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704번째 이야기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 일은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의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는 조선 인조 때 홍만종이 지은 문학평론집 <순오지>에 나오는 격언 "결자해지 기시자 당임기종(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의 일부입니다. 격언 전체를 풀이하자면 "맺은 자가 그것을 풀고, 일을 시작한 자가 마땅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원인을 만든 사람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 되고, 문제를 만든 사람이 그 문제의 해답을 제일 잘 안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생기는 많은 다툼과 사건 중 원만히 풀리지 않고 파국까지 가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맨 사람이 풀기를 싫어하는 경우, 둘째, 다른 사람이 그것을 풀다 더 헝클어 버리는 경우이고, 셋째는 맨 사람이 풀려고 하는데 풀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고 다그치게 될 때 더 단단히 조여버려 도저히 풀리지 않는 파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문제를 만든 사람이 그것을 풀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기억해 그 사람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여유를 우리가 가져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이제 막 사회를 경험하는 자녀들에게도 "결자해지"는 적용됩니다. 부모는 따뜻한 응원과 신뢰하며 기다려줄 뿐 인생의 몫은 자녀들 자신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비단 자녀뿐만 아니라 어른도 때때로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기를, 기적 같은 일이 자주 생기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누군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능동적인 자세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작년 한 해에만 자살한 사람이 1만 3천352명입니다. 매일 37명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포기한 셈입니다. "얼마나 막막했으면 모진 결심을 했을지?"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서 더 살고 싶지 않다"라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 옆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와 있는, 이름 모를 잡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그 풀을 가리키면서 "비록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고 배기가스에 시달려도, ‘나는 절대 내 생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지 꽃을 피우고 씨를 맺은 후 멀리 보내어, 내 자식들은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할 거야!’라는 오기가 느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청년은 지금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신뢰해 주고 끝까지 자기 말을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자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아파트 재건축이나 도시개발 사업 등으로 버려지는 나무들을 받아 생육시켜서 목생(木生) 2막을 살게 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나무고아원>으로서, 하남시 미사리 축구장 옆 약 2만 5천 평 부지에 있는데, 하남시에서 운영합니다. 2004년부터 운영을 시작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자리매김한 이곳에는 1,700그루 이상의 수종이 생육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나무들을 구해 달라!'라는 연락을 받으면, 담당자가 현장실사를 나가서 이식가능성과 이식에 따른 가치를 고려하여 이식여부를 결정합니다. 이곳으로 옮겨진 나무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도로가 생기면서 베어내다가 남겨진 나무가 이곳에 옮겨져 몇 차례의 외과적 수술을 받고 기사회생한 경우가 있습니다. 상처가 깊었던 부위는 인공보형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비록 나름의 아픈 사연이 있지만, 이곳의 그 어떤 나무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마지못해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에게 "우리는 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면서, 나무마다 가진 사연을 알아주고 품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무고아원은 아름답습니다. 지금 그곳에 있는 나무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힘드세요? 저는 전기톱으로 허리가 잘려 죽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 실려 와서 몇 번의 수술을 받고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비록 나무고아원에 심겨있지만 말입니다.”(김선호) 나무고아원에 심겨진 나무들, 그 나무들보다 못한 인간이 과연 있을까요?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고 강변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을 믿는 저로서는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은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자살하고 싶다는 청년에게 "도로변 보도블록 틈새로 비집고 나와 있는 이름 모를 잡초를 가리키면서, 삶의 의지를 일깨워주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힘내십시오! |
조건적 사랑에 익숙한 인간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큰 도전입니다. <사랑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love)>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신학자 윌리엄 반스톤은 거짓 사랑과 참된 사랑의 차이점을 설명합니다. 거짓 사랑은 조건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짓 사랑은 대가를 기대합니다. "내 기분이 좋아지니까 혹은 너도 나를 사랑해 줄 테니까 혹은 네가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줄 테니가 사랑해 줄게." 반면, 참되 ㄴ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이 사랑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외국어나 다름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이소나 문구점에 가서 축하, 감사 카드를 파는 코너에 가 보십시오. 특별한 사람에게 보낼 적당한 카드를 찾을 수 있도록 갖가지 종류의 카드드링 있습니다. 잠시 그 카드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십시오. 대부분의 카드 문구는 이런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은 유능하고, 아름답고, 잘생기고, 위트 있고, 융통성이 있고, 사려 깊고.. 그래서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성과에 따라 사람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우리 사랑에 사랑으로 보답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힘든 것은, 그것이 진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할 줄 알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가장 큰 도전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편안한 사람에서 한 걸은 더 나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카드 코너에 가 보면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 졸업생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와 축하 카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찾을 수 없는 카드의 범주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수들"에게 보내는 카드입니다. 원수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카드는 없습니다. 그런 카드는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손길은 원수들에게까지 뻗어 갑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44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언약을 지키는 다윗 왕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사무엘하 9장 1-1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요나단과의 약손을 잊지 않고 마길의 집에 숨어 살던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푸는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시바를 시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데려오게 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모든 밭을 돌려주고 시바에게 주인의 아들을 섬기라고 합니다. 또한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합니다. 무비보셋에게는 미가라는 아들이 있었고, 그는 두 발을 다 절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실함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나단의 아들을 찾은 다윗(1-5절). 선한 영향력을 바루히하고 싶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실된 마음으로 집중하여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 영향력의 비결입니다. 오늘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정권이 안정된 후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권력을 잡으면 옛 약속을 잊기 쉬운데,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자식을 찾습니다. 이에 사울 왕가의 종이었던 시바를 불러 사울 가문의 남은 자에 대한 행방을 묻습니다. 다윗은 남은 자를 찾는 것이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베풀기 위해 찾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3절,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남아 있다고 알립니다. 그가 다리를 전다는 사실을 먼저 말한 것은 부비보셋이 다윗에게 위험한 인물이 아님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요단 동편 마길의 집에 숨어 살던 므비보셋은 예루살렘의 다윗 궁으로 불려 옵니다. 이로써 다윗은 형제처럼 사랑했던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성숙된 성도는 받은 은혜를 아낌없이 흘려보냅니다. 다윗은 사무엘상 20장 15-16절, 자신을 생명같이 사랑한 요나단과의 약속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직까지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다면 무엇인지 마음 깊이 묵상합시다. 왕궁에서 지내는 므비보셋(6-13절). 다윗을 만난 므비보셋은 엎드려 절하며 최고의 공경심을 표현합니다. 6절, 다윗이 "므비보셋이여!" 하고 이름을 부르자, 므비보셋은 자신을 "다윗의 종"이라고 하며 그에게 복종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합니다. 다윗은 조심스러워하는 므비보셋을 안심시킨 뒤,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사울 가문의 모든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또 자신의 식탁에서 식사하자고 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재산을 돌려주는 것은 사울이 누리던 부와 권세를 어는 정도 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왕의 식탁에서 식하사는 것은 기족의 명예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윗을 선택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생명은 구하지 못했지만 아들의 생명은 건집니다. 받은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성도는 받은 은혜로 배부르기보다 흘려보낸 은혜로 배부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또한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알고 흘려보낼 줄 아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할 일은 누구이며 은혜를 끼쳐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묵상합시다. "모든 은혜의 근원이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힘들 때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며 타인을 위해 그 은혜를 흘려보내기 원합니다. 후손들이 기억할 만한 은혜로운 발자취를, 우리가 주님 품에 안기기 전에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은혜 아닌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받은 그 은혜 간직하며 감사하게 하시고, 은혜를 끼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나는 하나님 앞에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 나는 만나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인력이나 자원이 풍족한 도시 교회에서 교사가 없어 교회학교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농촌 교회를 도우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청년들과 함께 의료 선교, 교회학교 봉사, 농촌 봉사, 노방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공휴일을 활용했는데, 점점 주일 사역에 필요성이 커져 갔고 주일에 청년들을 파송하려니 본 교회에 예배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오후에 청년부 예배를 드리고 강원도 영월까지 내려가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내적인 갈등이 밀려왔습니다. 청년부의 양적 부흥이 먼저인지, 농촌 교회를 향한 약속이 먼저인지 계산기를 한참 두드리던 중 어느 순간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교회가 교인에게 평가되기 시작할 때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다. 교회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역을 검증받아야 한다." 해답을 찾자 가야 할 길이 분명해졌고, 청년들을 주일에 농촌 교회로 파송해 섬기는 이 사역이 계속 이어져 오늘날의 MMP(Manna Mission Plan) 사역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 사역은 약 10개 교회를 선발해 2년간 동반 성장을 위한 파트너 교회로 동행하는 것으로 발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한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영혼을 섬기려 할 때, 하나님은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새로운 은혜를 허락하십니다.(치열한 도전/김병삼 목사). |
성만찬-감사① "성만찬(Eucharist)"은 감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성만찬은 처음부터 주의 만찬을 일컫는 명칭이었으며, 오늘날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예식은 하나님의 구속은 물론이고 그분의 모든 자비하심과 창조와 섭리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예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성만찬의 두 요소, "떡과 포도주"가 이점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체들이 우리의 수고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 자신의 수고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서 우리의 감사의 초점은, 우리를 대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과 그 결과로 우리가 얻게 된 구원, 이 양자를 통해서 구현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의 만찬은 일종의 "희생 제사"입니다. 또는 그것을 포함합니다. 성공회의 성찬식 순서 중에는 "우리의 이러한 찬송과 감사의 희생 제사"를 열납해 달라고 간구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학교 다닐 때 입교 교인이 되었던 나는 성만찬을 "희생"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식이 주일 아침 8시에 거행되었는데, 거기에 참석하기 위해 주일 아침에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에게는 말 그대로 대단한 "희생"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만찬 희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의미에서 성만찬을 희생이나 제사로 간주할까요? 가톨릭의 전통적인 대답은,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진 그리스도의 제사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3차 트렌트공의회(1562-1563)에서 천명하기를, "미사라는 희생 제사에 그리스도께서 포함되시며 피 흘림 없이 희생 제물로 바쳐지신다. 일찍이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으며.. 이러한 희생은 화목 제사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개념, 즉 미사 때 제단 위에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진다는 개념을 거부했으며, 성경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의 미사를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손상시키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관성 있는 면모를 보이기 위하여 "제단"이란 용어의 사용을 일절 금하였고, 대신 성찬대, 주님의 식탁 혹은 더 간단하게 그냥 대라고 불렀습니다.(계속..!) |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했던 에스더의 결단이 동이 트는 이 아침 마음속 깊이 울려옵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 하지 않고 자기 한 사람의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위기에 처한 동족의 운명을 함께 하면서 죽음조차 각오했던 에스더의 용기를 갖게 하시옵소서.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지금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시대입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만 좋으면 괜찮다” 하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든지 어떤 피해를 입든지 “나만 좋으면”, “나만 편하면 된다”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과 죽음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모르며 헌신할 줄도 희생할 줄도 모르고 자신만의 유익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으니 주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손짓과 위로를 바라는 사람들의 슬픈 얼굴이 보입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에 봄날같이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시옵소서. 내 몸을 내어줌으로 사랑할 수 있고 내 것을 나누어줌으로 헌신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가득히 채워주시옵소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생명을 구원하신 주님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죽음조차 각오했던 에스더의 결단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이웃을 위해, 많은 사람의 생명과 삶을 위해 살도록 사랑하고 희생하고 섬기는 삶을 배워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어느 무명 시인의 감사기도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내 계획대로 안 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야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아내와 남편이 미워질 때도 있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을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야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을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니까요!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남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땅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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