 있는데 반해, 전업주부들은 소비성 하류 시민으로 전락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신문, 잡지, 오디오, TV, 영화 등 매스컴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 여성의 사회 진출을 더욱 부추기는 듯싶습니다. 나는 자주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하여 만족스럽지 못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육 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시겠지만, 위에 언니가 있으니 둘째는 아들이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역시 딸이었습니다. 그때 이후, 내가 자라는 동안 나의 부모님 뿐 아니라, 나 자신도 내가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는 것이 싫어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시되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에서부터 너무나 잘 배워왔던 창세기 1장과 2장의 말씀이 뒤늦게 깨달아졌던 것입니다.
종종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을 만나게 되면. 아이들이 어서 자라서 그 아이들을 놀이방이나 유치원에 보내놓고, 아이 보는 일에서 놓이고 싶고, 또 더 가치 있는 어떤 일에 자신을 몰두시킴으로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젊은 엄마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일까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듯 보내지는 시간들이 허무하고 가치 없게 느껴지지만 그 시간들이 내 아이의 신체적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 사회적 성장, 정서적 성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영적인 성장을 돕는데 그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시간들이 되겠습니까!
언젠가 세미나에서 들은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은 더 큰 집이나 더 큰 자동차 등등 더 큰 무엇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엄마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엄마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이 우리 앞에 있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문혜선)

 

예림단장 칼럼

한 번의 대화가 지핀 부흥의 불길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이 여인이 보인 반응은 실로 아름답습니다. 요한복음 4장 28-30절,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이 죄와 상관없이 자신을 받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에 그녀는 행동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늘 피해 왔던 사람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인은 그들과 이 대화를 하지 않을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한 모든 행동을 정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가 초대했습니다. 29절,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여인이 그토록 부끄러워했던 이야기는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남들에게 기꺼이 밝힐 수 있는 이야기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녀의 반응은 다른 사람들도 그분을 만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랑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변한 데 대한 그녀의 반응은 다른 사람들도 삶이 변화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39-42절,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죄 속에 뒹굴고 스캔들을 일으키며 경멸을 당하던 여인이 온 마을에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사도행전 8장의 이야기가 기억나십니까? 그때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많은 남녀에게 설교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곳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부흥은 빌립에게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부흥은 예수님이 우물가의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고, 그 여인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이 자신에게 행해 주신 일을 증언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한 번의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선한 중재자 바나바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사도행전 9장 23-3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다메섹에서 살해의 위협을 당한 사울이 바나바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제자들과 사귐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피해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사울이 제자가 된 것을 제자들이 못 믿자, 바나바는 그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사도들에게 알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변론하던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들의 위협을 피해 다소로 갑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교회가 든든히 서 갑니다. 이제는 이방인의 사도 사울의 주도하에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때가 된 것입니다.
 
다메섹을 탈출한 사울(23-25절).
하나님은 그분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으시고 어디든 그분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복음 전도자를 굳게 지키십니다. 23절, "여러 날"이 지나서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1-24절 등 사울이 다른 곳에서 증언한 내용을 참고할 때 여기서 여러 날은 그가 회심하고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라비아에 가서 머문 후에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던 기간으로 봅니다. 아라비아에서 있었던 일들은 갈라디아서를 묵상할 때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사울을 그냥 놔둘 수 없는 이유는 그로 인해 유대교적 신념과 유대 사회 체제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산헤드린의 앞자비였던 사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전파하는 것은 그들에게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고, 사울의 제자들은 사울을 다메섹에서 탈출시킵니다. 사탄은 복음 전도자를 박해하고 죽이려 하지만, 하나님은 피할 길을 여시고 그를 지키십니다. 위기의 상황에 몰렸을 때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셨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울(26-31절).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고 꺼립니다. 이때 사도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인 바나바가 나서서 중재합니다. 제자들이 마음을 열고 사울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그의 평소에 선한 행실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나바의 중재와 추천으로 사울은 그들과 교제하게 됩니다. 이때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15일을 보내며 제자들과 깊은 교제 합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처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며 헬라파 유대인들과 목숨을 건 별론을 합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 하자 형제들이 사울을 그의 고향 다소로 보냅니다. 이후 사울은 등장하지 않다가 11장 25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가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은 "곁에 서 있어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그의 사역은 권면하시고 위로하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닮았습니다. 바나바처럼 누군가와 함께하고 그를 세워 주는 일은 작아 보이지만, 실은 성도와 사역자와 교회를 건강하게 새우는 위대한 사역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 오해하고 불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중재자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묵상합시다.
 
"교제의 장을 열어 주는 선한 중재자 바울처럼 우리를 통한 성령님의 사역을 이루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제 기준으로 가늠하고 의심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나바처럼, 곤경에 처한 지체를 돌아보고 위로하며 도와주게 하시옵소서. 사람과 상황을 모두 움직여 저희를 안전하게 덮으시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평안히 거하게 하시옵소서. 공동체를 파하는 획책꾼이 되지 않고 서로의 연합을 도모하는 중재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함께 가는 건강한 공동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이 본국에 복귀한 후 전쟁 당시 경험한 분노, 피해 의식, 수치심 등의 감정을 부정적으로 표출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의 진단명이 생겼는데,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제2차 세계 대전보다 베트남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을까요? 연구 결과 그 차이가 본국 송환에 사용된 교통수단에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들은 배로, 베트남전에서는 비행기로 이동했습니다. 배로 이동한 미군들은 수개월의 시간을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장에서 경험한 상실과 아픔, 고통과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참회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울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로 이동한 군인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눌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본국에 도착했을 때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은 영웅으로 대우받았지만,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격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한배를 타고 가는 공동체가 건강합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한배를 타고 가는 공동체가 건강합니다. 조금은 느려도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솔직하게 나누며 격려해 주는 공동체를 세워 갔으면 합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군복 입은 연금술사/김영호 목사)

 

S.D. 고든의 성령

밤에 찾아온 손님①
 
나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삶에서 성령의 능력을 발회하는 기독교인과 그렇지 못한 기독교인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의 주인공은 이렇게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찾아와서" 요한의 기록은 그가 당시 어떤 부류의 사람이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사회의 상위 계층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에 대한 수많은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갈릴리에서 온 예수라는 젊은 설교자에 대해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지도층으로부터 급진론자인 예수님과 어울렸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밤 시간을 이용해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와서 만났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이 계신 집에 들어가 "여기에 북쪽 지역에서 온 설교자가 머물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것이고, 주인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제가 그분을 좀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공손하게 청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만남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니고데모는 많은 양의 귀한 향유를 가져와서 자신의 친구이자 스승인 예수님의 시신에 발랐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니고데모는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정치지도자와 바리새인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니고데모도 그 무리 중의 한 사람으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속에 어울려 앉아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의 계략에 의해 곤란에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때 니고데모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어떻게 되기를 바랐습니까? 만약 당신이 니고데모라면 어떻게 처신했겠습니까? 니고데모는 이 상황에서 "나는 그 사람과 밤에 만나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고 또 그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약속된 메시아가 분명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모든 것이 간단하게 해결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맞을 우려가 있었기에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니고데모는 모른 척하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법률가 같은 태도로 예수님의 사건을 피상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는데 예수를 공정한 판결도 없이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이 옳습니까?" 비록 강한 반론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논리적인 항변이었습니다. 그러나 화가 난 바리새인들은 그를 노려보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당신도 갈릴리에서 왔습니까? 보세요! 예언자는 결코 갈릴리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에게 갈리리 사람이라는 말은 모역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순간 안타깝게도 니고데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뒷전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의심할 것 없이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위해 어떤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이 니고데모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는 소심한 사람이거나 겁쟁이입니까? 미안하지만 이 말은 니고데모에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하고 공격할 것이 두려웠습니다.(계속..!)

 

기도의 횃불

아기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신 하나님, 창조의 섭리를 따라 오늘도 많은 생명이 주의 은총 안에서 이 땅에 태어납니다. 생명을 잉태한 엄마가 오래도록 수고하고, 낳을 때는 고통스럽지만 태어난 아기와 얼굴을 마주하는 그 기쁨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마음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행방을 알 수 없는 영아가 수백 명에 이른다는 소식입니다. 아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기가 살아 있어 어디선가 숨 쉬고 있다면 새싹처럼 가엾고 여린 생명이오니 주님의 날개 아래 품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행방을 알지 못하는 영아들을 찾도록 도우시고 이를 위해 수고하는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옵소서.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존귀한 것이니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이 안전하게 하시고 엄마 아빠의 축복 속에 생의 첫날을 맞이하게 하시옵소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니 모든 사람이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하시고 아이들을 위해 더욱 안전한 사회를 이루도록 주의 크신 은총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식사 감사기도의 효능 세 가지
 
감사하며 음식을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미국의 의사 존 자웽은 식사 때 감사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건강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발표한 효능 세 가지는 이렇습니다. 식사 때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첫째, 질병을 예방해 주고 면역 기능을 향상시켜 주는 신비한 백신이 나오고, 둘째, 질병의 진행을 억제시켜 주고 병균의 침입을 막아주는 항독소가 생기며, 셋째, 일종의 방부제 성분으로써 위장 내에 있는 음식물이 부패하거나 발효하는 것을 억제시켜 주는 성분인 안티셉틴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감사하는 음식을 먹을 때, 우리 몸이 먼저 반응하여 유익한 분비물을 생산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감사하지 않고 먹는 진수성찬보다 보리밥에 김치 하나라도 감사하며 맛있게 먹을 때 이것이 우리 몸에 더 보약이 된다는 사실에 감사의 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