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7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2. 17. 12:06

예림의집 2672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산에서 길을 찾는 방법

어느 청년이 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늘도 어둑해질 무렵이라 당황한 청년은 길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산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숲 속에서 작은 집 한 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노크를 하니 한 노인이 나왔고 청년을 본 노인은 쉴 곳을 내주며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산밑으로 내려가면 쉽게 길을 찾을 거로 생각하고 무작정 산에서 내려가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방향을 잡아야 마을도 길도 쉽게 찾을 수 있다네."
때론 숲보다 나무만을 바라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수 있는데 이후에 그것이 잘못된 길임을 깨닫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숲 전체를 보려면 숲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한발 물러서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방송을 함께하면서 한걸음 물러나 편안한 쉼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왜 안 데려가고 뭐하는지 몰라!

인연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인연이 부모 다음으로 부부라는 것을, 저는 인생 황혼녘에 이르러서야 깨달았습니다. 부부간의 스트레스는 건강을 최대로 해치는 주범이라고 합니다. 인생길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동반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그 자신의 손해이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진즉 그 사실을 알았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싸움을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흔히들, 부부사이를 두고 지지고 볶으면서 정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부간의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도 합니다.
그런 예가 많으니 이런 관용구가 나왔을 테지만, 저는 "아니다"라는데 방점을 찍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지지고 볶는 일이 잦을수록 사이는 멀어지고, 다투고 나면 칼로 물 베기는커녕, 가정 자체가 금이 간 유리처럼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남녀가 배려하는 마음 없이 이룬 가정은 파열음을 생산하는 공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아파트에 경찰 백차가 보여 뭔 일인가 하고 관심을 기울여보면, 부부싸움이 그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교육을 받고 성장한 남녀가 서로 마음의 조화를 이루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나머지, 조급하게 이혼을 결행하는 짝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하루에 300쌍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았어도 버름한 사이로 늙어가는 부부를 흔하게 봅니다. 여든 초반 나이의 할머니가 바깥영감님을 두고 "우리 집 귀신"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우리 집 귀신은 왜 안 데려가고 뭐하는지 몰라!”라고도 했습니다. 얼마나 미우면 평생 얼굴을 맞대고 살아온 배우자에게 그런 험한 소리를 할 수 있을까요?
보나 마나,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독재자였을 것입니다.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미움’이란 짐까지 잔뜩 지고서, 속바람 차오르는 저물녘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 할머니할아버지가 딱해 보였습니다. 그 할머니할아버지 내외는 이제부터라도 서로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고자 적극 노력한다면, 그 미움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박동조) 

사실 온전한 사람으로 성숙하게 되어 결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마치는 그날까지,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면서, 부부간에도 서로 상대방의 말에 적극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의 경우도 나이가 점점 들면서, 제가 그동안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변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면, 상대방도 틀림없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나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예림단장 칼럼

정죄의 돌을 내려놓고①
 
요한복음 8장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시다. 종교 지도자들은 분노와 자기 의, 미움으로 가득 차서는 이 여인을 예수께로 끌고 있습니다. 그때 가르침을 펼치고 있던 예수님은 갑자기 땅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읽어 보면 예수님의 "한 번에 한 사람" 방식과 종교 지도자들의 "한 번에 한 사람" 방식의 극명한 차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스셨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학자마다 다른 가설을 내놓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예수님이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면서 정죄하는 자들의 시선을 여인에게서 떼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여인이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하나님의 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치심, 혼란, 참담함에 빠지 여인을 깊이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반면에 정죄하는 무리는 유죄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고개를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 8:7). 여인은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죄가 없는 사람들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혹시 의심스럽다면 직접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당당하게 말해 줄 것입니다. 여인은 숨을 멈추고 첫 번째 돌이 머리로 날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저만치서 돌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종교 지도자가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땅에 던졌습니다. 그때부터 돌이 하나식 땅에 떨어졌습니다. 여인을 꽉 움켜쥐었던 손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 자리를 더나 버렸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땅바닥에 적으셨다는 추측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돌을 내려놓았을지도 모르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여인이 눈앞의 상홍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서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지독히 복잡했을 것입니다. 죄가 전혀 없는 사람만 남의 죄를 심판할 수 있습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서 여인의 죄를 심판하거나 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은 있었습니다.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계속..!)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어리석은 명령과 백성들의 범죄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사무엘상 14장 24-35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사울 왕의 어리석은 금식 선포로 인하여 싸움에 나간 백성이 피곤하여지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입니다. 사울왕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무엇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백성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기진하게 됩니다. 이를 몰랐던 요나단은 벌집의 꿀을 먹습니다. 몹시 허기진 백성이 탈취한 짐승을 잡아 피째 먹어 하나님께 죄를 범합니다. 사울왕은 큰 돌 하나를 굴려다가 거기서 짐승을 잡도록 하고, 피째로 먹어 하나님께 범죄 하지 말라 합니다.
 
금식을 맹세시키는 사울왕(24-30절).
어리석은 지도자의 통치 행위는 결국 그 백성과 나라를 힘들게 합니다. 특히 생사를 다투는 전쟁에서 지도자의 판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승기를 잡은 사울왕이 백성에게 갑자기 금식을 선포하며 이를 어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하게 합니다. 사울왕은 백성이 금식을 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더 많이 받아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도움은 인간의 종교적 열심으로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금식으로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했습니다. 사울의 어리석은 선포와 맹세로 인해 결국 아들 요나단이 죄를 짓게 됩니다. 금식 때문에 더 큰 승리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는 사실이 29, 30절, 요나단의 탄식에서 드러납니다. 사울의 금식명령이 오히려 완전한 승리를 방해한 것입니다. 이렇듯 한 나라의 지도자의 결정에는 신중함과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세우신 지도자는 하나님께 묻는 것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하고 금식하는 동기가 혹시 하나님을 조종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음식 규례를 어긴 백성(31-35절).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베냐민 지경에서 거의 몰아내면서 전쟁이 끝납니다. 하루 사이에 많은 전과를 올린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금식한 백성은 몹시 허기졌기에, 탈취한 가축들을 잡아 고기를 피째 먹었습니다. 너무 배고픈 나머지 피 빼는 시간도 기다릴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9장 4, 5절에서 피가 생명의 근원이기에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믿음 없이 행했다는 이유로 백성을 비난한 사울왕은 사실 그 일의 원인 제공자입니다. 그은 백성을 올바로 인도하지 못한 지도자입니다.
무모함과 불순종은 믿음 없음의 특징입니다. 사울왕은 허기진 백성에게 무모한 금식 명령을 내리고(24절), 배고픔을 참지 못한 백성은 고기를 피째 먹어 하나님의 명령을 범합니다(32절). 백성의 믿음 없음은 하나님과 왕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으로, 사울왕의 믿음 없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이 상황을 지배하려는 무모함고 오만함으로 드러났습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을 때 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날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우리에게 보여지는 상황들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첫 번째 왕 사울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보게 됩니다. 그의 무모한 판단과 오만한 명령들이 어떠한 악영향을 미쳤는지를 보며, 이 땅의 지도자들에게 올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우리의 열심만 앞세워 공동체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고,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는 선한 일에 쓰임 받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무엇을 포기할까?
 
요즘 유행하는 풍조 중에 "미니멀 라이프"가 있습니다. 이는 꼭 필요한 것만 적게 소유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와 함께 대두된 또 한 가지 경향은,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소위 "N포 세대"의 등장입니다. 이는 자발적 포기라고 볼 수 없는데, 젊은이들이 삶에서 소중한 것을 너무 많이 포기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정작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안위, 물질, 사회적 성공 등은 더 열심히 추구하고 있습니다.
포기를 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이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허무한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의 것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면 자아를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주장과 고집, 자기만의 논리와 확신을 포기하고 하나님 말씀을 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권투 선수들이 경기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면 헛방을 날립니다. 불필요한 힘을 빼야 좋은 펀치를 날릴 수 있습니다.
내 힘을 빼야 하나님 능력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과일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나쁜 열매를 솎아 내듯, 삶에서 하나님 뜻과 무관한 행동을 골라내서 제거합시다.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해, 그분이 명하시는 길로 행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설교는 인문학이다/김도인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하나님을 향한 사랑⑦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 일부 주석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 경배, 성호 및 그분의 날에 관심을 쏟고 있는 반면에, 제5계명부터는 이웃에 대한 의무와 관련이 있고, 제5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는 데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제5계명 역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한편으로 다섯 개의 계명이 각각의
의무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는 적어도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는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바울 사도도 부모 공경을 "순종"이 요구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은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바울 사도는 부연 설명하기를, 만약 자녀가 부모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면, 부모도 마찬가지로 자녀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만 합니다(에베소서 6:4; 골로새서 3:21). 이러한 의무의 상호적인 속성은 부모의 행동을 견제하는 확실한 감독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제5계명의 범위는 부모의 차원을 넘어서 선생님, 목회자, 고용주와 우리보다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소위 우리의 손윗사람들을 다 포괄합니다. 이런 가르침이 오늘날 그야말로 구식처럼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를 사랑하시며, 따라서 가족과 국가에 분명한 위계질서를 세워 두시고, 자기 백성들이 그것을 올바로 인식하기를 기대하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인간 존재와 인간 제도에 자신의 권세를 위임하실 때, 폭군 정치를 정당화하는 데 그것을 사용하라는 자유를 주시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권세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나 인간의 제도가 하나님을 무시한 채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남용한다면, 그것에 복종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 곧 우리의 의무입니다. 사도들이 사도행전 5장 29절에서 표현한 대로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 합니다.

 

기도의 횃불

안전한 삶이 되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7-8).
 
사랑의 주님! 오늘도 안전한 하루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험악하여 언제 어떻게 위험한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곳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곳곳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의 삶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사오니,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시기 원합니다. 어느 순간에 사방으로부터 우겨 쌈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혹여, 원치 않는 위험한 일을 당하거든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게 아여 주시고, 주님께 도우심을 구함으로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혹여,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거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해를 당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두려움에 떨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모든 위험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으로 관을 씌우시고 두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오늘도 두려움 없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삶의 최고의 기준은 감사의 능력
 
세계적인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모든 책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꼭 하나 갖고 싶은 책이 바로 "욥기"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욥이 곤욕과 질고를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보고 그의 위대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인간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감사는 위대한 교양의 결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이 감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감사의 경험과 감사의 표현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음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으며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인의 삶 최고의 기준은 바로 감사의 능력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