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②
지금까지 우리는 주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신 일곱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각 교회마다 칭찬받을 만큼 잘한 일도 있고 심한 꾸중을 들을 만큼 잘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말씀을 지키는 신실한 무리도 있었습니다. 특히 주님의 빛을 전할 만한 자격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일곱 교회 중 두 교회는 극한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정결함을 유지했습니다. 또 다른 두 교회는 부도덕과 우상 숭배와 음행을 허용했습니다. 나머지 세 교회는 겉으로는 정통을 지키는 듯했으나 예수님께 무관심하거나 미지근하거나 죽어 있었습니다. 사실 무관심과 미지근함과 죽음은 같은 말입니다. 주님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촛대에 지나지 않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교회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연기가 자욱해 빛이 제대로 비치지 못합니다. 다섯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요한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1세기 초대 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복음은 온 세상에 퍼져가고 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 영광의 빛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빛을 비추어야 할 교회 안에는 초대 교회보다도 연기가 더 자욱합니다. 아무리 촛대가 가까이 있어도 복음의 빛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교회는 밧모 섬에서 들려주시던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듯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믿음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에베소서, 사데, 두아디라교회가 하던 방식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누구도 교회를 향해 비난을 퍼붓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할 뿐이었습니다. 밧모 섬에서 요한에게 주신 말씀은 당시의 교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교회를 향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변화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다면 복음의 빛을 전하는 사명은 박탈당하고 말 것입니다. 2장 5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특권과 기회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 2장 12-16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직접 교회를 원수로 여기며 맞서 싸우실 수도 있으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2장 22, 23절, 교회는 큰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3장 3절, 주님이 도둑같이 와서 심판하십니다. 3장 16절, 역겨워서 내뱉어 버리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분노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내와 사랑이 담긴 가슴 절절한 호소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경고하시면서 각각 약속하신 바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교회에 전하는 말씀을 귀담아들으라고 강조하십니다. 일곱 교회 중 두 교회는 여전히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다섯 교회에는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확실히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과 음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편지 말미에 약속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기는 그에게는"이라는 단서를 붙이셨습니다. 여기서 "이기는"이라는 표현이 아주 중요합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나아가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핵심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하면 꼭 반대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그 반대에 굴복하지 않으려다가 갈등이 생겨나는데, 갈등의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누군가는 악한 세력의 공격에 넘어져 악한 세력에게 몸과 마음으로 동조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마음이 흔들려 넘어집니다. 어느 정도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안전함과 유익함을 바라며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반면, 악을 "이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치열하게 싸우고 끝까지 넘어지지 않습니다. 온몸에 상처가 나고 피를 흘려도 끝가지 싸워서 승리를 거머쥡니다. 강인한 성도들 앞에서는 아무리 악한 세력도 맥을 못 춥니다. 이기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집니다. 마치 마음껏 사용해도 좋은 보물 상자가 앞에 놓인 것과도 같은데, 그것은 일곱 교회에 전해준 일곱 개의 약속입니다. 승리하는 자들에게는 일곱 가지 약속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제부터는 약속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첫째, 요한계시록 2장 7절,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둘째, 요한계시록 2장 11절,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신다고 말슴하셨습니다. 셋째, 이기는 자는 주님과 친밀해지는 특권을 얻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2장 17절, 예수님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서 왕이신 주님을 섬길 특권을 얻게 됩니다. 넷째, 요한계시록 2장 26-28절,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새벽 별"을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2장 16절을 보면, 예수님은 스스로를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벽 별은 어두운 밤이 지난 뒤 하늘에 떠서 새로운 날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새벽 별을 맞이하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다섯째,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더불어 3장 5절, 예수님께서 직접 그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입니다. 여섯째, 3장 12절, 하나님과 깊이 있게 사귀며 그분의 신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일곱째, 이기는 자는 요한계시록 3장 21절,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그 나라를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일까요?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당연히 구원도 받지 못합니다. 그날이 오면 주님은 진정한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십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교회에 남게 됩니다. 그렇다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버림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다시 기회가 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때가 옵니다. 그 시기에 모든 것이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두아디라교회에 보내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에 큰 환난이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온 세상에 닥쳐올 시험"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박해를 받는 시기가 옵니다. 그때가 바로 환난의 날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마지막 환난의 날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믿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메시지가 "지금 여기"에서도 중요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악한 영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의 날에는 온갖 폭압과 박해와 저항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신실한 증인들이 있는 곳마다 악한 세력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늘 반발을 초래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스스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평탄한 삶을 살아갈 때는 참된 신앙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항과 반대에 부딪힐 때, 즉 비난과 외면과 박해와 고난에 처할 때 드러나는 믿음이 진짜 신앙입니다. 이때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합니다. 신앙의 정의를 참고하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는 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의는 주로 신앙의 내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신앙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은 겉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주변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인 동시에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진실합니다. 비난과 조롱과 박해가 있어도 넘어지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성도가 되는 것, 예컨대 세례 문답을 하고,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예배에 출석하는 일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결정적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시험"입니다. 온갖 핍박과 비난과 폭력 앞에서도 견뎌낼 수 있느냐입니다. "불의 시험"은 믿음의 진실성을 드러내게 합니다. 시험의 대상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 진가를 드러냅니다. 주님이 오실 때 모든 사람이 불의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아니면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란, 주님을 향한 충성, 마음의 정결함, 삶의 거룩함,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일관성, 이웃을 향한 사랑과 인내를 말합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 또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찾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병들어 신음하는, 지옥행 열차를 타고 지옥을 향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어야 그들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대환란이 있기 전에 죽거나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남아서 주님 오실 그 순간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부여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추수할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 한 사람이 되어 끝가지 복음을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일곱 교회에 주셨던 주님의 그 칭찬과 꾸짖음과 경고와 약속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임을 믿고 마지막 때를 준비하게 하시옵소서. 열심히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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