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9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4. 7. 13:24

예림의집 2694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성화 주자로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국내 1호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 씨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기자라는 꿈을 키웠는데, 대사를 이해하고 전달하기에 비장애인보다 훨씬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발성과 발음 연습을 비롯한 연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오디션과 12번의 미팅을 거쳐서 영화 <사랑해, 말순씨>로 데뷔하게 되었고, 이후 방송 및 CF,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물한 번째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다운증후군으로 "못난이"라는 놀림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본인은 자신에게 하나 더 있는 염색체가 "행복 염색체"라고 말합니다. 휠체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1급 지체 장애인이기도 한 작가 고정욱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이 땅에 산다는 건 남들보다 더 험한 길을 더 힘들게, 그리고 더 많이 오랫동안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용기를 내세요." 장애에 대한 편견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장벽입니다. 장애인 분들이 노력을 해서 얻은 것은 극복이 아닌 성취입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노력하면 같아지는 것이 아니고 나아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모든 장애인, 비장애인이 그렇습니다. "나를 둘러싼 장애들을 뛰어넘지 못할 때마다 부모나 사회 탓으로 돌리지 말고 가장 나답게 자신의 인생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다." 일본 작가 "센다 타쿠야"의 조언이었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욕심으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을 때, 중학생 아들이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내놓으면서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가자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아들 녀석이 기특하다면서 차량과 경비를 지원할 테니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간 곳이 안동 하회마을입니다. 들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방안을 적셨습니다. 그 빛은 제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사악사악 빗질소리 같은 대나무 울음소리도 들렸습니다. 순간, 제 마음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달빛과 대숲 소리가 독기 어린 나를 무장해제 시킨 겁니다.
"미선아, 너는 열심히 잘 살았어. 그러니, 너를 너무 궁지로 몰아넣지 말거라! 너는 내 귀한 딸이란다." 저를 위로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 밀어 넣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주님은 위로하시고 수선하셨습니다. 저의 어려움을 몰라주고 도움 요청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그동안 분노의 화살을 쏘아댔는데, 이제 그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습니다. 못난 저에게 주님께서는 여행을 통하여 쉼을 얻게 하셨고, 또 여행의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하시고, 분노의 화살을 부러뜨리게 하셨습니다. 그때 저의 영혼은 풀 한 포기조차 나올 수 없을 만큼 메말라 있었는데, 주께서 물을 주시고 다시 씨를 뿌리셨습니다. 저의 영혼을 가꾸시는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오랜 세월, 교회 다니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주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삶의 벼랑 끝에서, 저는 주님의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맘속에는 오직 저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의 자리는 제 마음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삶의 절벽을 느꼈을 때, 비로소 저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진리를 따르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지금 저는, 주께서 저에게 주신 위로의 선물을, 힘들고 지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이 얼마나 허망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명예가 얼마나 가벼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집결지에서, 건강한 약국의 "약사 이모"로, 미혼모 가정의 "약국 할머니"로 불리면서, 주께서 저에게 주신 이 길을 잘 걷기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다.( 이미선  약사)

이미선 약사는, 미아리 텍사스촌(창녀촌)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텍사스촌으로 흘러 들어가서 몸을 팔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여인들을 적대시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언니가 되고 이모가 되고 또는 할머니가 되어서, 그들을 도와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야말로, 보통사람으로서는 쉽사리 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가 그런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은 남다른 고난의 동굴을 통과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남다른 고난의 경험은 연약한 자들을 향한 사랑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예림단장 칼럼

당신의 세상을 만든 말들
 
우리의 세상은 말의 힘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말을 해 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 우리 자신, 변화의 가능성을 믿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우리를 세워 주고, 지금 우라가 삶에서 누리며 감사하는 긍정적인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계속해서 잊히지 않는 죽음의 말들을 우리에게 쏟아 낸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제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어떤 말이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혀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었는지 예를 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곧바로 이런 대답이 달렸습니다.
"너와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는 결함투성이야.", "너는 무책임해", "머리가 어쩜 그렇게 나쁘니.", "어쩌다 너 같은 애를 낳았는지..", "네 언니를 좀 봐, 언니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없겠니?" 등입니다. 한 신경과학자는 우리가 간계적 고통에 관해 이야기할 때 육체적 고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슴이 찢어진다", "속이 상한다.", "그 말이 비수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는 우리가 육체적인 고통을 경험할 때와 관계적 고통을 경험할 때 뇌 상태의 차이를 연구했습니다. 
그 결론은 "무엇이 육체적 고통에 관한 분석인지 사회적 고통에 관한 분석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뇌 스캔 사진들을 나란히 놓고서 보면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입니다. "몽둥이와 돌로는 내 뼈를 부술 수 있을지 몰라도 말로는 내게 상처를 줄 수 없다!"라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정서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실질적이고 고통스럽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안과에 갔다가 난생처음 안경을 쓰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안경은 마치 내 코 양쪽에 놓인 두 개의 자동차 운전대와도 같이 매우 커 보였습니다.
당신에는 안경을 쓴 아이들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몇몇 녀석들이 깔깔거리며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경을 쓰니 바보 얼간이 같아!" 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불렀습니다. 우리는 다 그 여자 선생님을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했는데 우리는 선생님이 마음도 착하고 얼굴도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경을 새로 맞췄구나!"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내가 안경 쓴 것을 눈치채지 못해서 놀릴 길회를 놓쳤던 친구들에게까지 다 알리다니!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슴하셨습니다. "너 이렇게 하고 오니까 참 똘똘해 보이네, 공부 잘하게 생겼다!" 그 말에 저의 기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이들도 선생님의 그 말씀 이후로 저를 놀리지 않게 되었고,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세상은 우리의 귀에 들린 말이 만들어 낸 것이며, 우리도 말로 주변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생명이나 죽음을 말할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생명의 말을 해야 합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영원한 구원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태복음 27장 35-5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입니다 45절, "제육시, 제구시"는 각각 정오,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48절, "해면"은 바위 밑에 서식하는 해양동물로, 햇볕에 말리면 수분을 잘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패를 붙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면 자신을 구원하고 내려오라며 조롱합니다.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라고 외치시고 돌아가시자,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집니다.
 
조롱받으시는 예수님(35-44절).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기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난과 죽음도 그분의 완전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그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하고 치욕스러운 형벌입니다. 무지한 이들로 인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35절,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에 집착합니다. 이는 진링 무관심하고 세속을 따르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한 듯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온갖 모욕을 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모욕당하심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40절과 42절, 지나가는 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스스로를 구원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합니다. 마귀의 목표는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쓴 잔을 다 받으십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적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살린 사랑의 절정(絶頂)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조롱과 모욕에도 끝가지 고나을 감당하셨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이 조롱당하는 현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묵상합시다.
 
예수님의 죽음과 성도들의 부활(45-53절).
46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외침은 고통의 절규를 넘어 우리 삶을 바꾼 역전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은 죄인으로 정죄받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그분을 믿는 자들이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놀라운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첫째, 51절,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쪽으로 찢어집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분리"를 상징합니다.
이 휘장은 1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에만 열렸습니다(히브리 9:7).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 휘장이 찢어져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새로운 살 길"(히브리 10:20)이 열린 것입니다. 둘째, 52절, 무덤이 ㅇ려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가 살아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사망 권세를 이기신 승리의 사건임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부활의 서막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십자가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성도의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누리는 은혜는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신 주 예수님, 고귀한 몸을 완전히 찢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죄인들에게 열어 주신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만이 제 자랑이요 기쁨이며 구원의 능력임을 선포합니다! 참을 수 없는 조롱과 고통을 묵묵히 받으신 주님의 길을 저도 따르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임을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우리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과 주인으로 따르는 것이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십자가 고통을 안다면..
 
만은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액세서리로 활용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십자가 목걸이 하나쯤은 갖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대의 십자가는 가장 치욕스러운 죽음을 가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죄수들이 산 채로 때로는 죽은 후에 형틀에 매이거나 못 박혔는데, 이 처형 방법은 페르시아, 인도, 앗시리아 등지에서도 반역 죄인과 전쟁 포로 등에게 자행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마 시민들은 아주 중대한 죄를 짓지 않은 한 십자가 처형에서 면제되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식만지 백성과 하급 계층 사람들, 노예들에게 국한해 시행되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명예로운 로마 시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만큼 십자가형은 한 사람의 인격을 조금도 존중해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형 직전에는 매질이 가해졌습니다. 발가벗겨진 채 들보에 매이거나 못 박힌 사형수는 점점 장기가 손상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일간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와 그 형벌을 받을 때 어떤 종류의 수치를 경험해야 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죄인인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절절히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하게 됩니다.(질문 마태복음/왕인성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
 
가거를 돌아보는 것은 경배와는 다르게 "감사 기도(thanksgiving)"이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경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에 대해 그분을 찬양합니다. 그런가 하면, 감사 기도를 통해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건망증은 결국 배은망덕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인자하심을 기억하라고 백성들에게 촉구했지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바라건대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시편 103절 2장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한 것처럼, 기억과 감사 기도, 이 두 가지를 항상 반복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독려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감독 교회 기도서>에 나오는 "전체적인 감사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의 핵심적인 요약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창조와 보존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축복에 대하여." 그리고 다음으로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구속하신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아울러 "은혜의 방편과 영광스런 소망에 대하여." 즉, 종말에 천국을 보장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각각 그분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에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회상하기 위하여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옳을 듯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에 대해 고백한다면,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도의 횃불

주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시편 70:1-5).
 
주님! 이 죄인이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을 때, 주님밖에 없습니다. 엎드릴 곳이 주님밖에 없는 인생임을 주님은 아시지요? 저를 이 절망의 상황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지금, 주님마저 저를 외면하신다면 더 이상 제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이제 제게는 어떻게 손쓸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제게 남아있는 마지막 방법은, 주님 앞에 엎드리는 이것뿐입니다. 매번 주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하면서 해볼 것은 다 해봤습니다. 그러나 제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픔과 절망뿐이었습니다.
주님! 주님 보시기에 아직도 제가 깨뜨려야 할 것이 남아 있습니까? 제가 얼마나 더 부서져야만 되는지요? 저의 끝은 어디입니까? 누더기처럼 변해버린 저의 인생, 이젠 더 이상 버티기가 힘이 듭니다. 주여, 긍휼을 베푸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 죄인을 건져 주시옵소서. 이 불쌍한 죄인을 살려 주시고 구원의 빛을 비추시옵소서. 더 이상 침묵하지 마시고 당신께 매달리는 이 죄인을 속히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긍휼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마음을 낮추면 모든 것이 감사다!
 
욥의 고난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당한 고난을 대표할 만큼 매우 극심한 고난이었습니다. 그 많던 재산을 한순간에 잃었고, 자녀들도 모두 잃었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으며, 친구들도 욥을 위로하지 않고 조롱했으며, 아내마저 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극심한 고난 중에도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알몸이란 핏덩어리를 말합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즉 요은 자신의 마음을 제로로 낮추었기에 감사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감사는 무(無)에서 시작합니다. 무에서 출발하면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옷 한 벌, 밥 한 끼, 숨 쉬는 공기, 따뜻한 햇볕, 아름다운 자연.. 이 모두가 감사의 조건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