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88번째 이야기
132cm의 작은 거인 미국의 유명한 배우 "피터 딘클리지"는 132cm에서 멈추는 왜소증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남들과 다른 자기 모습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유머러스한 장점을 발견하며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배우로 성장하기까지 현실의 벽을 통감하게 하는 잔인한 말들과 상황을 수없이 겪어야 했습니다. 왜소증을 가진 배우에겐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역할이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젠가는 진중한 주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배우에 대한 꿈이 살아있었기에 어떤 배역이든 최선을 다했으며 결국 뛰어난 그의 연기력은 영화계에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눈여겨봤던 어느 감독의 러브콜을 받게 되는데 바로 자신처럼 왜소증을 가진 장애인을 다룬 영화 <스테이션 에이전트>에 주연 역할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쓸쓸함과 고독함을 보여준 이 영화는 대호평받으며 각종 상을 휩쓸었고 그의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2011년 HBO의 메가 히트작이자 블록버스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가문의 아들임에도 왜소증으로 인해 멸시를 당하지만 결국 최고의 전략가로 우뚝 서는 캐릭터로 연기했습니다. 이 작품 이후 그는 에미상 최우수 남우조연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남우조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해당 부문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지만 준비만 하는 사람에겐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
당신이 원하는 삶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회사에 갈 때 즐겁고 재미있으면 입장료를 내야 할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내는 대신 월급을 받습니다. 그 대가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 회사에 계속 다니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일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일에 질질 끌려 다니는 피해자가 되고 말 겁니다. 하지만, "내가 해주는 거다"라고 마음먹고서 하기 싫은 일을 빨리 해치우면, 나머지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여행을 다닐 수 있고, 원하는 취미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에게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스스로를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낍니다. 그런데, 그럴 때도, "그 사람이 원해서 웃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상황을 원만하게 넘기기 위해서 웃어주자!"라고 마음먹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의 주체(主體)를 나 자신으로 가져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회식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상사의 농담에 죽어도 웃어주는 짓은 못하겠다."라는 환자에게도,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까짓것 웃어주면 어때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결코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사 때문에 화를 내고, 상사를 볼 때마다 불편해하고, 그에 맞춰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데 당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게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은 아닐 것 같은데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사의 농담에 웃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비굴한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사를 탓하고만 있으면, 문제가 더 꼬일 뿐입니다. 설령 그 사람 때문일지라도, 문제의 원인을 확인하는데 치중하지 말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것을 해결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당신)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월급이나 진급 때문에,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면 먹고사는 일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억지로 마지못해서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면, 그것처럼 비극적인 일은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으냐?"라고 의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은 아닐 것 같은데요!"라고, 내담자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의 주체는 주님께서 그 일을 밭기신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
살리는 말 한마디의 힘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박사는 1840년대에 한 병원의 두 산부인과 병동을 조사했습니다. 이 두 병동은 서로 붙어 있었습니다. 한 병동은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근무했고, 다른 병동은 산파들이 아이를 받았습니다. 제멜바이스 박사는 조사 결과, 의사들이 출산을 돕는 병동에서는 산파들이 출산을 돕는 병동보다 산욕열로 사망하는 임산부의 비율이 다섯 배나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절대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제멜바이스는 두 병동의 관행이 어떻게 다른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의사들은 사망한 임산부의 검시를 마치고 나서 손이나 도구를 씻지 않은 채 곧바로 다른 아기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잘 알지만 당시에는 그런 지식이 없었습니다. 몇 년 뒤 루이스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하지만 1840년대 사람들은 세균의 존재를 전혀 몰랐습니다. 제멜바이스는 차이가 왜 생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염소를 사용해서 손과 도구를 소독해 보세요." 제멜바이스는 염소가 소독제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단순히 염소가 시체 냄새를 없애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시체 냄새가 문제의 원인일지 모른다고 추측했습니다. 의사들이 손과 도구를 씻기 시작하자 당연히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손 씻기라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행동이 생사를 가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조사하면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상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에 우리는 이 상황을 한꺼번에 바로잡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노력을 하지만 몇 번 실패한 끝에 결국 포기합니다. 하지만 한 번에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열쇠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무언가에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열쇠는 바로 "말"입니다. 우리의 말은 생사를 가르는 힘이 있습니다. 이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의 영향력! 잠언 18장 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16,000 단어 정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에 하는 말이 이렇게 많다 보니 말 한마디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기가 쉽습니다. 하루에 16,000 단어를 말하는 것은 매일 우리의 말로 60쪽 분량의 책 한 권을 쓰는 것과 같으며, 이 말 하나하나가 다 중요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서 말은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실, 말은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
피할 길을 주신 하나님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사무엘상 29장 1-1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과 본격적인 전쟁을 하러 모인 방백들이 당시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다윗과 그 수하들이 전쟁에 함께 가는 것을 반대하여 동족상잔의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나아가자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보고 노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변호하지만, 방백들은 다윗이 배신하고 사울과 화합할지도 모른다며 그들을 돌려보네라고 합니다. 이에 다윗은 항의하지만, 다음 날 아기스의 말대로 새벽에 자기 사람들과 함께 블레셋으로 돌아갑니다. 이는 피할 길을 주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블레셋 방백들(1-5절). 인생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힘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녀를 위해 피할 길을 내십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출정하기 위해 아벡으로 향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동족과 싸워야 하는 동족상잔의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블레셋 방백들의 빈대에 부딪혀 상황이 뜻박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희브리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당시 이방인이나 사회적 하층 계급 사람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다윗의 참전을 반대하는 블레셋 방백들은 과거에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사실까지 들먹입니다. 적으로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전쟁터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진행은 하나님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반대조차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반대에 부딪히는 일이 있을 때,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보여할 할지 묵상합시다. 위기를 모면한 다윗(6-11절). 하나님의 섭리는 지혜롭고 완전합니다. 블레셋에 망명해 있는 다윗이 블레셋 편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다면, 이후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블레셋과 한편에 서기를 거부한다면, 블레셋은 망명한 다윗의 의도를 의심할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를 사용하셔서 다윗의 참전을 막으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통치자십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지혜롭고 완전한 섭리 안에서 평안과 안전을 경험합니다. 아기스는 이스라엘고의 전쟁에 다윗을 내보내지 않기로 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믿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다윗에게 해명합니다. 아기스 자신은 다윗을 신뢰하는데 방백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다고 여기며 안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기스에게는, 자신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자신의 주인인 아기스를 위해 못 싸우게 하느냐며 서운함과 충성심을 보이는 척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가 처한 상황에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모든 일들을 섭리하셔서 모든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길에서 맞닥뜨린 위기에도 피할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은 주님뿐임을 고백합니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시옵소서. 지금은 비록 캄캄한 터널을 지나듯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두운 상황일지라도 주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하여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별 다섯 개가 아니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을 "슬모"에 따라 평가하고 대우합니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당연해진 얘기지만, 생각해 보면 일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하는 소속에 따라,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하는 신분에 따라, 임원이냐 사원이냐 하는 직급에 따라 평가와 보상은 천양지차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자 기준은 온데간데없고, 능력에 따라서 사람들을 완전히 다르게 대우합니다. 마치 미디어 콘테츠에 별점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에는 영화에만 별점이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음식이나 식당에도, 서비스나 상품에도, 강연이나 책에도 별점이 주어집니다. 주어진 별점에 따라 그것을 만든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에 다들 "별 다섯 개" 최고 평점을 받기 위해 애를 쓰고 수고를 감내합니다. 물론 "쓸모"와 "효용"에 따른 평가가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시는 기준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진다고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들어오면 전혀 다른 가치를 갖게 됩니다. 세상에서 별 다섯 개 인생이 아니어도 하나님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햇살 좋은 날, 하루를 널어 말리고 싶다/김경지 교수) |
네 가지 제언: ②생각하라!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기도를 할 뿐만 아니라 생각해야 합니다. 부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2장 7절에서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라고 교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생각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의지하는 것과 우리 자신의 연구를 조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NIV 같은 현대판 스터디 바이블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GNB(Good News Bible) 같은 좀 더 대중적인 성경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GNB의 신약 성경은 일면 "현대인을 위한 복음(Good News for Modern Man)"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구 사전도 구체적인 본문이나 구절을 찾는 데 여러모로 편리할 것입니다. 또한 <The Evangelical Commentary on the Bible> 같은 믿을 만한 단권 주석과, <The Lion Handbook to the Bible> 같은 컬러판 핸드북도 우리에게 많은 배경 지식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성경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절 단위로 수록한 <IVP 성경 배경 주석: 신약> 또한 유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자료일 뿐입니다. 우리의 의무는 말씀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계속해서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본문을 앞에 두고 늘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여기서 큰 유익을 발견합니다. "첫째,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가? 다시 말해서 그 말씀의 본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둘째,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즉 그 말씀의 현대적인 적용은 무엇인가?"입니다. 내가 서두에 언급했던 해석의 기본 원칙들이 제 몫을 해야 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주소서!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121:5,6). 사랑의 주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옵소서!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나아지겠지 희망을 갖지만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저의 삶의 모습에 긴 한숨만 여운으로 남습니다. 목표와 꿈, 잊은 지 오래입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사치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질 뿐입니다. 아니, 기적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믿음의 색깔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불신앙적인 모습일지라도, 삶의 무게를 끌어안고 몸부림쳐야 하는 이 연약한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런 저를 보고 남들은 비난할지 몰라도, 주님은 감싸 안아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이럴 때일수록 제 삶을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강하게 느끼고 싶습니다. 주님의 품에 오래도록 안기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견디다 못하여 자꾸 쓰러질 때, 믿음 없는 제 모습을 탓하지 마시고 그때마다 저의 연약한 손을 잡아주시고 일으켜 주시옵소서. 언젠가는 속이 후련하도록 숨 한 번 크게 내쉴 날이 오겠지요. 감사의 기도만 하늘창고 가득히 쌓을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오겠지요. 그날을 생각하며 주님을 의지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격스런 감사 고(故) 김준곤 목사님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조잉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음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언어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도 한 분이 자기의 독자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해 이렇게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아들이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신앙생활하다 주님의 품에 갔으니 감사하고, 내 마음이 이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셨으니 감사하고, 이제는 하늘나라를 향한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으니 감사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얼마나 감격스러운 감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만 생기는 감사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690번째 이야기 (0) | 2023.03.31 |
---|---|
예림의집 2689번째 이야기 (0) | 2023.03.30 |
예림의집 2687번째 이야기 (0) | 2023.03.27 |
예림의집 2686번째 이야기 (0) | 2023.03.24 |
예림의집 2685번째 이야기 (0) | 2023.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