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만난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1-3).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주님의 모습을 절대 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본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변화를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로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를 바라는 간절함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다시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서로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갔습니다. 이때 사람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신 대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앞에 죄가 아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탐심을 가지고 죄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결국 그 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어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스스로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죄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진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내버리지 않고 도와주셨습니다. 죄로 어두워진 눈을 고쳐주려고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사람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거룩한 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으니 예전의 나의 모습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려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은 이제 우리가 그분의 모습을 닮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이 밝아져 모든 것을 제대로 볼 때까지 간절하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참고 인내하면서 우리가 온전히 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아직 사람의 눈이 어두워져 있을 때, 하나님은 가까이 다가와 다시 한번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셨습니다. 사람은 외적인 눈으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내적인 영혼으로는 그분의 존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천상의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순결과 자비가 놀랍도록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녹아내리고 압도적인 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느낌을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니, 말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형언할 수 없고 공감할 수도 없습니다.
아담의 7대손인 에녹이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에녹은 한집안의 가장이자 한 부족의 족장이었습니다. 그는 70년을 그런대로 잘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70세가 되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에녹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면의 눈으로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은 더 강렬해졌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하나님을 닮아가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면서 본래의 모습이 회복되었습니다. 에녹은 속 사람뿐 아니라 겉모습까지도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살아있는 그대로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외로운 순례자로 살아갔습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애착심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족과 고향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한 사람으로 훈련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외롭게 지내게 하시고 오랫동안 인내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새로운 사람, 변화된 사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은 완전히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시험 앞에서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점점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비슷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나일 강변에서 당대 최고의 훈련을 받게 하고, 이후에는 광야 학교에서 고독의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아직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훈련은 받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변화되지는 못했습니다. 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은 모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매일같이 타올랐습니다. 그 불이 모세를 태워 없애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있던 불순물을 제거해 주었습니다. 정결해진 모세는 그제야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벗어나 시내 반도로 갈 수 있었습니다. 노예 상태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를 돌아다니던 모세가 호렙 산에 올라갔을 때도 하나님은 불 가운데 계셨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훈련 속에서 온유하고 인내심 강하고 자비로우며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하나님은 감정 기복이 심한 엘리야를 아합 왕에게 당당히 맞서게 하기까지 용감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기 전까지 엘리야는 자기 안위만을 위해 도망치는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던 어느 날 아침, 하나님의 얼굴과 그분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너무도 세미해 귀로는 듣지 못하고 오로지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예전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용감하게 나아갔습니다. 엘리야는 강인하면서도 온유한 성품을 지닌 성숙한 선지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과 겨룰 때 그들을 모두 죽일 정도로 냉혈한 사람이었지만 그 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가르치고, 공감하고, 이끌고, 먹고, 아비가 되고, 자비를 베풀고, 인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동굴에서 만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변회 된 엘리야는 엘리사라는 훌륭한 제자도 얻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결코 잊지 않았고 하나님을 하루하루 닮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도 살아서 하나님께로 올라갔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선지자가 된 이사야는 하나니의 임재가 가득해질 때까지 가만히 무릎을 꿇은 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이사야는 모세와 함께 신약 성경에 다시 등장합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할 때 모세와 이사야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자 이사야의 기질과 성격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거룩한 변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실례가 되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의 자손 가운데 일찍이 이처럼 엄청난 변화의 능력을 보여준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를 말로 설명하기에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존재를 누구보다 빨리 직감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거룩하고, 압도적인 능력에 이끌려 요단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 앞에 기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공생애 기간 처음부터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유대 지도자와 사마리아인은 물론이고 죄인들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앞 다투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느끼며 이끌려 왔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예수님의 따뜻한 포옹과 손길을 마냥 좋아했습니다. 먼 곳에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보기 위해 터키에서부터 해협을 건너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 길도 따라왔습니다.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본 제자 요한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도 그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버렸지만 말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예수님을 만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던 사람들조차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지만 매번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던 그들도 그분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사람들도 빈손으로 돌아갔고 그분의 말씀에 압도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일주일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안달이 났지만, 예수님께 감히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모진 박해를 가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습니다. 군인이든 대제사장이든 예수님에게 느껴지는 강렬한 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은 누구도 그분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면, 대개 사람들은 그 말을 믿기 힘들어합니다. 심지어 헛것을 본 게 아니냐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 귀의 경 읽기입니다. 저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성경도 많이 읽고, 성경 암송도 제법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마음에 잘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재매는 있는데 당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2 겨울에 청소년 연합 수련회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성경에 적힌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시작되었던 것이니다.
가슴이 뜨거워질 때 머리도 깨어납니다. 경험을 해야 비로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익숙한 모국어도 죽은 언어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만이 그분의 비전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영광이 육체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분의 영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사람들의 어두운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분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그의 친형제들조차 예수님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로 예수님의 신적 영광까지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그 예수님을, 하늘나라에 계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도 요한이 전해주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주님을 만난 사람들과 역사 속에 주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았던 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우리도 주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고, 새로운 힘을 얻고, 십자가의 길을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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