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특징인 "불"의 이미지까지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것보다 더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모습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불의 사람 예수님께서 있는 곳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이 세상 위를 거닐고 계십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 세상 위에서 일어나는 일. 즉,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디에 계실까요? 그분이 계신 곳은 유대 민족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니고, 당시 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로마도 아니며,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아테나나 고린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13절,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서 계십니다. 이는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일곱 금 촛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작은 공동체인 일곱 교회를 의미합니다. 또한 일곱이라는 숫자는 전체를 의미하니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하고 있는,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즉, 교회를 가리켜 촛대 또는 등잔이라고 부릅니다. 이 일곱 촛대에는 아직 불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촛대에 불을 밝힐 초나 등잔 기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촛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촛대는 금으로 만들어지고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금과 보석만으로 불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가 공급되어야만 불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 공급원은 바로 촛대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의 "불"입니다.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분 자체가 불이라는 점입니다. 그분은 안에 있는 고유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머리와 눈, 팔과 다리가 해처럼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이 땅에 있습니다. 하늘에서 몸을 굽혀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피십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승천 또한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땅이 성도들을 위해 이루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향한 계획이 있고, 여기에 모든 생명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집중하셨습니다. 온 우주의 능력을 가지신 분께서 세상의 모든 곳 중에 "교회"를 중심지로 선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구원 계획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실행됩니다. 그분은 빛이고 교회는 그 빛을 담는 촛대입니다. 어디서든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분은 빛을 밝히실 수 있습니다. 빛을 비추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이 빛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교회를 통해 빛을 밝히십니다.
교회가 주님께 얼마나 충성하는지는 성도의 재적수, 예배당의 크기, 예배의 기술, 화려한 설교, 분주한 행사에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 각자의 삶에서, 가정과 사회와 나라 안에서 얼마나 그리스도의 영이 충만한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 강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만이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고, 그리스도만이 근본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충성도를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입니다.
그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예수님은 촛대 가운데 서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을 우리도 함께 보기를 바라십니다. 그럼 그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함께 보도록 합시다. 일곱 교회 중에 다섯 번째 교회인 사데 교회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촛대에 연기가 자욱하고 거미줄도 어지럽게 처져 있어 촛불의 빛이 희미했습니다. 이 촛대에서는 도무지 밝은 빛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둠 가운데 다니면서 길 옆 도랑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일곱 교회 중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는 빛을 더 밝혀야 했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빛과 어둠이 혼재해 있거나 어둠이 빛을 압도해 결국 불이 꺼지고 뿌연 연기만 자욱했습니다. 불이 붙지 않으면 연기만 계속 피어오를 뿐입니다. 그분은 일곱 교회를 보고 계셨고, 지금도 교회를 바라보고 계시며, 우리도 함께 보기를 바라십니다.
연기만 내뿜는 등잔은 결국 집 밖에 내놓게 됩니다. 냄새도 나고 연기 때문에 눈물도 나니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를 잘라내기도 합니다. 불을 붙이지 못하는 등잔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기다리십니다. 등잔을 버리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으십니다. 그래서 촛대는 내버려지지 않고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분은 촛대를 통해 여전히 빛을 밝히실 생각입니다. 오래 참으면서 촛대를 깨끗하게 손질하십니다. 사실 우리 앞에 펼쳐진 장면은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그림입니다. 음탕하고 더럽고 실패한 교회들 사이에 정결하고 권위 있는 그분이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정결하고 높은 권위를 갖고 계신데 비해 교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추악하고 더럽습니다. 우리의 생각 같아서는 모든 악을 제거해 질서를 근본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참고 기다리십니다. 사랑하기에 참고 계신 것입니다. 이보다 엄청난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
주님은 왜 참고 기다리고 절제하실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분처럼 정결해질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계획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고통과 핍박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죄와 어둠 가운데 태어나는 수많은 생명을 위해, 노예 상태에 있는 수많은 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암흑 가운데 있는 나라를 위해 모든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며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분은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십니다. 교회가 회개하고 진심으로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교회를 치워버리면 교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촛대를 치워놓으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집니다.
빛을 비추지도 못하는 촛대는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교회가 훌륭한 조직이나 존경받는 단체가 될 수는 있습니다. 정치에 막대한 힘을 행사하거나 부와 학문과 전통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교회의 진짜 사명은 놓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면 예수님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다음 준비한 계획으로 옮겨가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묘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자체가 대단한 호소이며 어마어마한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지구의 중심은 교회이며, 교회의 중심은 모든 만물에 빛을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1세기말에 지켜보신 교회의 모습이 이러하다면, 오늘날의 교회를 보시고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지금의 교회는 정말 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을까요? 현재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조차 심심찮게 종말이 임박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요한이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된 이유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모습이 새롭게 변한 것이 아니라 요한의 눈이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계속 거기에 계셨습니다. 닫혀 있던 요한의 눈이 열려 거기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 안에, 우리 가운데도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신 그분이 이 땅 위에, 교회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기다리며 보고 듣고 느끼고 계십니다. 우리 영의 눈이 열리면 주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지 그분은 항상 우리 가운데 서 계십니다. 믿는 자들이 함께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찬을 나눈다면, 밧모 섬에 나타난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자리에도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눈은 치료가 필요합니다. 눈꺼풀은 마음과 의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과 의지가 변해야 눈도 열립니다. 눈이 열려야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며 순종을 기다리시는 그분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이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40일 동안 부활하신 몸으로 이 땅에 계신 주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합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저녁에 식사를 하는 자리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다시 말해 충실한 제자들이 모인 그곳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눈앞에서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주님을 직접 보았을 뿐 아니라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끝까지 남으셨다는 것입니다. 눈이 열린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서 계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40일간의 "특별 훈련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할 때마다 주님은 늘 함께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면도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의 마지막 장면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모습이지만, 요한복음은 태초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다가와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주님의 모습입니다. 현재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지금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임박한 지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교회를 위한 메시지이지만 개개인을 위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개개인이 교회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저도 교회이고, 여러분 각자도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빛을 밝힐 촛대가 되길 바라십니다. 그분은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쏟으시며, 끝가지 참으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 살아가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부르심에 기쁨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참된 교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아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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