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078번째 이야기
고인 물은 썩는다 오래전,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답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새로운 논과 밭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한 농부는 운이 좋게도 가장 먼저 물이 흘러들어오는 비옥한 땅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쌀농사를 짓기에 최적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농부의 논에는 가뭄에도 항상 물이 충분하여서 매년 많은 쌀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다른 사람들의 논에는 이 농부의 논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있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논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수로의 물을 쳐다보던 농부는 물이 다른 사람의 논으로 흘러가 버린다는 것이 갑자기 아깝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흐르는 수로를 막아 물이 다른 논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른 논을 경작하던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물이 부족해서 벼들이 모두 말라죽게 생겨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농부를 찾아가 수로를 열어달라고 사정해 보고 화를 내기도 해 보았지만 농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저 물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물줄기를 찾고자 노력했지만, 농부는 사람들이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농부의 논에 흐르지 못하고 지나치게 많이 고여 있던 물이 썩어버렸고 벼들도 시들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욕심 때문에 농부는 큰 손해를 보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만 보입니다. 그 하나를 가지려고 온갖 욕심을 부립니다. 눈앞에 보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면 될 것 같아 누구도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는 열 개 중 하나였고, 눈앞에 보였던 건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이렇듯 욕심은 어리석은 생각을 낳고, 어리석은 생각은 결국 화를 불러옵니다. |
행복하게 만든 3대 조건 바로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를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사는 이웃이나 친구와 비교하여 그보다 못 살고 있다"라고 깨닫게 될 때,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북유럽에서는, "너도 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고로, 서로 안도하면서 행복하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둘째,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입니다. 우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습니다. 봉급의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내지만, "정부가 나의 노후를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저항이 없습니다. 세금이 눈먼 돈이 되어 몇몇 사람만 나눠 갖는 한국식 부패는 없습니다. 셋째, 과시적 소비 없이 알뜰살뜰하게 살아갑니다. 과시해서는 안 된다는 "얀테의 법칙"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캠핑하는 식으로 바깥생활을 즐기지만, 한국처럼 고기 구워 먹는 게 주목적인 양 준비하는 게 아니고, 소박하게 떠납니다. 박노자 님은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에서, 북유럽 사람들의 소비행위를 절약의 집념으로 표현합니다. 교수들조차 거의 예외가 없이 모두 점심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먹고, 집에서 가져온 인스턴트커피에 공짜로 주는 물을 부어 마시면서, “오늘은 돈을 한 푼도 안 썼다”라고 자랑합니다. 사업차, 30년 전부터 북유럽을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10년 전, 노르웨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틀란틱 오션 로드(해안도로)를 남쪽에서 건너가면, 작은 휴게소가 있습니다. 제가 가져간 컵라면에 뜨거운 물 좀 부어 달라고 했더니, 차 한 잔 가격의 2배를 내라고 했습니다. ‘동양인이라서 바가지 씌우나?’하는 생각에 “왜, 그렇게 비싸냐?”라고 물었더니, “전기와 가스가 없어 집에서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 오는데, 커피나 차를 팔 때에 사용해야 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돈을 냈습니다.(세이노의 가르침) 오늘 책에 나오는 "안테의 법칙"은 이렇습니다. "1. 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2. 네가 남들처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3. 남들보다 총명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4. 남들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5.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6.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7. 네가 뭐든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8. 누군가 너를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9. 무엇이건 네가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마지막으로, 10. 남들을 비웃지 마라."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모두가 특별한 사람입니다! |
사랑하기 힘든 나를 사랑해 주신 분 우리가 평소에 경멸했던 사람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생각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현미경으로 마음속을 이 잡듯이 뒤져서 티끌만 한 동정이라는 감정 하나를 겨우 찾아내고서 사랑이라고 부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터치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병 환자에게 단순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만을 느끼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느끼는 것을 그분의 손이 만졌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강권하고 싶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머리로만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원수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려 하는 대신 그 사람을 찾아가 사랑을 눈에 보이게 표현하십시오. 나병 환자가 피부의 배고픔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를 만지셨습니다. 당신 주변의 그 사람은 무엇에 굶주려 있습니까? 예수님은 곧 배신할 가룟 유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당신을 속이거나 버리거나 등 뒤에서 비수를 꽂은 사람의 발을 어떻게 씻어 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그분 손에 난 못 자국을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도마에게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확신을 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귀가 먼 사람의 귀에 손가락을 대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요? 베드로가 불신하여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예수님은 손을 뻗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주변에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떻게 그에게 손을 뻗어 도와주어야 할까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임무를 맡은 로마의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손을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였습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숨을 거두기 전에 그분을 마지막으로 만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였습니다. 이 사람보다 사랑하기 더 힘든 사람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이 백부장을 보고 고개를 하늘로 올려 하나님께 그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비로소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방금 자신이 하나님의 무고한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그가 예수님에게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용서,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그에게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의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랑하기 힘든 자일 때 하나님이 먼저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기 힘든 자들을 사랑합니다! |
다윗왕의 귀환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사무엘하 19장 9-14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압살롬의 반란을 평정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압살롬에게 기름 부었던 이스라엘이 이제 다윗을 왕으로 다시 모셔 와야 할 때라고 변론합니다. 다윗은 형제요 골육인 유다 지파에게 왕을 모시는 일에 나중 되지 말라고 전합니다. 다윗이 아마사를 지휘관으로 삼자 모든 유다 사람이 다윗을 모시고 요단강을 건너려고 길갈로 옵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다윗의 죄였습니다. 간음을 하고 살인을 저지른 그를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되 그 죗값은 철저히 보응하시는 역설적 사랑입니다. 다윗을 다시 왕으로 모시려는 백성(9-10절).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리는 모든 결정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낳게 되고, 그 결과는 실패와 좌절뿐입니다. 압살롬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고 논의합니다. 9절의 "변론하여"는 격렬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백성이 다윗과 다른 왕 중 누구를 섬길지 갑론을박하며 논의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옛 업적을 기억하며 다윗을 다시 왕으로 세우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 선택해 세우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왕을 세운다고 생각합니다. 10절,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이란 표현은 그들의 생각을 잘 표현해 줍니다. 지도자인 다윗과 왕자들의 범죄가 이스라엘을 혼란스럽게 만들자, 백성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잊은 것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그는 모든 지파 백성이 다시 자신을 왕으로 세우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장로들에게 연락해 자신을 모셔 오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그들은 이번 발란의 핵심 세력이었습니다. 지도자를 뽑을 때 하나님께 합당한 지도자를 세워 주시길 먼저 기도합시다. 유다 지파와 협상한 다윗(11-15절). 다윗은 유다 지파가 자신의 골육이요 친척이라며 반란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합니다. 게다가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대 장관으로 삼습니다. 이런 유화 정책에 유다 지파는 다시 다윗을 지지하며 영접하러 옵니다. 반란 사건의 잘잘못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관용으로 무작정 덮으려 했던 다윗의 선택은 이후 19장 41-43절, 20장 4-10절에서 평화 대신 갈등과 분쟁을 가져옵니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관용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킵니다. 공의롭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반역한 압살롬의 편에 서서 자신을 무너뜨리려 했던 유다 사람들을 끌어안습니다. 그들이 반역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어서 그들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마사에게 다윗 군대의 군사령관 자리를 약속합니다. 유다 지파의 지지를 얻기 위한 다윗의 이러한 회유책은 외면상 모든 지파의 아름다운 연합을 이룹니다. 그러나 내부적인 갈등과 혼란의 불씨마저 잠재우지는 못합니다.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는 것은 더 나은 결과를 위한 발판입니다. 오늘날 공의로운 판단이 결여된 유화 정책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묵상합시다.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모든 권세를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때, 백성도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를 돌아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믿고 늘 주님의 뜻을 구하게 하시옵소서.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겸손함과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자녀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소망이 되는 공정한 심판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분노합니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 헛소문이 돌고 오해를 받을 때, 선한 의도가 왜곡될 때 분노합니다. 시간이 지나 억울함이 해결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분노가 되고, 끝 모를 좌절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런데 자신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의를 경험할 때면 분노하며 하나님께 왜 가만히 계시냐고 따집니다. 만약 하나님이 용서와 사랑만 하는 하나님이시라면, 억울해하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왜 억울해하니? 용서하고 사랑해야지. 서로 좋게 끝내." 그러나 하나님은 억울함을 알아주시는 분일뿐 아니라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앞에서는 영원한 불의도, 영원한 억울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매서운 공의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행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 소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은 두려운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믿을 때 우리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믿을 때 우리는 분노와 억울함에서 해방됩니다.(보통의 질문들/조재욱 목사) |
가정에서의 사역 성경 말씀에 따르면 결혼은 인위적인 제도가 아닌 신성한 제도이므로, 시편 68편 6절,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십니다. 사실 성경은 안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며 풍성하고 서로 협력하는 가정생활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상은 우리가 가정에서 생활을 시작하여 부모와 형제자매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일반적인 목적에 따라 결혼하여 우리 자신의 가정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우리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갖게 됩니다. 젊은이가 집 밖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찾고 개발하는 것은 물론 자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집을 호텔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부모도 자기 직업이나 교회, 혹은 지역 사회의 일이나 여가 활동에 치우친 나머지, 자녀로 하여금 자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합니다. 잠언은 자녀의 양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에 관해서 많은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 서구 문화 속에는 가정의 붕괴, 특히 이혼과 아동학대를 유발하는 요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가정의 결속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의 다양한 활동, 이를테면 가족 나들이, 운동, 음악, 드라마, 게임 혹은 책 읽기 같은 활동들이 TV나 인터넷, 유튜브 등에 자리를 빼앗기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가족의 구성원이 가정을 떠나 독립하게 될 경우, 편지와 방문 그리고 전화 통화를 통해서 계속 접촉을 유지하도록 분명히 당부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마침내 젊은 자녀들이 다 떠나고 가정에는 부모만 남아서 점점 연로해지시게 될지라도 그분들은 자신들이 결코 잊혀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약 가족 중 한두 명이 그리스도인이고 나머지 사람들이 아니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단, 설교가 아닌 세심한 기도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헌신적인 행동을 통해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되,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에 관해서 자연스럽고 겸손하게 말해 줄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라는 말입니다! |
연약한 자를 도우소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오며,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심으로 응답해 주시고, 은혜의 자율주행으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연약합니다.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낙심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주저앉기도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주 작은 수고에도 슬퍼하며 인생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시오니, 긍휼을 베풀어 주옵시고, 권능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시옵소서. 희락의 노래가 찬양의 향기로 퍼져나가길 원합니다. 진리의 생명은 말씀의 향기로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얼굴은 천국의 소망으로 빛나길 원하오며, 우리의 두 손은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들고, 우리의 두 발은 복음의 산을 넘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머무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믿음의 고백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사오니,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구원이 있음을 모든 교회가 깨닫게 하시고, 예수의 생명만을 담대히 선포하여, 마지막 부흥의 때가 성령의 불로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우상들을 하나님과 동일시 여기는 다원주의가 성령의 불로 소멸되길 원합니다. 영과 진리로 올려 드리는 예배가, 매뉴얼로 진행되는 종교게임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메마른 눈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길 원하오며, 악한 길과 강포와 우상 숭배에서 떠나는 복 된 인생들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범하는 악행을 즉결심판 하지 않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오래 참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우리를 부흥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말세의 특징 오늘날은 감사를 잊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시대의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없이 살아가는 삶은 저주받은 삶입니다. 일본의 하 주석가는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죽음이나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을 당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감사가 없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감사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넘치는 시대에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삶에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고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4절,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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