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과 가장 이상적인 창조물
보좌 앞에 일곱 개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일곱 횃불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완전한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이 그림 언어 역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보좌 앞에 성령님이 임하시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16장). 예수님은 하늘에서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내려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으로 오면 예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오순절 날 말씀대로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의 온몸과 마음을 사로잡았고 교회라는 새로운 고동동체를 이루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너래 이스라엘 민족 안에 계셨지만, 그들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곧 교회 안에 거하십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은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들을 통해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서신서를 보면, 성령님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님은 악한 세력의 힘을 억제하십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날이 오면 악한 세력을 힘을 억제하시는 분, 즉 성령님께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합니다(데살로니가후서 2:6-7). 성령님은 그날이 오면 보좌 앞에 계십니다. 이 부분이 지금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점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눈에 펼쳐져 있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보좌 앞에는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유리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보좌 주변에는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이 생물들 역시 주목해야 합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여기저기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생물들은 천사 케루빔과 세라핌이라고도 불립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타나기도 하고(에스겔 1:4-28, 10:1-22), 성막(출애굽기 25:17-22, 37:6-9)이나 성전(열왕기상 6:23-26, 8:6-7; 고린도후서 3:10-14, 5:7-8)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 나오는 새 성전에도 등장하며(에스겔 41:15-26), 사람들의 생각 속에도 등장합니다(사무엘상 4:4; 사무엘하 6:2, 22:11; 역대상 13:5; 시편 18:10, 80:1, 99:1; 이사야 6:1-3, 37:16). 에덴동산 입구에서도 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창세기 3:24). 그중 에스겔서에 가장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생물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결국 같은 존재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네 얼굴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천사의 얼굴을 할 때도 있습니다. 사방에 눈이 달려 있고, 거룩한 불이 온몸을 휘감고 있습니다. 이는 완전하게 순결과 지혜, 순종과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생물들은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합니다(요한계시록 4:6-9, 5:6,8,14, 6:1,3,5,7, 7:11, 14:3, 15:7, 19:4). 에스겔서처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른 책에 비하면 꽤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다섯 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고, 두 번은 어린양이나 천사들을 돕습니다.
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존재들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대표하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이상적인 창조물입니다. 죄로 얼룩지기 전의 모습, 하나님이 늘 바라시던 모습, 죄가 사라진 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창조물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뜻을 기쁘게 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창조물이 창조주를 찬양하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 하나님은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