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96번째 이야기
가분수형 성장 한 사람이 화초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는 틈틈이 화초에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라는 낌새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말라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화초가 새싹을 틔우지 않으니 키우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분갈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화초에 비해 화분이 작아도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분을 뒤집었을 때 전혀 자란 것 같지 않던 화초의 뿌리가 화분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화초는 줄기가 위로 자라거나 잎이 무성히 돋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뿌리가 여러 가닥으로 길게 뻗어나가고 있었습니다. 화초가 자라지 않았던 이유는 뿌리를 내리는 동안 줄기가 잠시 성장을 멈췄기 때문이었습니다. 화초가 밑으로는 자라지 않고 위로만 자라는 가분수형 성장을 했다면 쉽게 흔들려 위험했을 것입니다. 화초는 더 높이 더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 위가 아닌 아래로 뿌리를 내리면서 성장의 기초를 다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장에만 주목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뿌리가 깊지 않은 이러한 가분수형 성장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내실을 다지며 성장하는 것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성장의 밑거름입니다. |
진실로 중요한 것은? 어제 TV에서는 우리나라의 빈부 차이를 보여주는 특별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병이 들어 직업도 못 얻고 혼자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단돈 100만 원이 없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빈민촌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골프 연습장까지 갖추고 있다는 강남 어느 주상복합아파트는, 한 채에 20억을 호가해도 매물이 없어 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명품핸드백에 대한 애착이 중독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는 어느 젊은 여자와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방에는 온갖 명품핸드백이 색깔별, 모양별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에서 발행하는 명품에 관한 잡지를 구독해 가면서 새로 나온 디자인을 구입한다고 했습니다. 최하 50만 원짜리부터 500만 원까지 하는 핸드백도 있었습니다. "왜 굳이 명품을 들고 다니느냐?"는 질문에, 그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걸 들고 다니면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져요. 저를 쳐다보는..” 그 여자의 말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의 눈길을 의식한 나머지,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목발을 짚고 다니는 덕에 누구나 다 쳐다보는 고로, 다른 사람이 시선이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 시선 때문에 그 많은 노력도 불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부럽기 때문이고, 저를 쳐다보는 것은 불쌍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쳐다볼 때에는, 부럽기 때문이거나 불쌍해서라기보다는,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우산은 살이 하나 빠진 거라서, 우산이 너덜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우산이 다른 우산에 비해서 컸기 때문에, 어머니가 저를 업고 학교 갈 땐 꼭 그걸 사용하셨습니다. 업혀 다니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게다가 너덜거리는 우산까지.. 그래서 비 오는 날은 학교 가기가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보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찢어진 우산을 쓰고 다녔다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찢어진 우산이든, 멀쩡한 우산이든, 비 오는 날에도 빼먹지 않고 학교 다니면서 공부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합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명품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진실로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라는 것입니다.(장영희)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글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TV에 방영된 명품핸드백에 대한 애착이 중독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는 어느 젊은 여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20년 전 그때 당시 TV에서는 명품구입에 대한 애착은 중독증 세라고 하면서 방영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쓸데없는데 돈을 쓰지 말라는 대국민적인 경고차원에서 방송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 중독증상은 점점 더 확산되어, 이제는 경제규모로 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명품소비 세계 1위로 올라섰다는 겁니다! |
어떤 말을 해야 할까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말을 해야 할까요? 첫째, "긍정"의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상대방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세워 주기도 하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세워주는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예를 들어 남편에게, "당신과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보, 존경해요!" 아내에게, "사랑해요. 당신은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군요!" 아이들에게, "네가 성장해 가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러워!" 직장 동료들에게, "일을 참 잘하는군요." 자신에게, "나는 잘하고 있어, 나아지고 있어!" 이렇게 생명의 말을 하십시오. 우리 입에서 나오는 이런 말 한마디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서 좋은 면을 찾아서 말해 주면 그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둘째, "애정을 담은"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해 주시며, 우리도 서로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사랑을 확신하도록 애정 어린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말로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나와 친한 한 목사님에게 열여섯 살짜리 소녀가 자기 남자 친구와 함께 자신을 찾아왔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갑자기 펑펑 울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목사님, 저 임신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목사님은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한테 말씀드렸니?" 그는 소녀의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지역의 유지이자 교회의 리더였습니다. 소녀는 말을 더듬었습니다. "저.. 그게.. 아직 말을 못 했어요. 알면 불같이 화를 내실 거예요." 목사님은 함께 기도해 주고 나서 이후로도 몇 번 더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라고 설득했습니다. 한 번은 소녀가 남자 친구와 함께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급히 만류했습니다. "안 돼. 지금 당장 아빠한테 가서 말하자. 내가 함께 가 줄게." 소녀가 싫다고 말하기도 전에 목사는 두 사람을 서둘러 차에 태웠습니다. 이윽고 그들은 소녀의 아버지를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소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저 임신했어요." 소녀의 아버지는 주먹으로 책상을 꽝 누르며 일어나더니 책상을 돌아 딸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일어서서 내 눈을 똑바로 봐!" 소녀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자리에 앉은 채 계속 흐느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일어서서 내 눈을 똑바로 보라고 했지?" 목사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계속!) |
다윗의 진심을 다한 애가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사무엘하 1장 17-27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다윗이 죽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지어 부른 일명 "활 노래"라고 불리는 애가입니다. 18절, "야살의 책"은 "의인의 두루마리"라는 뜻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시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영웅들의 업적을 기리는 책으로 추정합니다.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한 이 노래는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한 두 용사가 산 위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사랑함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했던 요나단 때문에 심히 애통해합니다. 다윗의 애가(17-24절). 살아생전 사울은 다윗에게 원수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상루의 죽음 앞에서 다윗은 그를 기리는 슬픈 노래를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사울의 죽음을 공동체의 슬픔으로 학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 개개인의 슬픔은 그만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슬픔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슬픔에 함께 아파하는 성도는 공동체를 사랑과 회복으로 이끄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다우시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애가를 지어 "활 노래"라고 이름합니다. 18절, 야살의 책은 영웅들의 업적을 기리는 고대 서시시를 담은 책으로, 여호수아 10장 13절에서도 언급됩니다. 히브리어로 "야샤르"는 "고결한" 혹은 "노래하다'라는 뜻입니다. 17절, "오호라"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의미로, 애가에 자주 나오는 감탄사입니다. 비록 사울이 실정을 하고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왕으로서 블레셋에 맞서 이스라엘을 지키다 죽었기에 다윗은 그를 영웅으로 평가해 "두 용사"가 죽었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항 용사였다고 칭송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요나단을 기념하는 다윗(25-27절).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이 되는 관건은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귀한지 깨달았는가에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덕에 이스라엘이 풍요를 누렸다며 그의 업적을 높게 평가합니다. 또한 다윗은 요나단을 특별히 더 추모합니다. 애가의 제목인 "활 노래"에서 "활"은 요나단을 상징합니다. 사울에 대한 복잡 미묘한 마음과는 달리 요나단에 대한 다윗의 마음은 심장을 쥐어짜는 듯 슬픕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26절,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라는 말은 "당신은 나에게 기쁨입니다." 혹은 "당신은 나에게 매우 소중합니다."라는 의미로, 자신도 요나단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사랑이 기이하고 여인의 사랑보다 더한 이유는 정적일 수도 있는 자신을 사울의 손에서 구해 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며 마지막 예를 다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칭찬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또한,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준 이의 죽음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마음 깊이 묵상하는 은혜의 시간이 됩시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의 실패를 제 성공처럼 여기고, 그들의 슬픔을 입술로만 위로했던 우리의 완악함을 회개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따지기보다 하나님이 그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시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하시옵소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주님의 그 마음을 닮아 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도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사랑의 동역자를 허락하여 주시고, 혼자 독불장군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협력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이 명령하신 사랑 하나님께 사용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으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발을 씻겨 줄 수 없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발을 씻겨 주다가도, 어느 순간 대야를 엎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끈불끈 올라옵니다. 하나님 말씀은 아주 예리한 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맡은 사람이 자기 상처 때문에 분노로 그 검을 휘두르면 많은 사람이 다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을 살리는 일부터 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리였던 마태 사도는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유대인들을 위해 마태복음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를 힘들게 한 그 사람을 찾아가라. 사랑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하면 네 집안, 네 자식을 내가 돌보고 긍휼을 베풀어 주겠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사랑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랑,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 핑계를 찾게 만드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에게 찾아가 자신의 시간과 물질, 가장 귀한 하나님 말씀을 죽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내 문제를 친히 돌보시고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소선지서 강해 설교 요나/김서택 목사) |
교제 그리스도인의 건강과 발전의 첫째 조건이, 매일 성경 읽기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조건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고립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때 교제의 기쁨을 맛보았다가, 그것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새 신자들은 교회의 정식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교인들의 기대가 마음 내키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확실히 안절부절못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공동체의 이상은 그야말로 거창하게 들리지만, 막상 그들이 경험한 실체는 이상과 거리가 멉니다. 이처럼 교회를 마주 대할 때 느끼는 거북함에 대해서 C. S. 루이스만큼 정곡을 찔러 이야기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유신론자로 회심한 이후, 주일에는 지역 교회에 출석하고 주중에는 자신이 속한 대학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는 교인이 된다는 생각이 "정말 매력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성직자를 좋아하되, 곰을 좋아하는 것만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동물원만큼이나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일종의 집단이었다. 한마디로 따분하기 그지없는 친목회 그 자체였다. 내가 볼 때, 종교란 홀로 있을 때 기도하고, 도 두세 사람이 모여서 영적인 문제들을 토론하는, 일종의 선한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그런데 야단법석을 떨며 시간을 낭비하는 성가신 모임 그 자체였다! 종소리, 군중, 우산, 각종 안내문, 야단법석하는 모습, 쉬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모이는 일들 따위였다. 찬송도 내 귀에는 정말 듣기 거북했다. 모든 악기 중에서 나는 오르간만을 좋아했다. 나 역시 말과 행동에 영적으로 어색하기 그지없고, 이 때문에 어떤 존교적 예식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중에 수십 년 간 교회에 다닌 사람, 심지어 평생 교회를 다닌 사람은 새 신자가 교회에 적응할 때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기질상의 문제와 문화적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적응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회심하기 이전에 소외감에 젖어 있다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 이제까지 받아 보지 못했던 환대를 받고, 교회로부터 오로지 안식가 환희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주이 깊게 살펴보려는 사람들은 바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좀 더 민감하고 동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가능한 한 고통 없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에게 인내하라고 권면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헌신된 일원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도의 불가피한 일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헌신된 일원으로 적응되고 나면 인내야말로 대단히 즐거운 제자도의 일면이 됩니다. 요한 웨슬레가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바꾸는 것은 곧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에 고독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가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우리는 은밀한 중에 기도하지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란 우리가 함께 있을 때만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
제게서 눈을 떼지 마소서!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편 130:5,6). 사랑의 주님,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울 때, 제게서 눈을 떼지 마시옵소서! 너무나 고달프고 힘이 듭니다. 삶의 무게가 너무나 버거워 견딜 수 없습니다. 상한 맘, 찢긴 가슴을 안고 주님께 엎드립니다. 주님의 너른 가슴으로 이 가녀린 영혼을 품어주시옵소서. 이 절만가 좌절의 속앓이를 언제까지 해야 할지, 더 이상 버티며 살 수가 없습니다. 병든 이들의 마음을 끌어안으셨던 그 따사로운 손길로 제 손을 잡아주시옵소서. 소외된 이웃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그 사랑으로 제 마음을 만져주시옵소서. 진정으로 주님의 손을 잡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진정으로 주님 품에 안기길 갈구합니다. 다가와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주님이 제 곁에 계시기에 홀로가 아님을 느끼기 원합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 하시기에 지쳐 엉클어진 모습도 다시금 추스르기를 원합니다. 주님, 제게서 눈을 떼지 마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제게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주님이 전부입니다.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불행과 행복 불행은 불평하는 자의 것이고, 행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입니다. 불평은 성난 파도와 같으나, 감사는 잔잔한 호수와도 같습니다. 불평하는 것은 망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고, 감사하는 것은 성공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불행과 행복.. 당신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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