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709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5. 23. 12:18

예림의집 2709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병어조림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매년 이때쯤이면 병어를 즐겨 먹고 하는데 오래전에 아내가 저녁 식사 때 먹는다면서 병어 세 마리를 사 들고 왔습니다. 절약 정신이 몸에 밴 아내는 병어조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를 위해서 시장에서 물 좋은 병어를 싼 가격에 사 왔다면서 의기양양했습니다. 아내는 그날 저녁 밥상에 오른 병어를 저와 아이들에게 모두 주고서는, 아내 몫의 접시엔 조려진 무만 잔뜩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에게 내 몫의 병어 한 마리를 아내의 접시에 슬그머니 넣으려고 하니, 그 사이에 눈치를 챈 아내는 제 손길을 매섭게 뿌리쳤습니다.
이런 일로 실랑이를 해 봤자 매번 그랬듯 당해내지 못한다는 걸 아는 저는 다시 제자리에 놓고 말았습니다.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가정을 꾸려왔고 장래 대비에 그저 모으기만 열심히 했던 아내는 늘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저를 항상 격려해 주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회사에서 은퇴도 하였고 저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 벅차도록 고맙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그런 아내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남편으로 살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표현은 서툴러도 마음은 늘 아내 곁에서 미안하고 안쓰러워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함께 있어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가끔은 그 소중함을 모를 때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말해주세요. "여보.. 그동안 늘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서머싯 몸은 <과자와 맥주>라는 책에서 한 여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역설적이지만, 그것도 하나의 능력이나 재능인 것만은 틀림없는 듯합니다. 제 주변을 보면, 한 시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주 안절부절,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하다못해 층계라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운동을 하거나, 그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거나, 할 일이 없으면 괜히 시계를 보거나,
심지어는 주위 사람들에게 공연히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제 친구 중엔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뜨개질로 뭔가를 짰다가, 다 짜고 나면 풀어서 다시 짜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딱히 이렇다 하게 내놓을 능력이나 재능이 없지만, 다행히도 이 "무위(無爲)의 재능",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만은 넘치게 가진 것 같습니다. 재능도 유전이라면 저는 돌연변이에 속하는데, 우리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전혀 이런 재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맨손으로 자식 여섯을 키우신 우리 부모님은 더할 나위 없는 부지런함의 표상입니다.
우리 형제들도 마침 손에 잡힌 일이 없으면 일부러 찾아서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만히 누워 하염없이 천장벽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보다 졸거나, 창밖을 보고 몽상에 잠기며 시간을 낭비해도, 별로 죄의식이 없습니다. 아니, 죄의식은커녕, 제발 그런 시간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하지만, 많은 재능 중에서 하필이면 무위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크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그런 재능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 때문에 어영부영 시간 낭비하다가 걸핏하면
약속시간에 늦고, 무슨 일이든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다가 급하게 하니 만족스럽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게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쓸데없는 공상을 하다 보니, 건망증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열쇠나 지갑을 잃어버리는 것은 다반사이고, 꼭 해야 할 일을 깜박 잊어서 큰 소동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장영희)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저에게도 부럽게 느껴지는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한시라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짬이 나면, 책을 읽거나 인터넷 정보를 보곤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전혀 실익이 없는 일들을 만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가 책임추궁을 하거나 재촉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정해놓고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제 시간까지 마무리하지 않으면 마음의 부담까지 느끼고 있으니, 어찌 보면 제가 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림단장 칼럼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용서지만..
 
제가 한참 앞서 소개한 이이티 선교사 셀리 홀리스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홀리스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아이티로 날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전하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너무도 확고했기에 심지어 괴한에게 강간을 당할 뻔하고서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점으로부터 시간을 2년 뒤로 빨리 감아 보겠습니다. 홀리스는 여전히 아이티에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교회로 향하던 그녀는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던 그 남자와 마주쳤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파날. 그는 홀리스에게 저지른 짓 때문에 감옥에서 2년을 살고 나왔습니다.
그가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던 홀리스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려 달릴 수도 없었던 그녀는 교회까지 최대한 빨리 걸어갔습니다. 걸음걸음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교회에 도착해서 문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 홀리스는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돌아서서 파날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니은 그녀를 강간하려고 했던 남자에게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라면 파날에게로 돌아가겠습니까?
참,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이미 우리에게 촉구하고 계십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랑하기 힘든 하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홀리스가 파날에게로 가지 않을 이유보다 더 강한가요? 홀리스는 몸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눈을 뜬 채 기도하며 파날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마침내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에 긍휼함을 가득 채우셨고, 그렇게 해서 그녀의 마음이 느낀 것을 그녀의 손이 만졌습니다.
그녀는 손을 뻗어 파날을 안고 말했습니다. "당신을 용서했어요. 이유를 설명해 줄 테니 함께 교회로 갈래요?" 파날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홀리스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교회로 걸어갔습니다. 누가 우리의 가시적인 사랑 표현을 필요로 합니까? 누구를 격려해야 할까요? 누구를 용서해야 할까요? 누구를 초대해야 할까요? 누구를 방문해야 할까요? 누구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어야 할까요? 누구의 말을 경청해 주어야 할까요? 누구를 참아주어야 할까요? 누구를 안아 주어야 할까요? 누구의 손을 꼭 잡아야 할까요? 누구를 사랑해 주어야 할까요?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속죄에 따르는 응답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그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사무엘하 21장 1-14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그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은 그 기근이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기브온 사람은 자신들을 학살한 이의 자손 7명을 내 달라고 하고, 다윗이 넘겨준 이들을 모두 죽입니다. 다윗이 그들의 뼈를 거둬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함께 기스의 묘에 장하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 일련의 일들을 통해 신실하게 약속을 이행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울의 범죄로 인한 기근(1-6절).
하나님의 징계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3년간 기근이 있었던 이유는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고난과 시련이 있을 때 섣불리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그것을 자신에게 허락하신 이유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질문해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은 인생의 평온을 깨뜨리지만, 성도는 그것을 경건 훈련의 하나로 삼아야 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감춰진 은총이요, 순금과 같이 되게 하는 필수 과정입니다. 일단 사무엘서의 중심 이야기는 사무엘후서 20장으로 마무리됩니다.
21-24장은 부록으로 시대와 장르가 섞여 있습니다. 21장은 다윗의 범죄 이전 이야기를 다룹니다. 3년 기근으로 인해 다윗이 간구하자, 하나님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무고하게 죽였기 때문이라고 답하십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원래 가나안 족속이지만 여호수아 8장 3-27절에서 여호수아와 언약을 맺고 이스라엘 땅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들을 싫어하는 백성의 뜻을 다라 그들을 탄압하고 죽인 것입니다. 다윗이 소원을 묻자 그들은 사울 가문의 남자 일곱 명을 처형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피의 복수를 요청합니다. 일곱은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리스바의 애도와 사울 가문의 장례(7-14절).
하나님께 그 뜻을 묻고, 말씀을 따르는 것은 잘못된 사고와 행동, 잘못된 결론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줍니다. 다윗은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을 기브온 사람에게 넘겨주어 사울의 죄를 대속하게 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들을 기브아의 산에서 처형하고 시체를 그대로 매달아 두는데, 이는 신명기 21장 23절의 율법을 위반하는 지나친 처벌입니다. 그러자 리스바는 바위 위에 베로 만든 천을 깔고 보리를 베기 시작한 4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는 11월까지 약 7개월간  시신이 훼손되지 않게 밤낮으로 지킵니다.
이는 아들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이들을 매장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일종의 시위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가져온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과 더불어 이들의 시신을 사울 가문의 묘에 안장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에 응답해 비를 내려 주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공의로우신 삶을 요구하십니다. 오늘날 공동체 안에서 약자가 억울함을 당할 때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또한 큰 죄인일지라도 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마음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기브온 족속과의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끝가지 지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합당하게 형벌을 내리셨지만 형벌을 받은 자를 외면치 않으시고 그 고통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균형 잡힌 공의의 사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어떠한 일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발생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통해 응답받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을 성령 충만합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자비로운 정의
 
예수님은 성경의 핵심이 가장 큰 두 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의"이고,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여기서 "정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가차 없는 심판과 정죄를 내리는 무자비한 정의가 아닙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정의는 늘 사랑에 기초한, "자비로운 정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의를 말씀하실 때마다 항상 네 부류의 사람을 빼놓지 않으셨는데, 그들은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우상 신은 항상 강한 자와 편먹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악한 자의 편을 드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뿐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며 정의롭게 살기 원하십니다. 특별히 힘없는 연약한 자들을 위해 우리의 힘을 쓰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의 실현은 기독교 신앙의 부록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 그 자체입니다.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불의와 빈곤의 엇갈린 명암을 목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곁의 약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고 사회 정의와 관계를 맺으면 이 땅에서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한 "샬롬"이 이루어지고, 진정한 기쁨이 넘쳐 납니다.(거북이는 느려도 행복하다/류인현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직장에서의 사역①
 
직장이란 우리가 섬김, 즉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발휘해야 할 두 번째 영역입니다. 일부 그리스도인은 직장을 오로지 복음 전도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직장을, 동료나 직원들에게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회의 장으로만 여깁니다. 만약 그들이 그 직장이나 공장 내에서 유일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들의 복음 증거가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노동의 질에 의해서 판가름 나게 된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노동은 복음 전도와는 거의 무관하게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한 형태로서 나름대로의 존재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적인 노동 철학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찾아볼 곳은 창세기 1장입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사색적이고, 창조적이며, 부지런하고, 신중한 일꾼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시고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것을 감독하시고 유지하시며 갱신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셨을 때, 그들 역시 창조적인 일꾼으로 만드셨습니다. 일하는 면애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의 노동에 영예와 위엄이 더해집니다.
우리의 일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을 통해 생활비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궁핍한 자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우리의 수고의 소산물이 공익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노동이 더 큰 중요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노동에 대해 좀 더 높은 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노동을 그분에 대한 청지기직으로 인식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나아가 노동을 자신과의 동역자 관계로 보기를 기대하십니다. 즉 우리를 자신의 청지기 그리고 자신의 동역자로 임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28절,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두에 인간에게 그것을 정복하며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동산에 나무를 심으신 다음에, 아담을 거기에 두시고 그것을 경자하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의 범위가 우주적이었든, 지역적이었든 간에 청지기 직분에 대한 동일한 원리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보호하고 그 속에 있는 자원을 개발할 책임을 인간 관리인에게 넘겨주셨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한 청지기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지주이시고 우리는 관리인인 샘입니다.(계속..!)

 

기도의 횃불

감사를 잊지 않게 하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이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구하고 찾던 것이 이뤄져야만 감사했던 우리의 이기적이고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평범했던 삶이 은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지금, 너무도 쉽게 감사를 잊었습니다. 우리는 선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알면서도, 여전히 우리 속사람은 세상의 욕심과 정욕을 따르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인도하옵소서. 세상의 편견을 이길 담대함을 주옵소서. 삶의 곤궁함에서 건져주시옵소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다시 희망을 꿈꾸길 소망합니다. 주여, 가정에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사모합니다.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힘겹게 신앙을 지키는 이들에게 마음을 함께 나누며 예배할 공동체를 만나게 하시옵소서. 교회가 세상에 희망을 선포하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상처와 아픔으로 실족한 심령들이 다시 영적으로 일어서게 하시옵소서.
매일의 삶에서 드려지는 우리의 예배가 회복의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옵소서. 기도 가운데 함께하신 주님의 은혜 감사드리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대서양을 향해하는 여객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거센 풍랑이 일어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란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노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하며 얼굴에 잔잔한 미소까지 띠었습니다. 몇 시간 후 바다는 거짓말처럼 잔잔해졌고 배는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장이 노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께서는 어떻게 배가 침몰할 지경에도 그렇게 침착하고 평온할 수 있었습니까?"
"저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습니다. 한 아이는 여기 보스턴에 살고 있는 다른 아이는 천국에 있습니다. 저는 배가 풍랑에 휩싸일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약 제가 무사히 항해를 마치게 되면 여기 살고 있는 큰 딸을 만나게 될 테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풍랑으로 인해 배가 침몰한다면 저는 그렇게도 보고 싶던 작은 딸을 천국에서 만나게 될 테니 그것도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