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707번째 이야기
천생연분 오래전 농촌 어르신들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중 낱말 맞히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어느 노부부에게 주어진 낱말은 "천생연분". 설명은 할아버지가, 정답은 할머니가 맞히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임자가 나랑 만나서 자식 낳고 지금까지 살아온 거 있잖아!" 하지만 할머니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 애가 탄 할아버지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얼마 뒤 할머니가 감을 잡은 듯 입을 주욱 내밀더니 외쳤습니다. "웬~수!" 할아버지는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났지만, 다시 진지하게 설명했습니다. "이봐, 임자랑 나랑 신랑 색시 되어 살을 맞대고 살면서 자식을 낳아 시집·장가보내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평생을 살아온 거 있잖아. 이제는 알겠지? 두자 말고 넉자, 넉자" 넉자라는 힌트에 할머니의 눈이 반짝이더니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음했습니다. "평생웬수!".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살면서 숱하게 다투고 서로 상처 주는 게 부부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처음의 사랑은 옅어질지라도 정은 세월과 함께 더 끈끈해집니다. 미움과 원망은 미운 정으로, 사랑과 고마움은 고운 정으로 남아 서로를 끈끈하게 붙들어 줍니다. 그렇게 평생 함께 사는 것이 부부입니다! |
더욱 아름다운 기적 돌아보면, "그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새삼 신기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희끄무레한 안개에 휩싸인 듯,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하여 백혈구 수치 때문에 애타던 일, 방사선 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며 밥그릇만 봐도 헛구역질하던 일, 그런 일들은 의도적 기억상실증처럼 제 기억 한 편의 망각의 세계에 들어가 있어서, 가끔씩 구태여 끄집어내야 잠깐씩 회생되는 파편일 뿐입니다. 그 세월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가슴 뻐근한 그리움이 다시 느껴집니다. 사방이 회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 세상과 단절된 채 있었기에, 저는 참 많이 바깥세상이 그리웠습니다. 밤에 눈을 감고 있으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 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습니다. 그런 모든 일상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을 끝없이 질투하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제 본래 자리로 돌아온 겁니다. 다시 강단으로 돌아왔고, 아침에 자꾸 감기는 눈을 반쯤 뜬 채 화장실에 갔다가 밥 먹고, 늦어서 허겁지겁 학교로 가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젠 목젖이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보쌈도 먹습니다. 그리고 상추쌈도 먹고 갈비찜도 먹습니다. 김종삼 시인은 <어부>라는 시에서 말했습니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맞습니다. 지난 3년간 제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하고,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서 잘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제 옆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함께 동일한 배를 타고서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고 장영희 교수) 그렇습니다. 장 교수님은, "3년간 암 투병을 한, 그 나날들이 기적과도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암 투병 하는 동안, 병실 바깥에서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질투하며 부러워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그때 장 교수가 질투하며 부러워했던 일들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장 교수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미 감지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만, 우리는 진정 많은 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일상이 축복인 것입니다. 고로, 반복되는 일상을 지겨워하거나 허무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늘 감사하면서 삽시다! |
그의 삶은 어떠할까?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사랑하기 힘든 그 사람들의 삶은 어떠할까?"입니다. 제가 처음 사역했던 교회에는 주일마다 혼자 찾아오는 일고 살 짜리 꼬마가 있었습니다. 그 꼬마의 이름은 정혁이었는데, 정혁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지만 부모는 그 아이를 매번 혼자 보냈습니다. 정혁이는 좀체 말을 듣지 않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고함을 지르며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죄다 때려서 망가뜨렸습니다. 전체 교인이 100명이 안 되는 정도라서 그 아이는 더욱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저는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 일곱 살배기 꼬마였다는 사실을 말하려니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아이를 꼭 알아야 합니다. 어느 주일,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정혁이를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유리문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단에서 설교를 하면서도 수시로 그 아이 쪽을 감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마구 뛰어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장난감 자동차를 집어 냅다 유리문을 향해 던졌습니다. 유리는 즉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온 교인이 소스라치게 놀랐고, 나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예배 후에 저는 담당 선생님과 함께 정혁이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아이 혼자 보낼 거면 더 이상 보내지 말라고 부모에게 따끔하게 말할 참이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아이의 집은 좁고 낡은 판잣집이었습니다. 그의 엄마는 밖으로 나와 정혁이와 함께 있는 나를 보더니 대뜸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 빌어먹을 녀석이 이번은 또 무슨 짓을 저질렀어요?" 엄마는 아이의 팔을 잡고 집 안으로 홱 끌어당겼습니다. 그러고 이 빌어먹을 녀석 때문에 자신이 삶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내내 욕을 섞어 가며 하소연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지저분한 베개와 담요가 놓인 소파 하나가 보였습니다. "저기가 아이가 자는 곳이군, 저기가 랜디의 방이야." 엄마는 여전히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아 하니 정혁이의 인생에 아빠는 없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아이의 삶은 어떤 삶일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순간, 그 아이를 향한 긍휼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내내 그토록 사랑하기 힘들었던 그 아이에 대해 갑자기 사랑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혁이의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정혁이가 정말 특별한 아이라는 걸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아이와 함께 교회에 오신다면 언제나 환영이지만 매주 오신다면 더더욱 환영합니다!" 그날부터 저는 정혁이를 볼 때마다 꼬옥 안아 주었습니다. 몇 번 그렇게 하고 나니 그런 포옹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우리를 보자마자 포옹을 해 달라고 달려와서는 우리가 뒤로 나자빠지도록 세게 안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삶에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십시오. "그의 삶은 어떠한가?" 잠시 자신에게서 눈을 떼고 기도하면서 상상해 보십시오. "학대하는 부모에게 시달리며 자라는 삶은 어떠할까?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삶은 어떠할까?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간 사람의 삶을 어떠할까? 시간과 돈의 압박에 시달리는 싱글맘의 삶은 어떠할까?" 정말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요? 그들과 직접 만나서 사연에 귀를 기울이며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면 그들을 사랑하기가 더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
압살롬의 죽음 소식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사무엘하 18장 24-3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아버지 다윗을 배반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압살롬과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패하고, 압살롬의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아히마아스와 구스 사람의 모습과 압살롬의 죽음을 듣고 통곡하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던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온다는 말에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승전 소식을 알리고, 압살롬의 안부는 모른다고 돌려댑니다. 이어 구스 사람이 와서 압살롬의 죽음을 알립니다. 이를 들은 다윗은 마음이 아파서 아들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슬피 웁니다.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24-30절). 우리에게 고통은 크게 세 가지 원인으로 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테스트이고, 둘째는 사탄의 유혹이며, 셋째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죄악 때문입니다. 본문의 다윗이 당하는 고통은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 다윗은 초조하게 전쟁 소식을 기다립니다. 24절, 다윗이 앉아 있는 "두 문 사이"는 바깥 성문과 안쪽 성문 사이로, 이곳에는 위병소나 공적 모임을 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달려오고 있다고 파수꾼이 알리자, 다윗은 그가 만일 혼자면 전쟁 그의 입에 전쟁의 결과를 알리는 소식이 있으리라 말합니다. 앞에 오는 사람이 아히마아스라고 하자, 다윗은 그가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두 사람 중 먼저 먼저 도착한 아히마아스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승리를 보고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의 안부만을 묻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안부이기 때문입니다. 아히마아스는 일직 출발해서 상황을 잘 모른다며 왕의 환심을 사기에 노력합니다. 실상은 아히마아스도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왕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공동체의 유익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아들의 죽음 소식과 다윗의 통곡(31-33절). 구스 사람도 동일하게 다윗에게 승전 소식을 알립니다. 전쟁 중에는 전쟁의 승패가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압살롬의 안부가 더 중요했기에 승리의 치하도 없이 바로 압살롬의 안부를 묻습니다. 구스 사람은 압살롬을 32절, "왕의 원수"라고 부르면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며 압살롬의 죽음을 기쁘게 알립니다. 다윗은 그 소식에 마음이 아파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가 차라리 자기가 죽었으면 좋았겠다며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통곡합니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꽃과 같은 아들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기에, 다윗은 더욱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만큼 그에게 내려진 징벌도 컸습니다. 인생의 비극은 죄에서 시작됩니다.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왕권을 지키게 되었음에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집에 일어난 비극의 시작점은 다윗의 죄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경건해야 합니다. 다윗의 가슴 아픈 통곡을 보며 오늘날 우리가 기억할 교훈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쏟은 회한의 통곡을 하는 다윗을 보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욕망을 따른 범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게 됩니다. 연약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은혜로 온전히 붙드셔서 죄를 미워하며 그 모양이라도 철저히 버리게 하시옵소서. 가정과 교회 공동체 안에 좋은 소식이 기쁘게 전해지도록 항사 도와주시옵소서. 일상 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기를 부지런히 힘쓰게 하시며, 우리를 정금같이 연단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모델링 신앙 교육 10년 전쯤 캐나다의 어느 청소년 집회에 강사로 참석했을 때, 강의하는 시간 외에는 학생 상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담했던 몇몇 학생이 놀랍게도 "절대로 우리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똑같이 말했습니다. "너희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르니까 편하게 이야기해."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몇 번씩 확인하고 나서야 "교회에 다니기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면 엄마 아빠가 교회에서는 헌신적으로 봉사하는데, 집에만 오면 온갖 인상을 쓰며 화내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싫어서 교회에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기쁘고 행복한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데 필요한 교육은 바로 "모델링"입니다. 부모가 본이 되어 자녀가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진실하게 기도하는 모습, 집중해서 성경 보는 모습, 교회에서 열심히 예배드리는 모습과 함께 집에서 가족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됩니다. 우리는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 모두를 자녀에게 맞춰 주면 좋은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복질은 정확이 알려 주고, 비본질은 자녀에게 맞춰 주면 됩니다. 본질은 예배입니다. 자녀에게 예배의 기쁨을 알려 주고, 예배자로서 합당한 삶의 본을 보이는 것이 참된 신앙 교육입니다.(사춘기 자녀 웃으며 키우기/김성종 교수) |
증거와 섬김 그렇다면 우리의 섬김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개념이 우리 사이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하고 좀 더 완전한 개념이 되기를 기원하고 싶습니다. "섬김(service)"과 "사역(ministry)", 이 두 단어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인 "디아코니아(diakonia)"를 영어로 번역한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역"은 특히 정관사를 위하여 "그 사역"이라고 할 때 성직자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사역에서는 목회자 못지않게 평신도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며,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세속 사회에서도 그러합니다. 사실 그 단어야말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섬김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역을 필요로 하는 경우들이 각양각색인 만큼 그에 따른 사역의 형태 또한 각지각색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이 옷은 다름 아닌 공동체에 속한 몸과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웃의 전체적인 행복, 즉 신체적, 영적, 그리고 사회-정치적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최우선의 관심사는 사람들의 영원한 영적 행복입니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원자와 주로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항상 그분을 증거 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사실 일부 학자들은 입교식을 그분을 증거 하는 한 가지 임무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이웃의 현세적인 행복 역시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최근에 복음 전도와 사회적인 책임, 이 양자의 상대적인 장점들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불필요한 소모전일 뿐입니다. 이 논쟁은 몸과 영혼, 현세와 내세를 따로 분리해서 보는 비성경적인 이원론을 보여줍니다. 어쨌든 우리는 증거와 섬김, 이 모두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며, 두 가지 모두 그리스도인의 사역과 선교의 일부분입니다. 둘째, 사역의 종류 역시 가지각색입니다. 이는 그 사역과 관계된 종들의 은사와 소명이 다양하며 그런 각각의 은사와 소명에 의해 사역의 종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도, 은사, 관심과 연구, 격려, 혹은 개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배치해 놓으신 장소에 따라 사역의 영역 또한 가지각색입니다. 우리 자신의 가정과 직장을 비롯하여, 지역 교회와 지역 사회 그리고 나아가 좀 더 광범위한 세계의 필요에 이르기까지 활동 무대가 다양합니다. 참으로 "온전한 사역"이란 이 모든 영역을 포괄할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각자의 소명, 은사, 관심사 그리고 기회에 따라서 전문적인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전 세계인이 전 세계에 있는 전 세계인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다양한 영역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이들 영역은 크게 다섯 가지 동심원으로 나누어지는 있습니다! |
가정을 위한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복된 가정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안에서 쉼을 누리며 살아가는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을 위해 중보 하며 기도합니다. 홀로 가정을 지켜나가는 이들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곤궁한 삶에서 건져주시고, 영과 육을 강건케 하시옵소서. 악한 영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성령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이 있다면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가정이 되게 하시옵소서. 연로한 부모님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노년의 삶이 절망과 좌절에 이르지 않게 하시옵소서.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 안에서 먹고 마시게 하시옵소서. 고독과 외로움이 삶을 짓누르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주여, 노년의 삶을 성령께서 주장하시옵소서. 인생의 많은 짐을 지고 수고하는 믿음의 가정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분주한 일상에서도 주님과 동행하길 원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주시옵소서. 세상을 이길 지혜와 능력을 주시옵소서.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카네기의 성공 요인 강철왕으로 불리는 카네기는 스코들랜드에서 방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은 너무도 가난했고 결국 15세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여비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친구 앤더슨 부인이 선뜻 20파운드를 빌려 주었습니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를 이민자에게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카네기 가족은 거듭 감사했고 빌려간 돈은 꼭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카네기 가족은 열심히 일하며 매일 30센트씩 저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파운드를 모았을 때 서로 축하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날 카네기는 "이제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앤더슨 부인의 사랑과 감사는 영원히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카네기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를 그의 감사하는 태도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것일까요?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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