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의 돌을 내려놓고②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한복음 8:10). 여인은 간음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이제 그녀는 종교 지도자들보다 권위가 더 많아 보이는 분 앞에 벌거벗은 채로 서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주여 없나이다"(요한복음 8:11). 여인은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보였습니다. 바로,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분의 눈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한복음 8:11).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복음서들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정말 비슷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과하면 파멸에 관한 이야기가 언제나 축하로 끝맺음을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망가진 것이 아름답게 변합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고 형벌을 기대했던 사람이 은혜와 용서를 입습니다. 이 여인을 정죄한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눈감아줄 수 있는 죄들과 눈감아줄 수 없는 죄들의 암묵적인 목록을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목록에 따라 사람들을 두 분류로 나누었습니다. 한 부류는 "대수롭지 않은" 죄를 지은 이들이었습니다. 다른 부류는 "정말 큰" 죄를 저지를 이들이었습니다. 이 두 번째 부류의 삶들은 비판과 수치, 정죄를 당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죄가 어느 목록에 속할지 판단할 때 주로 두 가지 기준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 기준은 "눈에 보이는 것인가?"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집착했을 뿐 진정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죄는 그냥 눈감아 주었습니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목사로서 말하는 데 탐욕, 시기, 불만족, 짜증, 분노, 교만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보거나 알아챌 수 없는 죄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두 번째 기준은 "나한테는 없는 문제인가?"였습니다. 그 옛날 종교 지도자들도, 오늘날의 우리도 자신과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여인을 정죄한 무리는 그녀가 지은 죄를 가지고 그녀를 규정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단순히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죄"와 "실패"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밖으로 끌어내서는 그녀가 죄를 범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었으므로 미움과 버림을 받아도 되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만인에게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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