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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의 일상 "예배"(요한계시록 4장)

예림의집 2023. 4. 8. 20:14

하늘나라의 일상 "예배"(요한계시록 4장)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요한계시록 4장 1-11절).

사람들은 천국에 관심을 보이며, 예나 지금이나 구원받은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 말은 지극히 옳은 말이나 천국이 어떠한가에 대한 물음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이야말로 천국을 명쾌히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이 땅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언어 이상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언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영광과 기쁨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빛입니다. 요한은 천상의 세계에서 보게 된 광경을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절, "이리로 올라오라!". 요한은 성령에 사로잡혀 곧바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하늘의 광경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늘 중앙에는 보좌가 하나 놓여 있는데, 그 보좌는 온 세상과 모든 만물의 권위와 권력의 중심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하늘 보좌"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 보좌에서 주님은 아래에 있는 혼란한 세상을 올바로 다스리십니다. 그 보좌에는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보좌는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삶의 보좌에서 밀어내려고 합니다. 세상의 일에서 주님을 배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 보좌는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다스리는 자리입니다. 어느 것 하나도 보좌의 다스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요한은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더 이상 자세하게 묘사할 수 없었습니다. 눈에 들어온 관경이 너무도 압도적이고 아름다워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70인 장로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밟고 있는 땅에 비친 영광의 빛이었습니다. 그 땅은 사파이어나 크리스털 같은 보석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요한도 자신이 본 관경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에 비유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늘 보좌 주위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었습니다. 이 보좌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무지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의 죄와 고통을 내려다볼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바로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손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고통까지도 모두 느끼십니다. 이 땅에서 울부짖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곧장 심판하거나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다리고 인내하십니다. 인간의 죄와 허물을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벗어날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그 보좌에서 인간을 위해 자연의 질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지키십니다.
세상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십니다. 무지개는 우리를 지키신다는 "약속"의 상징입니다. 무지개는 늘 그분의 얼굴 앞에 있습니다. 그 약속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보좌에 둘린 무지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지개와 같지 않습니다. 천상의 무지개는 보좌를 둥글게 두르고 있는 반면, 우리가 보는 무지개는 반원입니다. 당 위에서는 둥근 모양의 무지개를 볼 수 없고 일부분만 보입니다. 하지만 하늘 보좌에 있는 무지개는 안전하게 둥근 모습입니다. 이는 하늘 보좌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자리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무지개는 일곱 빛깔이 아니라 한 가지 빛깔, 즉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내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에메랄드빛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평화롭게 만듭니다.
어떤 빛깔은 너무 자극적이고 어떤 빛깔은 흥분을 일으키거나 예민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에메랄드 빛은 우리의 눈을 쉬게 하고 영혼까지 달래줍니다. 하늘 보좌에 둘려 있는 무지개는 차분한 에메랄드빛을 냅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과 절망의 부르짖음, 하나님을 향한 반항과 교만의 소리를 모두 듣고 계십니다. 그분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보시는데, 그중 많은 자녀가 탕자입니다. 신실한 자녀들은 어둠 가운데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다같이 넓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헤아리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목자 잃은 양 같은 무리를 보고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습니다. 고난 받으실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습니다. 해외 선교를 나가 그 지역을 직접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좌에 계신 그분이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어떻게 마음이 평온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분이 마지막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는 원대한 목적과 계획이 있는데, 지금은 그 계획이 이루어져 가는 하나의 단계일 뿐입니다.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기에 그분은 지금 이 시간에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은 위대한 사랑의 계획입니다. 에메랄드빛을 발하는 보좌 위에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십니다. 평화의 무지개가 둘린 보좌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늘로부터 평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하늘 보좌 둘레에 놓인 24개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 보좌에는 24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사라들은 누구일까요? 24개의 보좌와 24명이 사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서 저는 "그림 언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림 언어는 동양의 언어일 뿐 아니라 아이의 언어이자 보통 사람들의 언어이고 우주의 언어라고 했습니다 그림 언어를 이해하면 여기서도 도움이 됩니다. 본문은 그림 언어로 말합니다. 인간의 능력 범위 안에서 천상의 메시지를 그림 언어로 고쳐 썼습니다. 세월이 흘러 환경과 언어, 사고방식이 변하면 대부분의 책은 구닥다리가 되지만, 성경은 늘 새로운 세대에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단순한 그림 언어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여기에 나오는 그림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보좌에 앉은 사람들은 장로입니다. 장로라는 것은 대표자란 뜻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사람이나 사물의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이 온전히 모인 상태를 12라는 숫자로 표현하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로 나눈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며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의 구원 문제의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12의 2 배수는 24입니다. 이 24명의 장로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구원받은 자를 대표합니다. 다시 말해, 창조 이래 지금까지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이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주님 앞에 모인 것입니다. 상징과 그림을 가지고 이러한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로들이 "앉아 있다"는 것도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노예나 하인은 주인이 있는 곳에서 함께 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나 동료, 가족끼리는 함께 앉을 수 있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앉아 있다는 이야기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가셨을 때 아버지 오른편에 함께 앉아 계셨습니다. 함께 앉는다는 것은 친밀함과 우정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역시 하나님께 용납받고 그가 계신 곳에 함께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24명의 장로는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흰 옷은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주님은 3장 4,5절에서 승리한 백성들이 흰 옷을 입고 함께 다닐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3장 18절에서는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려면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6장 11절, 순교자들은 흰 옷을 한 벌씩 받아 들고 기다렸습니다. 7장 9절, 모든 나라에서 온 큰 무리도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19장 8절, 결혼식을 맞은 신부도, 14절,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도 밝고 깨끗한 흰 옷을 입었습니다(19:8, 14). 흰 옷은 의로운 삶을 가리킵니다(19:8), 어린양의 피로 깨끗하게 빨아야 흰 옷이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고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아 순결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늘 보좌에 계신 그분 앞에 나아갈 때 정결하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24명의 장로는 머리에 "면류관"도 썼습니다. 면류관도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3장 11절, 고린도전서 9장 25절, 디모데후서 4장 8절, 야고보서 1장 12절, 베드로전서 5장 4절 등. 보통 주님은 인정의 표시로, 또는 충성이나 섬김의 대가로 면류관을 주십니다. 천사가 면류관을 썼다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받으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가치와 그분이 하신 일을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받은 수치를 씻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대가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해 당한 고초와 어려움, 인내와 충성을 모두 인정받는 것입니다. 보좌 앞에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인정하며 위로하십니다.

보좌 앞에 일곱 개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일곱 횃불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완전한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이 그림 언어 역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보좌 앞에 성령님이 임하시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에 걸쳐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내려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으로 오면 예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오순절 날 말씀대로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의 온몸과 마음을 사로잡았고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 안에 계셨지만, 그들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곧 교회 안에 거하십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은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들을 통해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서신서를 보면, 성령님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데살로니가 2장 6절, 7절을 보면, 교회 안에서 성령님은 악한 세력의 힘을 억제하십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날이 오면 악한 세력을 힘을 억제하시는 분, 즉 성령님께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은 그날이 오면 보좌 앞에 계십니다. 이 부분이 지금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점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눈에 펼쳐져 있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보좌 앞에는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유리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보좌 주변에는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이 생물들 역시 주목해야 합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여기저기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타나기도 하고, 성막이나 성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 나오는 새 성전에도 등장하며, 사람들의 생각 속에도 등장합니다. 에덴동산 입구에서도 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중 에스겔서에 가장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에스겔서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이 생물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결국 같은 존재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네 얼굴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천사의 얼굴을 할 때도 있습니다.

사방에 눈이 달려 있고, 거룩한 불이 온몸을 휘감고 있습니다. 이는 완전하게 순결과 지혜, 순종과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생물들은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합니다. 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존재들은 두 가지 상반된 메시지를 가집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과 활동을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대표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이상적인 창조물입니다. 죄로 얼룩지기 전의 모습, 하나님이 늘 바라시던 모습, 죄가 사라진 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창조물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뜻을 기쁘게 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창조물이 창조주를 찬양하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 하나님은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4장에 나오는 하늘나라의 일상인 "예배"의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제외하고 모든 출연자들이 보좌에 계신 그분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상의 일상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나라이(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 보좌의 예배가 이 땅에서도 우리의 예배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천상의 예배를 이 땅에 실현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존귀하신 주님, 2천년 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주님의 때가 되면 다시 오시리라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4장을 통해 살펴본 천상의 예배가 이 땅의 우리의 예배로, 삶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천상의 예배를 이 땅에 실현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