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85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3. 23. 12:12

예림의집 2685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인생이라는 모래시계

시계는 늘 현재 시각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시간도 언제나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현재에 안주한 채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을 시계에 비유하자면 정해진 시간 안에서 흘러가는 모래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분, 5분.. 유리병에 담긴 모래의 양만큼 흘러 내려가는 모래시계처럼 우리는 정해진 인생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 한 알이 내려가듯 우리 인생에도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옵니다.
따라서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의미 있고 소중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모래시계에서 영원한 시간이란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했습니다. 하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 다른 하나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입니다. 그저 흘러가는 인생은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그 인생에서 주어지는 기회의 순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기회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모든 시간을 특별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웃이 본 것은 저의 딸이 도서관 식당에서 친구들과 김치볶음밥을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얼굴에 스쳐간 실망을 느낀 이웃이 가볍게 책망했습니다. “시험 때에 도서관에 가기라도 하는 것이 얼마나 기특해요? 놀더라도 도서관에서 놀면 예쁘지요. 그런 딸이라면, 나는 매일 업고 다니겠네요.” 그날의 대화로, 저는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책상에 책을 펴놓고 앉아있는 겉모습만을 보고 공부로 여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공부의 기준은 매우 엄격해서, 반드시 열람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쥐고 있는 모습이어야 했습니다. 서 있어도 안 되고 책을 읽어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어야만 합니다. 또 하나는, 아이가 했던 것처럼,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 간다는 그 행동은 똑같은데, 각 가정의 평가는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가더라도 식당에 있는 것만으로는 칭찬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저의 이웃은 그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장혀~"가 생각났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언제든지 장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재밋거리 책들을 뒤적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도 장하다고 하시곤 했습니다. 그 시절 제가 즐겨 읽던 흥미 위주의 책들은, 요새로 치면 웹툰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할머니는 그저 장하다고 하셨습니다. 다소 후하게 받은 칭찬에 좀 머쓱하기도 했고, 할머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속으로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할머니께서는 제 노력과 열심에 대한 기준이 정말 낮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우리 집에 계셨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할머니는 아이에게 틀림없이 장하다고 하셨을 겁니다. 도서관 식당 김치볶음밥의 빨간 재료를 입가에 남긴 아이는, 할머니가 "장하다~!"라고 하는 말을 머쓱해하면서도 무척 기분 좋게 받아들였을 겁니다.(심윤경)

사실, 그렇습니다. 부모의 기준은 엄격한 반면, 그 자녀는 부모의 기준이 좀 느슨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 자녀도 부모가 되면 그 기준이 엄격해지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과거 어릴 적 형편은 어떠했든지, 지금 자신의 자녀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성적도 우수해야 합니다. 자신은 과거에 그 부모의 마음을 흡족시키지 못했을망정, 지금의 자녀는 부모인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과 격려입니다. 조금이라도 칭찬할 만한 게 있으면, 그걸 근거로 자꾸 칭찬해야, 밝은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림단장 칼럼

복음 전도를 위한 다리 놓기
 
우리가 열 수 있는 파티의 한 종류는 "오이코스" 파티입니다. 오이코스는 "집"을 뜻하는 헬리어인데,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지칭할 때도 사용합니다. 그래서 오이코스 파티는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를 테면 직장 동료, 학교 친구, 이웃 주님, 같이 온라인 축구 게임을 하는 친구들, 자녀의 수영 레슨에서 만난 엄마들을 초대해서 즐기는 파티입니다. 레위가 연 연회가 오이코스 파티의 좋은 예입니다. 오이코스 파티 이면의 목적은 영적인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과 관계를 트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종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2장 5절,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의 소식을 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파티를 여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꼭 파티를 통해서만 전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끼 행사를 열어 사람들을 끌어모은 다음, 간증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권장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 봐야 사람들에게 오히려 반감만 살 뿐입니다. 이 오이코스 파티는 전도 전 행사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가 올 줄 믿고서 먼저 파티를 통해 관계를 트고 점점 그 관계의 깊이를 더해 가십시오. 이 파티는 나중에 건너가 예수님에 관해 전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작업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명령하시고, 
그 가운데 한 명이라도 그분께 돌아오면 천국에서 성대한 파티(잔치)가 열린다고 말슴하셨습니다. 우리가 여는 작은 파티로 인해 단 한 명이라도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어서 그런 소식이 날아와 천국에서 잔치가 열리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원수의 생명을 하나님께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사무엘상 26장 1-1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다윗에게 사울의 생명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집니다. 십 사람이 사울에게 하길라산에 숨어 있는 다윗을 밀고하자 사울이 3,000명과 함께 다윗을 찾으러 십 광야로 내려가 진을 칩니다. 다윗은 밤중에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에 이릅니다. 모두가 깊이 잠든 가운데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안 된다고 하며 사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옵니다.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처럼 순탄해 보이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십 광야로 온 사울(1-7절).
개인과 공동체의 잘못을 주님만이 궁극적으로 판단하시기에, 판단은 주님 손에 맡겨 드림이 합당합니다. 오늘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24장 16절에서 다윗은 "내 아들"이라 부르며 용서를 구하던 사울의 모습은 일시적이었을 뿐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다시 십 광야로 갑니다. 다윗은 정탐꾼을 통해 사울의 동태를 파악하는 등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합니다. 사울의 진을 관찰하던 다윗은 아비새만 데리고 사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요나단이 병사 한 명만 데리고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한밤중이라 할지라도 3,000명의 군사와 보초들로 둘러싸인 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합니다. 때로는 우리에게도 이런 무모한 것 같은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조건이 불리하고, 상황이 안 좋다고 여겨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 앞에 펼쳐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담대히 믿음으로 직면해 해결할 일들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사울을 살려 준 다윗(8-12절).
자신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될 두 번째 기회를 포기합니다. 심지어 자기 부하들에게 사울에게 손대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이지 않는 데서 다윗의 일관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성품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삶에서 일관되게 드러나야 합니다. 당시의 정황을 보면 사울은 많은 군대와 부하에 둘러싸여 진영 한가운데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비새는 하나님이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셨다며, 자신이 단번에 죽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이번에도 금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나발의 죽음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는데, 창은 사울의 생명이 다윗의 손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무사히 사울의 진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원수에게 복수하고 싶을 때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했던 원수가 동일한 모습으로 다시 공격해 올 때, 인간에 대한 실망이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반복되는 공격에 감정이 상해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옵소서. 믿음의 삶을 살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법적인 일에 유혹당할 때 하나님을 기억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만이 풀어주신다
 
누군가 폭행을 당하거나 사기를 당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친구에게 하소연하고 울면 끝납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억울합니다. 화가 나는 감정을 쏟아 놓고 한바탕 울면 잠시 위로는 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소를 하면 됩니다. 법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은 공의를 세워 줄 것이라는 신뢰가 종종 배신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적합한 증거나 증인이 없을 수 있고,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법은 100% 공의로운 심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억울함에 대한 기독교적 해결 방식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의로운 재판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억울하고 원통한 일, 격분되는 일이 있으면 공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아뢰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원한을 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 탄원한 뒤에 따로 복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면, 원수를 온전히 하나님의 진노에 맡겨 두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격분한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맡길 수만 있다면 상처에 매여 복수심의 노예가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풀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평안함 가운데 은혜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기도하면 응답된다/이인호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왜 성경을 믿어야 하는가?③
 
성경은 1,500여 년에 걸쳐서 40여 명의 저자에 의해서 기록된 66개의 낱권으로 이루어진 장서라는 점에서 볼 때, 성경의 저변에 흐르는 주제의 통일성은 더더욱 인상적이니다. 구약의 예언들은 놀라울 성도로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의 교리는 심오하고, 그 윤리는 고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지 거의 2,0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성경의 인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성경은 죄인에게 죄 용서를 가져다주었으며, 압제당하는 자에게는 자유를, 방황하는 자에게는 인도를, 죽어가는 자에게는 위로를 그리고 유족에게는 희망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열린 마음, 겸손한 심령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흔들어 놓은 다음 참된 위로를 가져다주는 성경의 권능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중국인 성도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책은 나를 걷어찬다!" 그 책이 하나님의 말슴이라는 최종적인 증거는, 하나님이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이 모두에게 똑같이 유익하다거나 모두가 그것을 쉽게 이해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독자들이 모든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원리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첫째, 평이하고 명백한 의미가 때로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본문의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둘째, 본문이 원뜻을 찾아야 합니다. 즉 21세기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 저들의 생각을 해석하려는 시도를 피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핵심적인 질문들은, 그들 자신이 말하려고 의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에 관해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본문의 전체적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본문을 해석할 때 본문이 속해 있는 장이나 책의 직접적인 문맥과 성경 전체의 좀 더 광범위한 문맥, 이 양자에 비추어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성공회의 39조 항의 제20항에서는 "성경의 한 곳을 지나치게 해석하여 다른 곳과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회에 이를 금하는 현명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함으로써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기도의 횃불

이런 사귐을 있게 하소서!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사무엘상 20:17).
 
사랑의 주님, 저에게 좋은 만남과 사귐이 있기 원합니다. 건전하고 유익한 대화로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고, 서로의 미래를 위하여 꿈과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의 약점은 보완해줄 줄 알며, 단점을 덮어줄 줄 아는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울 때 도와줄 줄 알며, 말 못 할 고민이 있을 때 서로의 고민을 들어줄 줄 아는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칭찬받을 일이 있을 때 그 공을 서로에게 돌리고, 자신보다 상대를 세울 줄 아는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지나친 경쟁 심리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게 하시고, 다윗과 요나단 같이 깊은 우정으로 서로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를 격려할 줄 알며, 서로를 섬길 줄 알며, 서로를 위로할 줄 알며, 서로를 축복할 줄 아는,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의 삶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감사로 엮어가는 인생
 
잠이 아주 많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와도 깨어 있다가 반갑게 맞아줄 때가 없고, 심지어 하도 깊이 잠이 들어서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세차게 두드리면서 감정이 좀 상한 후에야 겨우 일어나서 문을 열어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늘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미련하게 잠만 자니까 돼지처럼 살만 찌지, 잠 좀 줄여요!" 그런데 어느 날 같이 근무하는 직장 동료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마누라 정신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될 것 같아. 처음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불면증 노이로제에 시달리더니 점점 심해져서 이제는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누가 돌보며, 그 많은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될지 걱정이 태산 같아." 그날 저녁 남편은 퇴근하면서 선물을 한 아름 사들고 아내에게 건제주며 말했습니다. "여보! 잠 잘 자서 고마워, 피곤하다 싶으면 실컷 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