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702번째 이야기
밀물을 기다리는 배 앤드루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던펌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세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학교 공부라고는 4년간 받은 것이 전부였던 그는 젊은 시절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방문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을 들어서자마자 그를 완전히 압도해 버린 것은 벽 한가운데 걸린 그림이었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도 아니고 오래된 골동품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는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이 쓰러질 듯 놓여있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어딘지 우울한 기분마저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바로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그림과 글에 압도당한 그는 그 그림으로 인하여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28세가 되던 어느 날 다시 노인을 찾아가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그 그림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간곡한 부탁에 노인은 그림을 줬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 그림을 가까이 두고서는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라는 글을 자신의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다.", "버티기만 해도 잘하는 것이다."라고 흔히 말합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옵니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법입니다. 지금의 나의 상황이 썰물같이 황량하다 해도 낙심하지 말고 밀물 때가 올 것을 기다리면서 노를 젓기 위한 준비를 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좋은 기회를 만납니다. 다만, 그것을 포착하는 시기를 맞추기 어려울 뿐입니다! |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중고교 시절, 저는 친구들보다도 유독 순진한 아이였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더 많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악을 저지르는 사람도, 사실은 그들이 속한 환경 탓일 뿐, 진짜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었습니다. 어엿한 성인이 된 대학생시절에도,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철없는 아이였습니다. 세상은 늘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세상이 항상 내 편이 되어 줄 거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실수를 했고, 가끔은 믿었던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졸업 후, 세상의 때가 덜 탄 상태로 입사한 첫 회사에서는 눈물 쏙 빠지게 어려운 사회생활의 쓴맛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 거칠고도 험난한 시간을 겪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어린 시절 엄마 무릎에 앉아 읽은 동화책에서 배운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이 현실에서 늘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걸 경험하는 동안, 몰라서 헤매거나 실수도 많이 해서 상처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헤매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그리고 상처받아도 그걸 잘 이겨냈기에, 저는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이미 알았더라면, 그리고 실패할 일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헤어지고 말 사랑이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혹시 상처받게 될 걸 두려워했다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고 말았을 겁니다. 요컨대, 저는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성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모든 경험을 자양분 삼아서 오늘날의 제가 되었기에, 저는 저의 현재 이 모습이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더 소중한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말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땐 몰랐기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실수와 실패와 상처가 가득 하나, 그것이 저의 과거 무수한 선택과 도전을 후회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의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해서 얻은 값진 교훈은, 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이미래) 아시다시피, 유재석 씨는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MC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방송에서 밝히길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유재석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해주는 고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저 자신도 다시 젊은 날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비록 아쉽게 생각되는 점이 엄청 많을지라도, 다시금 그 과정을 되짚어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 또한 이미래 님처럼, 제 인생의 앞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용기 내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
터치의 힘..! 어제 방송에서 말했듯이 아무도 나병 환자를 만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보통 비참한 상황이 아닙니다. 사랑의 터치에는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적절한 사랑의 스킨십을 주고받으며 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실제로 의학계는 사람이 다른 생명체와 거의 혹은 전혀 피부 접촉이 없을 때 나타나는 "피부의 배고픔" 혹은 "터치에 굶주림"이라는 질병을 규명했습니다. 피부의 배고픔을 겪으면 우울증과 불안감이 나타나고, 때로는 육체적 불편함과 고통이 발생합니다. 심지어 환각 증세까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과학은 사랑의 스킨십이 생명을 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스킨십은 아이큐 향상, 어린아이들의 언어 습득, 읽기, 기억력, 신생아이 전반적인 발달, 노인병 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 병원에서 연구한 결과, 사랑이 담긴 스킨십을 받은 경우 환자들이 신체적, 정신적 질병에서 훨씬 빨리 회복됩니다. 터치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스킨십을 받아 보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는 존재 취급을 받던 이 나병 환자가 인간적인 접촉에 얼마나 굶주렸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그는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쳐 주고 싶어 하시길 바랐지만 그분이 자신을 만질 줄은 필시 상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습니다. 마태복음 8장 3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이 나병 환자에게 손을 뻗어 만지셨습니다. 여기서 "손을 대다"로 번역한 원문의 단어는 문자적으로 "꽉 붙잡다"라는 의미입니다. 목격자인 마태는 상황을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따라서 수백만 원짜리 양복을 입고 유튜브 사역을 하는 부흥사가 사람의 이마에 손가락 끝을 살짝 대는 장면을 상상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은 이 남자를 꽉 붙잡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양손으로 나병 환자의 손을 와락 잡거나 팔을 어깨에 두드리거나 양손을 어깨에 대고 그의 두 눈을 지그시 쳐다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편, 예수님이 이 남자를 만지신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사랑과 생명을 담아 사람들을 만지시는 모습이 계속해서 그려집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할 때도 손을 대셨습니다. 아이들이 다가올 때도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습니다. 눈이 먼 자를 치유할 때도 그의 눈을 만지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느끼는 것을 그분의 손이 만졌습니다.(계속..!) |
기쁨의 잔치에서 스스로 소외된 미갈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사무엘하 6장 16-2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들이는 마무리 장면과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던 다윗을 미갈이 조롱하고 힐랄하고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궤가 들어올 때 미갈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뒤놀려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깁니다. 다윗은 궤를 준비한 자리에 두고 제사를 드린 후, 백성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 줍니다. 다윗이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자 미갈은 그의 모습을 비난했고, 이 일로 미갈은 죽는 날가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자식이 없었다는 것은 다윗이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언약궤를 장막에 모심(16-19절).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을 깨닫는 데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우러납니다. 언약궤의 무사한 이동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기뻐 뛰놀며 춤을 춥니다. 언약궤는 미리 준비한 장막에 두었는데, 이곳은 성막과는 다른 임시 장소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임시로 두었다가 후에 성전을 지으면 그곳으로 안착시키려 했을 것입니다(7:1-3). 다윗은 언약궤가 무사히 도작한 것에 감사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백성을 축복하고, 차별 없이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떡을 나누어 주며 모두가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과 언약궤 이동에 함께하신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쁨의 잔치에서 소외된 인물이 있는데, 바로 그의 아내 사울의 딸 미갈입니다. 미갈은 기뻐 춤추는 다윗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왕으로서의 체통을 잃은 모습을 만백성에게 보였다고 비난합니다. 오늘날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지 깊이 묵상합니다. 다윗과 미갈의 갈등(20-23절). 다윗은 미갈에게 21절, 하나님이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선택하셨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아무리 천하게 행동해도 자신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왕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서는 23절에서 미갈을 "다윗의 아내"가 아닌 "사울의 딸"로 기록합니다. 즉 미갈은 3장 14-1절, 다윗의 아내로서가 아닌 사울 가문의 마지막 인물로서 강제로 다윗성에 끌려왔기에 언약궤를 무사히 옮긴 기쁨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미갈은 다윗에게 외면당해 자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다윗은 왕의 위엄과 체면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미갈은 천하게 보인다며 다윗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할 수만 있다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길을 따라갑니다. 지도자는 세상을 기뻐하는 넓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좁은 길에 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약 공동체와 함께 기쁨을 나누지도 누리지도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깊이 묵상합시다.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느 때에 하나님을 기뻐하는지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하나님 앞에서 감추지 않고 오롯이 표현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기쁨을 공동체와 나눌 때, 그 은혜에서 제외되는 이가 없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 공동체나 세상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겸손함과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지도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도의 권리와 책임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편한 곳은 "집"이요 가장 편한 사람은 "식구"입니다. 성도에게 교회는 가장 편한 곳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집의 식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자주 싸우는 대상 역시 "식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때, 때로 교회 지체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심과 진심은 결코 하나님께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기억하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겉으로 드러난 시험거리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의 식구들이 나를 흔듭니까? 그럴 때 "형이 보기 싫어 가출해 버리겠다."거나 "누구 때문에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스스로 뛰쳐나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놓쳐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하고, 상대방을 위해 절제해야 하고, 또 서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집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복과 권세와 책임을 공유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리가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집을 지킬 책임이 있는 존재가 바로 성도입니다.(교회/박영선 목사) |
성만찬-참여②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톨릭의 대답은, 떡과 포도주의 내제적인 실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 요소들을 먹고 마시는 것은 실제 그대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화체설"이라고 부릅니다. 루터파 교회들은 "공재설"을 가르치는데, 앞의 주장과 다소 유사합니다. 하지만 성공회 신조는 이것을 기부합니다. 제28항에 보면, 화체설은 성경에서 입증될 수 없으며, 또한 상징과 상징하는 대상을 혼동함으로써 성례의 본질을 뒤엎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제29항에서는, 살아 있는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설사 성례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단코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에 의해 이루어지며, 먹고 마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믿음을 보여 주는 생생한 영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그것을 몸속에 흡수하여 소호 하는 것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받아먹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제28항에서는, 성례를 올바르고 가치 있게 그리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는 것이며,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들여서 먹는 방법은 다름 아닌 믿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맥을 같이해서 1세기 유명한 성공회 신학자인 리처드 후커는, "그리스도의 가장 축복된 몸과 피의 실제적인 임재는 성례에서가 아니라, 성례를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서 발견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자극하기 위해서 시행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성례는 무엇보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방편이었다는 이유에서 은혜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하여 우리 조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복된 소식을 극적이고 시각적인 상징을 통해서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만찬은 우리가 성만찬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믿음으로 마실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으며, 마음에 간직하고, 기쁨과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
사랑의 삶을 살게 하소서! 은혜의 주님, 사랑과 자비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과의 바른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게 하시고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 오라고 하시지만 우리는 늘 이 핑계 저 핑계를 내세워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세상일에 쫓기고 있으며 나의 가정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이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늘 그것을 쫓느라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만 있습니다. 용서의 주님, 탐욕과 욕심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시어서 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감화를 주옵소서. 우리들의 삶도 주님처럼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시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할 때 언제나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빛이시며 등불이심을 확실히 믿게 하소서.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말씀의 능력을 받아 살게 하시고 늘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살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오늘도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병든 우리의 몸을 일으켜 세우시고 지쳐있는 우리의 등을 밀어주시옵소서. 주님의 손길을 떠나려 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더디 믿고 어리석은 삶을 산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개인의 지식과 경험을 더 중히 여겼던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내 개인의 신앙과 체험만을 절대시 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내적인 영의 삶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통해 더욱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모든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선물 수확의 결실은 천연혜택(하나님)이 96%요, 인공혜택(농부)이 4%라고 합니다. 이 말은 농부의 수고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농부의 수고도 헛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태양의 빛, 수분과 바람과 이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한 네 가지 요소가 토지와 씨앗과 물과 햇빛입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모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입니다. 한 가지 요소만 빠져도 농사를 망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요소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인간이 수고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토지를 주셔야 하고, 하나님이 씨앗을 만드셔야 하며, 하나님이 알맞은 비와 적당한 햇빛을 내려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내가 수고해서 농사를 짓고, 내가 수고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 먹더라도, 모든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이 주신 열매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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