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84번째 이야기
부자(父子)와 당나귀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내다 팔기 위해 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때 방물상이 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당나귀를 타고 가면 될 걸 왜 안 타고 가시오."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되자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한 노인이 화를 내면 말했습니다. "저런, 아버지는 힘들게 걷고 다니는데 젊은 아들은 당나귀를 타고 편하게 가다니..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 그 소리에 아들이 내리고 이번에는 아버지가 당나귀 등에 올라탔습니다. 얼마쯤 더 가자 이번에는 우물 앞에서 물을 기르던 여인들이 말했습니다. "왜 아버지가 당나귀에 타고 아들만 불쌍하게 걷게 만드는 거예요." 이 말도 옳다고 생각해서 두 사람이 함께 당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한 무리의 사내가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조그만 당나귀에 두 사람씩이나 타다니 당나귀가 너무 불쌍하지도 않소." 당나귀를 끌고 갈 수도, 두 사람이 다 탈 수도 없어 고심하던 부자는 결국 당나귀를 장대에 묶어 어깨에 메고 가기로 했습니다. 마을 입구의 다리 위에 이르렀을 때, 동네 아이들이 이 진귀한 구경거리에 몰려와서는 웃고 떠들었습니다. 놀란 당나귀가 발버둥을 쳤고 그만 장대가 부러지면서 당나귀는 다리 밑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인데 이처럼 비판은 누군가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자신의 직관과 경험을 토대로 하는 판단입니다. 그렇기에 비판은 객관적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왜곡되기도 쉽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 없듯이 우리는 모든 비판의 소리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삶이 흔들리고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을 가지고 나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의식(意識) 문제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끊임없이 비틀어진 시각으로만 바라봤습니다. 저에게 세상이란, 좋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나쁜 것만 존재하는 부조리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똥밭에서 굴러다니는 삶을 살게 된 이유는, 그런 부조리한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세상을 마구 욕하면, 세상은 제가 욕한 딱 그만큼씩 나빠졌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저는 더 망가져갔습니다. 돈이 없다고 화를 낼수록 재정 상태는 나빠졌고, 우울하다고 생각할수록 우울증은 더 깊어져갔습니다.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고 말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말하자면, 현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방식을 입력하면, 현실은 프린터처럼 제 생각을 고스란히 출력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즉, 현실은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였습니다. 프린터가 뽑아내는 결과물이 엉망이라면, 컴퓨터에서 원인을 제거해야 증상이 사라집니다. 결핍이란 다름 아닌 저 자신의 인식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세상의 해로운 면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저의 인식문제를 하나씩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저의 삶 속에 포진해 있던 똥 덩어리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생각을 제거해 나가자, 살아가면서 술을 마실 이유도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알코올 중독을 근본부터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기술)입니다. 무언가에 의존하는 증상은 단순히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의지의 시발점(발원지), 즉 지금 이 순간의 인식의 샘이 맑은지 탁한지 돌아보고, 그 샘을 정성 들여 아주 깨끗이 청소해 나감으로써 극복할 수 있습니다.(강승희 정신의학과 교수) 그렇습니다. 앞선 글에서 "계속해서 세상을 마구 욕하면, 세상은 제가 욕한 딱 그만큼씩 나빠졌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저는 더 망가져갔습니다."라는 내용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다고 화를 낼수록 재정 상태는 나빠졌고, 우울하다고 생각할수록 우울증은 더 깊어져갔습니다.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고 말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악화되어 갔습니다."라는 내용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글인 듯합니다. 현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말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
파티 초대장을 돌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초대받은 잔치에만 억지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잔치를 열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걸어가시다가 27-28절,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자들의 목록에서도 최상위에 이치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세리들은 압제적인 로마 정부의 편에 붙어서 동포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피아처럼 정해진 세금 외에 추가적인 돈을 뜯어내 자기 주머니에 챙겼습니다. 레위는 동포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부정하게 여기며 슬슬 피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가 성전 출입하는 일을 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레위에게 다가와 그를 제자로 초대하셨습니다. 이에 레위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당신이 레위라면 이어서 어떤 행동을 하겠습니까? 누가복음 5장 29절,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파티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멀리 떨어져 있던 친구들을 초대하고 예수님을 모셔 왔습니다. 그 잔치는 그의 친구들이 예수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화가 나서 당장 예수님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30절,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그들은 예수님이 파티, 특히 그런 부류와 어울리는 잔치에 참석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난에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31-32절,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이는 이런 의미입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바로 이것이 내가 온 이유다. 이것이 내 제자들이 잔치를 연 이유다. 그래서 초대자 명단에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이 가득한 것이다." 예수님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연히 파티를 열어야지! 당연히 죄인들을 불러야지. 도대체 뭘 예상했느냐?" 그리스도의 제자에게는 파티를 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일 가운데 하니이기도 합니다. 자, 그러니 파티를 엽시다! 어떤 종류의 파티일까요? 목적이 있는 파티,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는 파티, 한 번에 한 사람에게 기쁨을 더해 주는 파티 말입니다! |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설득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사무엘상 25장 23-35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복수심으로 가득한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설득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나발 대신 용서를 구하며, 다윗이 친히 보복하는 일을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윗의 원수들이 나발같이 되기를 원한다며,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 거리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다윗을 설득합니다. 다윗은 비극적인 참사를 막은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합니다. 아비가일의 이러한 지혜로운 처사를 마음에 두었던 다윗은 후에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다윗을 설득하는 아비가일(23-31절). 위기 상황에서 아비가일의 지혜와 용기가 빛을 발합니다.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은 다윗에 대한 존경을 표한 뒤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비가일은 부드럽고 지혜로운 말로, 복수심 가득한 다윗의 상태를 자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보복을 막으신다는 것과 다윗이 나발을 죽이면 후에 왕이 될 때 문제가 됨을 깨우칩니다. 그녀는 과거 다윗이 24장 12절에서 사울에게 했던 말을 언급하면서, 다윗이 개인적으로 복수하려는 것은 현명하지 않음과 선악 간에 모든 판단은 하나님이 하심을 일깨웁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실 것이라고 마치 선지자처럼 말합니다. 이러한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권면에 다윗의 복수심이 누그러집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당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이고,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싸움을 하는 중이며, 당신의 생명을 하나님이 생명 싸개 속에 보호하실 것"이라는 선지자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에 다윗은 살인할 뻔했던 마음을 돌이킵니다. 아비가일의 이러한 지혜로운 처사는 모두를 살리고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을 칭찬하는 다윗(32-35절). 늘 침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실 때는 단호하게 말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야 합니다. 우리의 겸손과 섬김의 태도는 세상 어떤 권위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시키는 힘이 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비가일의 지혜로움을 칭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 자신의 복수와 살인을 막으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의 지혜와 용기는 나발 집안을 살렸고, 또 한 집안을 몰살하는 무자비함을 저지르고, 하나님의 분노를 살 뻔했던 다윗도 살렸습니다. 만일 다윗이 교만하고 어리석은 인물이었다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아비가일에게 더욱 분노해 그도 죽였을지 모릅니다. 다윗은 한 여인의 말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분노를 가라앉힐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 겸손함과 총명함을 되찾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군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온유와 지혜로 권할 말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또한, 우리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이 잘못을 지적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 존중받아야 할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겸손을 주시옵소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랑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충고를 경청함으로 우리 영혼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게 하시옵소서. 들을 수 있는 귀와 포옹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어떠한 일로 인해 분노하였을 때 주님의 은혜로 권면자를 보내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상대를 배려하는 지혜로운 말 "52인치 반바지 있나요?" 낸시 오스틴은 옷을 살 때마다 이 말을 반복하면서 수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옷가게의 점원들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묻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주위 사람들이 그 적나라한 숫자에 놀라 호기심 섞인 눈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낸시 오스틴은 이런 용어를 착안해 냅니다. "퀸 사이즈 주세요." 신체 콤플렉스를 상기시키는 숫자로 된 치수 대신 새로운 용어를 고안한 덕분에 낸시 오스틴은 의류 업게에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가령 허리 사이즈가 16-20인치인 경우는 "부띠(꼬마) 사이즈", 22,5-26,5인치인 경우는 "코킷(요염) 사이즈", 26.5-36.5인치의 경우는 "퀸(여왕) 사이즈"와 같이, 특별한 신체 사이즈를 가진 여성들을 배려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성공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낸시 오스틴의 기지 덕분에 많은 여성이 머뭇거림 없이 기분 좋게 옷을 고를 수 있게 된 이 일은 많은 교훈을 줍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는 배려를 배울 수 있고, 듣는 사람이 힘을 얻도록 아름다운 말을 골라서 사용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필요에만 관심 갖기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널리 전하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그래, 그렇게 한 걸음/고명진 목사) |
왜 성경을 믿어야 하는가?② 예수님과 달리 구약 성경을 낮게 보는 태도는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지 못하다"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 성경에 대해 예수님과 동일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예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동이란 즉 "영감"이란 뜻인데 하나님께서 저자들에게 호흡을 불어넣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입으로 그들의 말에 호흡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의 이중 저작설에 대한 극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말씀이 자동적으로 저자들이 말이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의 말이 자동적으로 그분의 말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믿으셨을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의 저술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도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준비시키시고, 파송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선지자들에게 맡겨졌던 것과 병행되는 사역을 사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특히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맺으셨던 그분의 약속은 중요한 것입니다. 한편으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내용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주님이 그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건만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나게 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보충적인 약속들은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두드러지게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는 복음서에 대하여 우리가 확신 있게 그 신뢰성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복음서의 저자들은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글 속에서 자신들의 성실함과 공평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직접적인 목격자들이었거나 다른 목격자들을 의존했습니다. 더욱이 네 복음서는, 흔히 이야기되는 것과는 다르게 모두 1세기 문서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학자들이 예루살렘이 멸망했던 주후 70년 이전에 이 복음서들이 모두 출간되었다고 믿습니다. 이렇듯 사건들과 그것들에 대한 기록 사이의 격차가 짧아진 이유는 교회가 복음 전도와 개종자들의 교육을 위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활용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현재 수많은 사본과 역본 그리고 원본의 인용문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원문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습니다.(계속!) |
은혜를 앞세우는 삶이 되게 하소서!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 13:9). 사랑의 주님, 저의 삶이 은혜를 앞세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체가 건강할 때나 또는 질병이 찾아왔을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게 하시고, 평안함을 누릴 때나 또는 불안이 엄습할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나 또는 이루지 못한 아픔이 있을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게 하시고, 성공하였을 때나 또는 실패하였을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함을 가졌을 때나, 또는 약하여졌을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게 하시고, 명예를 얻었을 때나 또는 명예를 잃었을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풍부함을 누릴 때나 또는 궁핍함에 처했을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게 하시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나, 또는 슬픔의 눈물이 가득할 때에도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또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늘 주님의 은혜를 앞세울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당신은 식사 전에 감사기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연주회와 오페라를 보기 전에 기도하고, 연극과 팬터마임을 보기 전에 기도하며, 책을 펼치기 전에 기도하며, 스케치, 그림 그리기, 놀기, 춤추기 전에 기도하며, 팬을 잉크에 적시기 전에도 감사기도를 한다." -체스터 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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