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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①

예림의집 2023. 3. 25. 10:58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①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요한계시록 2장 8-11절).

 

이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주님의 눈으로 들여다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이 본 그대로 우리가 보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니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교회를,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잘못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각 편지의 초반에는 주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인지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말씀에 의미와 권위를 부여합니다. 교회들은 그분의 모습을 바라보며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다음 각 교회마다 잘한 일은 칭찬하고 잘못한 일은 나무라십니다. 너무도 정확한 지적이라 누구도 감히 의심하거나 토를 달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마다 잘못된 일을 회개하라고 말씀하시고, 회개하지 않으면 일어날 일도 경고하십니다. 말씀을 귀 담아 듣고 마음에 새기길 권고하십니다. 또 악을 이기는 자에게는 은혜를 내려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도 불꽃같은 눈으로 일곱 교회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당시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바울과 요한이 가장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은 곳도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 교회가 잘한 점, 수고와 인내, 참된 신앙을 향한 열정,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견뎌낸 것을 아낌없이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워하는 것을 그들도 미워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있었으니, 바로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를 향한 충성심은 있었지만 예수님과 형제들을 향한 사랑은 늘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잘한 일이 많아도 그분을 향한 사랑이 없으면 모두 허사가 되고 맙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모든 일을 감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자격이 박탈될 수 있었습니다.
참된 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랑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랑을 바라셨습니다. 그것이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조직이나 교리, 신조가 교회의 핵심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사역도 진정한 가치로 빛납니다. 사랑이 없는 사역은 참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촛대가 자리에서 옮겨지게 됩니다. 정통과 신조를 지키고 열심히 사역 활동을 하는 교회도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머나교회에는 주님께서 자신이 당한 고난과 죽음을 언급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서머나 교회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깊었습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가난했고 주변에서 비방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눈에 그들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부유하고 귀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에게 핍박은 받았지만, 주님은 그 유대인들을 사탄의 무리라고 비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책망하시기보다 오히려 그들이 당할 환난을 잘 극복하도록 마음을 다해 격려하셨습니다.

 

버가모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주님은 스스로를 양날의 칼을 가진 분으로 소개했습니다. 누군가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지역에 있었던 버가모교회는 탄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나무랄 것이 있었습니다. 버가모교회는 악한 무리와 타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간통을 저지르는 행위만큼이나 추악한 일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하셨습니다. 심지어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직접 버가모교회와 맞서 싸울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버가모교회는 원수와 어울리면서 스스로 주님의 원수가 되고 있었습니다.

 

두아디라교회에 보내는 말씀에서는 주님의 정결함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정결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찾아내 제거해 버리는 분이십니다. 그래도 두아디라교회에는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에 대해 주님은 진심으로 칭찬하셨습니다. 하지만 버가모교회 안에도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님은 이를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20절,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 부분에 좀 더 주목해 봅시다. 구약 성경에서 이세벨보다 더 악한 이름이 언급된 적은 없습니다. 이세벨은 부정한 사람의 대명사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부추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전해야 하는 민족이 더할 나위 없이 악하고, 도리에 어긋나 있는 상태로 치닫게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패망이었습니다. 주님은 두아디라교회 성도들을 유혹하는 거짓 여선지자에게 "이세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지 않습니까? 거짓 여선지자에게 이세벨만큼 딱 들어맞는 이름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실제로 음행을 저지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두아디라교회는 오랫동안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가 변하려면 그만큼 오랜 시간 인내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세벨처럼 고집을 부리면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고집을 꺾지 못하면 큰 환난이 올 때 휩쓸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데교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치하고 생명을 주관하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사데교회에 칭찬하는 내용은 따로 없었고, 대신 스스로 살아있다고는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죽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아직 선한 사람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더러워진 옷과 같아서 주님은 도둑같이 와서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아 벌거벗게 만들겠다고 경고하십니다.

 

빌라델비아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일곱 편지 중에서 가장 깁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은 거룩하고 언약에 충실하며, 충성의 대가로 사역의 기회를 주는 분임을 강조하십니다. 빌라델비아교회도 그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지도자들은 꾸준히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특별히 뛰어나거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을 지키며 살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켰기 때문에, 앞으로 닥쳐올 환난 날에 그 교회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장 10절,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하지만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기보다 시험의 때를 잘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이 "시험의 때"는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어느 단어를 번역할 때는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해야 정확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신약 성경의 전체 흐름을 고려해야 합니다. 빌라델비아교회에 있는 믿음의 성도들은 닥쳐올 환난의 때에 주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에 말씀하시는 분은 참되고 신실한 증인이요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예수님은 아무런 칭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교회는 잘못된 것을 가르치거나 악한 세력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잠들어 있었습니다. 풍요롭고 유복하며 윤기가 흘렀고 자기만족에 취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요?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강하게 꾸짖었지만 그것은 결국 "엄한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외면적 상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림 언어로 각교회들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교회는 하나의 교회의 상황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 교회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과 교회 주어지는 약속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며, 교회를 통하여 구원 계획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함께 나눈 일곱 교회의 상황들이 현재 존재하는 모든 교회의 상황임을 알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각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칭찬과 꾸중과 경고와 약속을 잘 받아 주님께서 귀히 쓰시는 교회로 거듭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