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99번째 이야기
지도자의 조건 미국에선 지도자의 조건을 실력(Competence), 인격(Character), 헌신(Commitment)으로 3C이라고도 합니다. 지도자의 자질인 3C를 익히고 배우는 데에는 학교 교육보다 가정교육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특히 긍정적인 태도와 올바른 가치관은 가족 구성원의 평소의 삶 속에서 체득된다고 합니다. 교육학자 에릭 에릭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교육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무덤까지 이어집니다. 처음 30년 동안은 부모와 학교에서 영향을 받고, 남은 30년은 거기에서 배운 것으로 자녀를 양육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자녀 교육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도 본보기요, 둘째도 본보기요, 셋째도 본보기다." 자녀는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
다 불량품(不良品)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쓰나미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2년 전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한참 동안 힘들 겁니다.” 의사가 이 두 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저는 이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왜 하필 나한테?"라고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그래도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고 억울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좋은 일을 했으면 또 얼마나 했겠습니까? “저는 수술을 안 하겠습니다. 제 속에 있는 암과 함께 가겠습니다.” 저는 이미 암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 담담하게 저의 뜻을 전했습니다. 친구 말마따나 코딱지만 한 저의 집, 아침저녁 쓸고 닦고 해서 다시 청소하러 갈 일도 없고, 제가 죽었다고 저의 자식들을 찾아가서 엄마가 진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또, 제가 죽으면 몇 가지 안 되는 저의 물건을 가져갈 사람도 이미 정해놨습니다. 더 이상 정리할 것도 없습니다. 죽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20년 동안, 매년 연말에 유서를 쓰면서 정리를 했기 때문에 용서할 일도 없고, 용서받을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30여 년 동안 사형집행장으로 가는 사형수들을 곁에서 지켜봤는데, 각자 짊어지고 있는 짐 때문에 죽을 때조차 마음 편히 가지 못했습니다. 임신한 처녀도 할 말이 있다더니, 죽음 앞에서도 각자 할 말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못 간다고, 조금 더 살아서 정리할 일이 있다고 악을 썼습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알아서 열심히 산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뿐만 아니라, 이별도 잘합니다.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거기에 다하지 못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면서 목숨을 걸고 살아온 사람은 이별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별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모든 것이 다 불량품(不良品)입니다.(양순자/30년간 사형수 상담가로 활동) "죽음을 앞둔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가 이처럼 분명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죽음 앞에서 할 말이 많은 사람은, 즉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거기에 다하지 못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알아서 열심히 산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뿐만 아니라, 이별도 잘한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면서 목숨을 걸고 살아온 사람은 이별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후회가 거의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
진실한 표현 한 번의 힘 셸리 홀리스는 전도의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젊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이티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느끼고서 주저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티에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사랑하기 어려운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극심한 탈수 상태로 죽기 직전에 이른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의 이름은 그랜카였는데 며칠 내내 굶은 상태였습니다. 홀리스가 발견했을 때 그랜카는 소변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작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얼마 되지 않는 그랜카의 소유물을 나눠 가지고는 그랜카 옆에 간 하나를 갖다 두고 그대로 방치한 채 다 떠나갔습니다. 홀리스는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에는 힘에 부쳤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할머니 곁에 머물며 몸을 씻기고 음식을 더 넣어 드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랜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튿날 아침, 홀리스는 자신이 일하는 학교 바깥에 놓인 테이블 앞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걱정이 된 친구가 다가와 옆에 앉자 홀리스는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뒤에야 홀리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랜카 할머니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못했어." 홀리스는 찢어지는 가슴을 두드리며, 이번에는 꼭 예수님을 전할 수 있도록 다른 할머니를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얼마 뒤, 어느 늦은 밤 홀리스는 교회에서 나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대 갑자기 한 남자가 달여와 그녀의 셔츠를 와락 낚아채며 그녀를 벽에 세차게 내동댕이쳤습니다. 그 바람에 어깨가 빠졌습니다. 그녀가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서 남자는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습니다. 이로 물고 손전등으로 때리며 필사적인 저항을 한 끝에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거리로 달려가 도와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홀리스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눈에 보이는 첫 번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그 집에 살던 파탈리아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잠에서 깨어 방에서 뛰어나왔습니다. 그녀는 침입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홀리스를 발견하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홀리스는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전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당장 돌아오라고 다그쳤지만 홀리스는 단호한 음성으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전할 할머니를 다시 보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그 기회를 지금 주셨어요!" 홀리스는 미국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파탈리아의 지을 다시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마침내 파탈리아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홀리스는 그녀와 함께 바다로 들어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
배신자에 대한 공의로운 판단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일찍이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우거함이더라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사무엘하 4장 1-1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이스보셋의 살해당함과 므비보셋 이야기 그리고 이스보셋을 살해한 배신자의 악행에 대한 다윗의 공의로운 판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 "손의 맥이 풀렸고"라는 말은 용기를 잃고 낙심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넬의 죽음이 이스보셋과 온 이스라엘에 알려집니다. 이스보셋의 군 지휘관 레갑과 바아나는 낮잠을 자는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목을 베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바칩니다. 다윗은 악인이 의인을 침상에서 죽였다며 그들을 죽이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합니다. 이스보셋이 살해됨(1-7절). 어떤 이의 말과 행실이 거룩하지 않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울의 가문이 그러했습니다. 아브넬이 죽은 후 사울 가문은 급격히 몰락합니다. 이스보셋과 온 이스라엘은 아브넬의 죽음 소식에 충격을 받고 이제 대세가 다윗에게 넘어갔다고 판단합니다. 그러자 이스보셋의 군대 지휘관 베냐민 사람 바아나와 레갑은 밀을 가지러 온 체하며 이스보셋의 집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던 이스보셋을 죽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경계하시는 배신의 모습입니다. 6절, "찌르고"와 7절, "쳐 죽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나카"는 칼로 찔러 죽이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배를 찔러 죽인 후, 그의 머리를 잘라 내어 이를 가지고 도망한 것입니다.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사울의 남자 후손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만 남습니다. 므비보셋은 4절,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유모가 급히 도망할 때 덜어져 절게 되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추후 다시 등장합니다. 오늘날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앞장서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지 묵상합시다. 다윗이 바아나와 레갑을 처형함(8-12절). 8절, 잘못된 행실에 신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다윗 앞에 섭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를 갚으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스보셋을 죽인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신앙적 구실로 포장해 보상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다윗이 기뻐해 큰 상과 권력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 행실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신앙을 가장한 기만행위입니다. 하지만 바아나와 레갑의 행동은 자신들의 주군에 대한 배신이요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무죄한 피를 흘린 악인"으로 규정하며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들을 죽인 후에는 팔과 다리를 잘라 헤브론 못 가에 매달아 놓습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자신이 이스보셋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왕을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고 악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의 악행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경우, 우리는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묵상합시다.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 아버지, 자기 유익을 위해 남의 생명을 취하는 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이 악행인 줄 모르는 영적 무딤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악행을 합리화하는 자기기만을 버리게 하시고 악행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게 하시옵소서. 칭찬과 인정에 속아 악에 동조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거짓과 속임수와 모함이 난무하는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오직 정의의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오직 주님 편에 서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사랑 참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3:6). 여러분은 남편이 한 달에 정상적으로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금액 넘게 가지고 오면 뭔가 이상한 거 아닙니까? 만약 도박이나 뇌물이나 속임수로 얻은 것을 좋아하며 그대로 받으면 불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때 남편에게 "우리 이렇게 살지 맙시다."라고 하는 것이 진리로 인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로 인해 기뻐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의 속성은 불의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정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죄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때 과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겨냥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과녁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우리 삶을 하나님께 맞추지 못하도록 실족시키는 도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 그 도전들에 맞서야 합니다. 사랑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 희생과 헌신을 피하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해야 할 대상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매일 바른길을 걷기 위해서 매일 하나님께 우리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말씀, 그리고 사색과 결단 1/이재철 목사) |
성만찬-서론 대부분의 교회는 그리스도인들 간의 교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성만찬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일컬어 "주의 만찬"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곧 주님의 초대를 받아 제자들이 나눈 교제의 식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던 마지막 날(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날) 저녁에 직접 시행하신 이 성만찬 의식은 그날 이후 기독교 예배의 핵심으로 널리 인식되어 왔습니다. 누가는, 적어도 주후 57년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안식 후 첫날(즉 주일)에 "떡을 떼려"고 모이는 것이 교회의 관습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사도행전 20:7).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도 주의 만찬이 없었다면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는 성만찬을 주일 예배의 핵심 순서로 삼음으로써 성만찬의 중심성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교회들은 매달 한 번씩 전 교인에게 성만찬을 시행하는 것이 그 중요성을 최고로 강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성만찬에 상응하는 구약 시대의 의식은 유월절로서, 그것은 일 년에 단 한 번 거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유월절에 대해서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이 예식의 기원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그 때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해 주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출애굽기 12:25-27).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만찬의 의미에 관한 질문들을 하고 대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지금부터 성만찬에 네 가지 주제가 담겨 있음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물론 나(존 스토트)는 성공회에 속해 있지만, 모든 개신교 교인이 나의 견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나의 설명들이 당신에게 너무 분석적이라고 느껴질지, 어쩌면 지나치게 논쟁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예식에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예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날로 깊어져 간다면, 그 의미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 보고 또 그에 대한 해석의 난제들에 직접 부딪혀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생명을 주장하여 주소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라기 4:2). 사랑의 주님,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을 때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의 오른손으로 저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수술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떨리는 그들의 손을 잡아 주시옵소서. 불안한 마음에 평안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담대함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요즘 의료사고가 많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 주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손길을 붙드시고, 지혜와 인술의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환자의 생명이 자신의 손끝에 달려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최선을 다하여 수술에 임할 수 있도록 체력가 집중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좋은 결가를 소망합니다. 수술이 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말로 다 형언키 어려운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제는 더 이상 그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건강한 육체와 온전한 정신으로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축복하시옵소서. 완전케 하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두 소녀의 편지.. 한 상담 전문 라디오 방송에 열다섯 살의 한 소녀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나는 불행합니다. 나는 독방도 없고 부모의 간섭은 심하며 나를 믿어주지도 않습니다.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도 없고, 좋은 옷도 없습니다. 나의 장래는 암담합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사연을 듣고 열세 살의 소녀가 방송사에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걷지 못하는 소녀입니다. 사람이 보고 말하고 걷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나는 걷지는 못하지만, 보고 듣고 말하는 것으로 내 다리의 불행을 대신 감사하고 있습니다!" 두 편지만 보면 이 두 소녀의 미래는 확정적입니다. 열다섯 살 소녀는 불행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고, 열세 살 소녀의 미래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어떠한 일에도 불평할 일이 생길 것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일도 감사거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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