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703번째 이야기
소년과 냇물 한 소년이 심부름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부탁한 편지를 급히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소년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한참 걸어갔을 때 냇물이 소년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소년은 자리에 쭈그려 앉았습니다. 소년은 물에 젖는 것이 싫어서 냇물이 멈추면 건너갈 생각으로 흘러가는 물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얘야, 왜 그리 냇물을 들여다보고 있니?" "그게요, 냇물이 끊어지면 길을 건너려고요!" 소년의 대답에 노인은 당황했습니다. 바로 그 냇물은 팔순 노인의 어린 시절부터 줄곧 흐르던 냇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소년은 발이 젖기 싫다는 이유로 언제 실현될지도 모르는 잔꾀를 부렸던 것이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부리는 잔꾀는 결국에는 자기 발목을 잡아채고 말 것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요행을 바라며 편한 길만을 택하지 마세요. 조금은 걱정되고 살짝 힘이 들더라도 인생이라는 냇물에 지금 바로 발을 담그세요. "인생에는 해결책이 없다. 나아가는 데 힘이 있다.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해결책은 따라오게 된다." 생텍쥐페리의 글입니다! |
돈이 더 많다고.. 인생에서 무엇을 얻으면 행복해질까요? 빌딩 몇 채를 가지게 되거나, 화려한 직업을 가지면 행복해질까요? 자신이 목표로 한 산을 정복하고 나면, 그 산 정상에 행복의 보따리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의사가 쓴 수필 한 토막이 오래오래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의사는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얼마 되지 않는 월세도 겨우겨우 내면서 생활했답니다. 월세에서 전세로 옮겼을 때, 전세에서 판자촌에 방 두 칸짜리 집을 장만했을 때, 그리고 대문 앞에 자기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걸게 되었을 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집을 옮길 때마다 방 하나가 더 생기는데, 그 행복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줄지어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이 흐르는 강물에 비치는데,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왜,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로서 크게 성공했고, 더 이상 큰 집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그건, 그 의사에게 이젠 더 이상 앞으로 달려갈 목표가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만 살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하고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그 어느 누가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늘 고민만 하는 철학자들도 행복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배운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가 생각나십니까? 그 사람도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실험해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린 결론은, "들어가 누울 집이 있고 세 끼가 해결되면 되는 것이지, 돈이 더 많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정, 사랑, 나눔.. 그런데, 이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잊어버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죽을 때나 되어야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양순자)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그릇에다가 보이는 물질이나 세상적인 그 어떤 걸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런 것을 소유하거나 달성했을 때, 잠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될 뿐입니다. 그러니, 삶의 목적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표를 바로 정해야 합니다. 혹시 아직이라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그 길과 목적지를 정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
터치의 힘..!②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이 이 남자를 만지신 것은 뜻밖의 행동을 넘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만지신 다른 사람들은 전염병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나병 환자와의 접촉은 철저히 금지된 행위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만자의 나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그를 만지셨습니다. 왜 먼저 나병을 고친 뒤에 만지시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유는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냈지만 터치는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은 만지지 않고 치유하셨다는 사실도 고려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나병 환자를 굳이 만지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깨끗해져라!"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냥 눈을 한 번 깜빡이거나 엄지를 치켜드는 간단한 동작 한 번으로도 상황이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를 직접 만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병을 치유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나병만 치료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콜카타에서 나병 환자들을 돌보녀 수십 년을 보낸 마더 테레사는 나병의 가장 비참한 점은 육체적인 질병이 아니라 "아무도 그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예수님께는 견딜 수 없이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비참한 기분을 치유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만져서도 안 되고 사랑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손을 뻗어 만지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느끼는 것을 그분의 손이 만졌습니다. 이렇듯 터치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그 터치가 우리의 행동으로 옮겨질 때입니다! |
연속되는 다윗의 승리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사무엘하 8장 1-18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셔서 사방의 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모압을 쳐서 조공을 받고, 소바의 군대를 치고, 아람을 종으로 삼고, 하맛의 조공을 받습니다. 에돔도 다윗의 종이 됩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요압은 구사령과, 여호사밧은 사관, 사독가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레셋 사람을 관할하게 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됩니다. 이렇게 왕국의 모든 체계가 정비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다윗(1-8절). 믿음이란, 믿음이 있는 이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미듬이 없는 이에게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승리합니다. 이 단락은 다윗이 전쟁에서 이긴 민족들에 대한 이야기 모음입니다. 1절, 다윗은 블레셋에게 절절매던 사울과 달리 블레셋을 굴복시킵니다. 2절, 모압을 정복한 후에는 키가 두 줄 길이 안에 해당하는 사람만 살리고 나머지는 죽입니다. 이는 당시 포로를 줄이는 방법인데, 다윗은 많은 포로를 남겨 병사의 수를 늘리기보다 줄입니다. 3-8절, 다윗은 강력한 군대인 아람 하닷에셀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합니다. 다우시은 노획물로 얻은 병거용 말을 100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힘줄을 끊어 비전투용으로 만듭니다. 다윗이 포로와 다윗의 숫자를 줄인 이유는 그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마병이나 무기나 군대가 아니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6절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 확실해지도록, 일상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묵상합시다. 다윗 왕국이 점점 강성해짐(9-18절). 다윗이 아람 하닷에셀과의 전쟁에서 크게 이기자 하맛 왕 도이가 화친을 제의하며 많은 선물을 보냅니다. 하닷에셀과 도이는 적대 관계였는데, 강력한 하닷에셀을 이긴 다윗의 위상이 근동 지역에서 높아지자 도이가 화친을 원한 것입니다. 다윗은 도이의 아들 요람이 가져온 선물과 함께 전쟁에서 얻은 금과 은을 하나님께 바치니다. 12절의 이스라엘과 암몬과의 전토는 10장에서 다시 언급됩니다. 다윗이 전쟁의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린 이유는 전쟁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승리의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려드린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울은 사무엘상 15장 12절, 승리 후에 자신의 기념비를 세워 하나님의 공로를 자신이 가로챘습니다. 승리의 주권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아는 성도는 날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15절, 다윗은 모든 백성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6-18절, 모든 국가 조직이 정비되고 구성됩니다. 우리는 삶의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만들고 있는지 묵상합시다. "모든 전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이기고 또 이기는 다윗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전쟁을 앞두고 병사로 삼을 포로와 말의 숫자를 줄이는 다윗을 보며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믿음의 야성을 떨어뜨리게 하는 어떤 것이든 미련 없이 정리하게 하시옵소서.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우리도 이 세상 사탄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또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장의 비결 미국의 청소 용역 관리 회사인 "서비스 마스터 클린"의 창업자 매리언 웨이드는 회사에서 화학 약품을 다루다가 사고를 당해 두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그는 더욱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하나님은 그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시각 장애를 경험하면서 시각 장애인에게는 집 안 청소 및 관리가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고 청소 용역 관리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훈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으로 정하고 사업을 통해 번 돈을 선한 사업에 많이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고객들을 섬길 뿐 아니라 직원들과 성경 공부를 하며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 회사는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미국과 캐나다 등 40여 개 나라에 지점을 둔 세계 최대 청소 용역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자서전인 <주님은 나의 변호사(The Lord is My Counsel)>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의 영광 중에 저를 받아 주신 주님, 이제 이 회사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회사는 계속해서 주님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분을 온전히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에 개입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십니다.(기도의 기적/이영훈 목사) |
성만찬-교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무려 열여덟 절이라는 지면인 17-34절을 할애하면서까지 주의 만찬과 관련해서 "함께 모인다"는 동사를 다섯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일에 주의 백성들이 주된 모임을 함께 가졌다는 사실을 시사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성찬식에서 가구 배치는 이런 모임을 더욱 용이하게 합니다. 이미 1662년 기도서에서 성찬대는 "교회의 본당이나 성단소(성가대석고 강단이 놓이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의도는, 식사를 위해 한 가족이 식탁을 중심으로 함께 둘러앉듯이 회중이 그 주위에 무릎 꿇고 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라우드 대주교는 성탄대가 항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단소의 동쪽 벽에 위치해야 하며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야 한다고 시지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많은 영국 교회들이 성찬대의 위치를 재조정해서 성례실 때 성찬대를 본당에 두어 사람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대 주위에 둘러서거나 무릎 꿇을 때, 인종도 사회적인 배경도 다르다 할지라도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는 하나 됨을 보여 주고 또 체험하게 됩니다. 떡을 떼는 것이 이것을 증거 합니다. 수세기 동안 중동 지방에서는 "함께 떡을 떼는 것"이 서로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고 더욱 굳세게 하는 방법이 되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나 됨의 본지로가 방법이 우리가 먹는 떡 속에 상징화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7절,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이렇게 생생한 상징적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서는 성찬용 떡보다는 오히려 실제 떡이 사용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수찬자는 한 떡에서 각자의 조각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 각자가 한 몸,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이니다. 더욱이 떡은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구원자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그 속에 우리가 공동으로 참여함으로써 생생하게 보이는 그분에게 우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그 일이야말로 우리를 하날 만들어 줍니다. 또한 성만찬, 즉 지상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의 식사야말로 천국 잔치의 시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 자신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며, 아울러 그 상징도 제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소서!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이사야 44:22).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거룩하고 복된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의 영원한 상속자로 택함 받은 주의 백성들이 세상으로 만족할 수 없고 세상으로 채워질 수 없는 삶임을 알기에 주 앞에 나왔습니다. 날마다 때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하기를 원하지만 저희의 연약함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으로 온전하게 거하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있는 죄성과 육신의 연약함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자신을 의지하며 살려고 했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하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품게 하시고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중심이시며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산불 피해가 너무 심합니다. 한평생 일군 논밭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처참하게 무너진 집을 돌아보며 가슴까지 타들어 간 이재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따뜻한 정성으로 저들을 돕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예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예수의 사랑으로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나라와 세상 사람들이 예수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1858년,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아주 나빴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있어서 앞에 있는 촛불조차 끌 힘이 없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과연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아이가 열한 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격려해 주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오히려 네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소년은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장애의 고통과 싸웠습니다. 결국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23세의 뉴욕 주 의원, 28세에 뉴욕 시장, 42세에 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1901년 43세에 미국의 26대 대통령이 되었고, 1906년에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705번째 이야기 (0) | 2023.05.02 |
---|---|
예림의집 2704번째 이야기 (0) | 2023.04.25 |
예림의집 2702번째 이야기 (0) | 2023.04.21 |
예림의집 2701번째 이야기 (0) | 2023.04.20 |
예림의집 2700번째 이야기 (0) | 2023.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