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705번째 이야기
발효와 부패 오랜 시간 식품을 저장하다 보면 발효와 부패라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발효되면 맛과 향기, 여기에 영양까지 더 좋아지지만, 부패하면 썩어서 유해 물질이 됩니다. 우유가 치즈가 되고, 배추가 김치가 되는 것은 모두 발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고기나 찌개 같은 음식은 오래 놔두면 부패해서 더 이상 못 쓰게 됩니다. 부패한 음식은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에 유해하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고 성품과 행실이 원숙해지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멋진 어른이 되지만, 부패하게 되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없느니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부패가 아니라 발효의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 |
호응해 주고 감탄해 주면.. 요양 차 제주도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지인과 <이중섭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음악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주가 끝날 때마다 “브라보!”를 외치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 둘의 응원이 통했는지, 구경만 하던 사람들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연주자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연주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아들이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면서, ‘그때 많이 연주했던 음악을 들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또 외쳤습니다. “잘 헤어졌어요! 더 좋은 여자 만날 거예요!” 이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아들은 활짝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그날의 연주는 해가 저물도록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누가 길거리 공연을 하나 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냥 몇 곡 듣고 "잘하네!" 하고, 혼자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응해 주고 감탄해 주면, 그 순간의 즐거움은 몇 배가 됩니다. 간단한 몇 마디로 몇 배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세상에 이만큼 남는 장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이는 모두 그날그날의 재미를 잃지 않으려는 제 노력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쳇바퀴처럼 굴러갑니다. 특별한 일도, 재미있는 사건도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저의 경우는 "좋았다 나빴다 반복하는 병"을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고로, 매일 세 번 약을 챙겨 먹고, 운동하고, 고기를 아예 먹지 않아야 합니다. 이처럼 병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지칠 때가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고통이 가시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날엔,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고통스럽다 생각하면서 누워만 있는 것보다는, 소소한 삶의 재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고, 또 "그걸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떠올리는 것만 해도 좋았습니다. 컨디션이 안 좋아 누워있는 날에도, "키우고 있는 꽃과 나무에 새로 핀 잎사귀는 없는지?" 유심히 살펴봅니다.(김혜남) 그렇습니다. 제가 아주 오래전, 어느 교회의 초청을 받아 찬양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쯤에 앉아있는 한 여자 성도가 웃음 띤 얼굴로 자주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저는 괜히 신이 나서 더 열심히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약간 맛이 간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는 그분 덕에 실력이상으로 파이팅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 다니고 계신다면, 목사님이 말씀 전할 때에 밝은 얼굴로 "아멘"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인도 은혜받고, 말씀 전하는 목사님도 힘을 얻을 것입니다! ![]() |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사랑하기 힘든 자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요? 이를 테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를 학대한 부모, 매일같이 사소한 흠을 지적하며 괴롭히는 직장 상사, 지금도 악몽에 자주 나타나는 학교 폭력 가해자, 만날 때마다 신세하탄을 해서 진을 빼놓는 자칭 희생자, 항상 비판하고 깎아내리는 배우자,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항상 우리를 이기려고 하며, SNS에서 자랑질을 일삼는 친구, 은근히 괴롭히는 직장 동료, 가족 모임을 망치는 성격 나쁜 친척, 어린 시절을 악몽으로 만든 새아빠 혹은 새엄마, 몸과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 옛 애인 등입니다. 참으로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인데요, 여러분에게는 누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입니까? 일부러 못되게 구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화요일에 동네 카페에서 내게 말을 걸려고 다가왔던 노신사가 기억납니다. 카푸치노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 mp3로 찬양을 들으며 이번 주에 할 설교를 묵상하고 있는데, 그 노신사가 큰 잔을 무심코 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만 실수로 그 안의 커피를 내 무릎에 쏟아부었습니다. 실수였다고 믿고 싶지만 느낌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설교문들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노신사는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니고, 미안합니다." 그러고는 냅킨을 집으러 갔습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멘붕에 빠져버렸습니다. 아직 머릿속에 있던 내용들을 메모를 하거나 기록한 것이 아니었기에 다시 처음부터 설교를 준비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이게 뭐지?"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머릿속에 남아있던 묵상의 끝을 부여잡고서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무릎 위로 쏟아진 뜨거운 커피로 인해 욱신거렸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한자라도 생각이 남아 있을 때 기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주님께서 주신 묵상의 내용들을 살려내야 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려고 해 봤지만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그 노신사가 사랑하기에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그때를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결론을 내어 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을 사랑하겠는가?" 보다 더 좋은 질문은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할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 저는 두 가지 유용한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방송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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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논의 잘못된 욕정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사무엘하 13장 1-14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심히 간교한 친구 요나답의 말을 듣고 가문의 치욕으로 이어진 잘못된 욕정을 실행에 옮긴 다윗의 아들 암논과 압살롬의 누이 다말의 이야기입니다. 4절의 "파리하여"는 몸이 마르고 핏기가 없어 해쓱하다는 뜻입니다.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사랑해 상사병이 듭니다. 간교한 친구 요나답은 암논에게 다말을 휘할 계책을 알려줍니다. 다말은 아버지 다윗의 명령으로 암논의 집으로 가고 암논의 요구로 음식물을 그의 침실로 가져갑니다.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다말의 간곡한 요청에도 암논은 그를 억지로 범합니다. 다말에게 욕정을 품은 암논(1-5절).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사는 삶은 결국 상대방과 자신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다윗의 범죄 이후 다윗 집안에 범죄가 이어집니다. 다윗의 장남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에게 잘못된 욕정을 품습니다. 1절은 "그를 사랑하나"라고 말하지만, 15절, 다말을 범한 이후 행동을 볼 때 이는 아름다운 다말을 취하고 싶은 성욕과 권력욕이지 정상적인 진실된 사랑은 아닙니다. 다말에 대한 욕정으로 전전 긍긍하던 암논 앞에 심히 간교한 요나답이 등장합니다.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었습니다. 3절의 "간교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캄"은 "지혜로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나답은 암논의 욕정을 꾸짖고 책망해 잘못된 길에서 바른 길로 돌아서도록 하는 참 지혜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이자 아버지인 다윗의 권위를 이용해 암논의 욕정을 성취하는 어리석은 길을 제시합니다. 암논은 요나답의 간교한 제안을 지혜롭다 여기며 죄의 길을 선택합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주위에 바른 사람을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내려놓아야 하는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지 마음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다말을 범한 암논(6-14절). 6절, 암논이 다윗에게 한 요청은 남매간의 우애로 보기에는 상당히 미심쩍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의심하지 않고 암논에게 다말을 넘기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는 범죄 이후 다윗이 하나님과 소원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아버지의 명을 따르던 다말은 암논이 성폭행하려고 하자 지혜로운 말로 그를 설득합니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고, 율법으로 금지된 것이며, 자신이 앞으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없게 하는 죄임을 알려 줍니다. 13절, 다말이 아버지를 통한 결혼 허락을 언급한 것은 위기 상황을 모련하려는 임기응변으로 보입니다. 암논이 욕정에 눈멀어 다말을 범한 일은 다윗 가문에 선고된 심판의 시작입니다. 성도의 사랑 방식은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습니다. 암논은 병이 들 정도로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결혼을 통해 맺어져야 할 온전한 사랑이 아닌 성적 호기심에 근거한 욕정에 불과했습니다. 암논의 잘못된 사랑은 다말을 황폐하게 하고, 결국 자신도 살해당하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날 죄에 대한 경고를 들을 때, 성도로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묵상합시다. "죄를 미워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죄의 길을 걷는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늘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우리 마음과 행동을 살피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하시옵소서. 죄의 유혹을 과감히 끊어 내고 죄에 동조하지 않도록 매사에 민감히 분별하며 행하게 하시옵소서. 자기만족에 빠지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사랑을 하게 하시옵소서. 끝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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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이기는 길 성은 순간의 쾌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야한 동영상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요즘 사회는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 자체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괜찮다!"라는 생각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성 문화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정서와 영혼에 길고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유혹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자기 의지로 절제하기 힘든 충동이고, 자기 혼자만의 결단으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스마트폰만 켜도, 길거리에만 나가도 자극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도피하거나 죄책감으로 대처할 수만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합리화하게 되거나 더 음성적으로 변할 따름입니다. 해답은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때, 남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보호와 희생의 마음이 더 커집니다. 나는 우리가 "그냥 연애"나 "그냥 결혼"을 하지 말고, 먼저 "참사랑"을 했으면 합니다. 내 경우에는, 여성을 이성으로 보는 시각보다 영혼이 깃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졌을 때 비로소 성적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죄책감과 통제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상대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성"보다 압도적입니다!(일상의 유혹/손성찬 목사). ![]() |
성만찬-감사② 로마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제단"이라는 단어 대신 "성찬대" 또는 "주님의 식탁"으로 부르는 이유는 성찬식의 집례자를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보지 아니하고, 식탁에서 봉사하는 봉사자(minister)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성례를 베푸는 일을 할 뿐이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도 트렌트 공의회의 규범들을 공식적으로 무효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성만찬 희생의 교리를 개신교의 개념과 가급적 대립하지 않는 표현으로 재진술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전 세계의 조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하고 충분한 희생 제사였다"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고백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에 의해 단번에 완성되었던 그 일의 반복 내지는 추가적인 행위란 있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교회가 그리스도의 자기희생 제사를 통해서 세워졌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우리와 생각이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모호해서 위험 천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은택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희생 제사에 동참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우리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것은 복합적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드림으로 그분의 희생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써 구원의 은택들에 참여합니다. 또한 그로 인해 가능해진 교제를 서로 누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기희생을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몸소 행하신 희생 제사에 공동으로 참여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구별되어야만 할 것, 즉 그분의 희생과 우리의 희생을 혼동할까 봐 그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완전과 타락, 대속과 성만찬,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응답"을 분명하게 구분해야만 합니다! ![]() |
건강한 가족이 되게 하소서! 아름다운 5월을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화창하게 피어난 꽃들과 푸르른 나무들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답고 강건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이웃의 가정들이 건강하며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헌신에 기쁨이 가득하게 하시고 부모를 공경하며 효도하는 자녀들에게 지혜와 총명함으로 복 주시옵소서. 우리 사회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줌으로 다음 세대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미래를 준비하게 하시고, 청소년들은 사랑 가득한 격려를 받고 청년들은 공정한 기회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직장인들은 안정된 직업과 안전한 현장에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시옵소서. 어르신들은 존경을 받게 하시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우고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세월과 역경을 이겨낸 장한 일들이 자손들에게 기억되며 칭송받게 하시옵소서. 아파하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가뭄으로 시름 깊은 농민들을 도와주시옵소서. 엘리야가 기도할 때 단비를 내리셨던 것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응답하셔서 비를 내려주시옵소서. 산불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은 이웃을 도와주시옵소서. 지진으로 무너진 튀르키예, 오랜 전쟁으로 신음하는 우크라이나 모두 주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이오니 돌보아주시옵소서. 싱그러운 5월처럼 우리 이웃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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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어느 교회의 목사 사모가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문 채 미음조차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나이에 자신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텄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의 지인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리고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 보세요." 이 말을 들은 목사는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사모는 퉁명스럽게 노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아주 평범하고 작은 감사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통증은 점점 사라지고, 다리에도 힘이 생겼습니다. 얼마 후 병원에 갔을 땐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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