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51번째 이야기
밥은 따뜻한 사랑입니다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밥 먹어라. 씻어라. 일찍 자라! 보통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똑같이 하는 말이지만 저는 그런 간섭이 싫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성인이 된 후 무작정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고, 일 년에 명절 때나 겨우 어머니를 찾아뵙곤 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나요? 그렇게 저에게 어머님의 존재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는 사실까지도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이미 증상이 많이 진행되어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계셨습니다. 예전에 그만 자고 일어나서 밥 먹으라며 제 등짝을 후려치던 활기 넘치던 그때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요? 식사 시간이 되어 간호사들이 이끄는 대로 요양원 식당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저는 어머니에게 음식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당신의 손에 쥐여 준 숟가락을 저에게 불쑥 내밀며 말했습니다. "밥 먹어야지." 어머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때처럼 저에게 따끔하게 말씀해 주세요." 영원할 것 같은 시간도 돌이켜보면 찰나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효도해야지.. 하지 마십시오. 부모님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길지 않은 인생,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마음껏 사랑하며 사는 새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
믿어준 덕분에! “선생님, 저 수호예요. 기억하세요?” 퇴근길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익숙한 길을 지나고 있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순간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어머나, 수호야! 이게 웬일이니? 그동안 잘 지냈어? 요즘 어떻게 지내니? 아직 그 동네에 살아? 다른 애들이랑 연락해? 동생도 잘 있고?”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15년 전, 저는 어설픈 6학년 담임교사였고, 수호는 우리 반 아이였습니다. 3년 차인 저는, 의욕에 차서 아이들에게 교육과정에 없는 전 과목 문제풀이까지, 입시학원을 방불케 하는 학습량을 제공했습니다. 학급경영도 잘하고 싶어서,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교사들의 연수를 찾아다니며 여러 활동을 습득해서 수업에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반은 성적이 오르기는커녕,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반 아이들이 가정집에 우유를 던지는 바람에, 경찰이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학생 다섯이 무단결석해서, 교감선생님과 함께 온 동네를 뒤진 적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수호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보면서 될성부른 나무라고 칭찬합니다. 비록 공부는 못해도 내면이 단단한 아이가 될성부른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악의 없이 행동하는 수호가 저에겐 그런 아이였습니다. 넘치는 호기심에 가끔 도를 넘는 장난을 치지만, 금세 잘못을 인정하고 조언을 수용할 줄 알았습니다. 인정 많고 재치가 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습니다. 수호는 "학창 시절에 각종 사건 때마다 자신을 믿어준 제가 고마웠다"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서투른 초보교사인 제가 한 것은 믿어준 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고군분투한 것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것이 아이의 성장에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하유정) 하유정 님은 비록 공부는 못해도 내면이 단단한 아이가 될성부른 나무라 생각하고, 그런 수호를 믿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대응입니다. 말썽을 부리면, 우선 야단치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대처방법입니다. 하건만, 문제를 일으킨 아이의 내면을 보고서, 야단치기보다는 믿어준다는 것이 보통 내공이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감정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이성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다음세대를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올바른 어른이 되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
긍휼의 렌즈로 볼 때② 예수님은 곧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셨기 때문에 "울지 말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누가복음 7:14-15). 예수님이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다른 성경 번역본에서는 관을 들것이나 뚜껑이 열린 관으로 번역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지금처럼 측면과 뚜껑이 있는 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관은 그냥 시체를 올려놓는 평평한 나무판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무판 위에 올려져 있던 시체를 만지셨습니다. 이는 어떤 경우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절대 넘지 않는 선을 넘으셨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500개 이상의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 법 가운데 하나는 시체는 물론이고 시체가 닿은 어떤 것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체는 부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진 사람도 부정해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청년을 만지셨습니다. 분명 군중은 그 충격적인 광경에 침을 꿀꺽 삼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어서 훨씬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죽은 시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눈을 뜬 것입니다! 예수님의 만지심이 그를 되살렸습니다. 긍휼의 행위가 일으키는 파급효과를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하나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넘칩니다. 아들이 치유되었지만 어머니에게도 극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과부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없는 여자는 돈을 벌기 위해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여인에게 딸들이 있다면 돈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딸들도 엄마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인의 아들을 만져 되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을 어머니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단순히 아들을 돌려주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희망을 돌려주셨습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아무런 희망도 없던 여인이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눈을 뜨고서 "예수님, 주님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게 되와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예수님이 보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느끼신 것을 느끼며 무언가를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차별 없는 사랑 공동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야고보서 2장 1-1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야고보는 차별 없이 사랑을 실행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라고 교회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7절의 "아름다운 이름"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가리킵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해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택해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게 하십니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라도 범하면 율법 전체를 범하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 차별은 나는 긍휼을 받을 일이 없는 자라고 여기는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1-7절). 세상은 수많은 잣대로 사람을 차별합니다. 입는 옷, 가진 물질 등 눈에 보이는 조건으로 강자와 약자를 구별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는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차별고 맞서 싸우셨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하는 바른 자세를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차별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형제들입니다. 물질적으로 궁핍하더라도 믿음에는 부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화려하게 치장한 부자에게는 좋은 자리를 권하고, 남루한 차림의 가난한 자는 홀대하는 일이 야고보 당시 교회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듯, 성도는 사회적 지위나 재산 등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또한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행위도 주님의 성품과 상충됩니다. 교회 안에서의 차별은 복음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차별 없는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로마서 3:22) 마땅히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차별하는 것은 범법 해위다(8-13절). 차별하는 마음으로 연약한 이를 멀리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주님도 멀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도 있습니다. 율법은 모든 계명을 준행하다가 그중 하나라도 어기는 사람을 범법자로 규정하니다. 야고보는 이런 사실에 근거해,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레위기 19장 18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어긴 범법 행위라고 강조하여 말합니다. 나와 남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마가복음 12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최고의 계명이기에 이를 범한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긍휼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긍휼에 인색한 사람은 13절, 마지막 날에 "긍휼 없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긍휼이라는 "천국의 표정"을 다른 사람에게 동일하게 보이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그러하기에 교회의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열매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이유로 누구를 차별하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누궁게 어떻게 긍휼을 베풀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지 묵상합시다. "주님의 자녀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판단하고 가름하기 바빴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물질이나 신분에 갇히지 않고, 차별과 편견 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가난한 심령을 풍성한 긍휼로 채워 함께 하늘의 복을 누리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사랑과 긍휼로 이웃을 돌아보게 하시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의 삶을 드리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이 말하는 긍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동일시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고통과 고난을 겪는 형제가 있다면, 그 형제의 입장에서 같이 느끼고, 같이 보고, 같이 말하고, 같이 행동해 주는 것이 성경적 동일입니다. 그 형제와 같은 처지가 되어 도와주는 것이 긍휼을 베푸는 행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동일시를 "감정 이입"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는 나를 타인의 입장에 두고 그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 자세를 뜻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휼은 여기까지입니다. 같은 마음을 가져 주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긍휼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긍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며, 머리에 심겨 가슴에서 꽃이 피고, 손과 발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긍휼은 대상이 누구냐를 따지지 않으며, 일방적이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긍휼이 필요하기에 모두에게 긍휼을 나누어야 합니다. 긍휼은 연약한 가운데서 베푸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하기에 긍휼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도우면서 공동체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긍휼의 영성은 완전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향해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면서, 여전히 자신도 긍휼의 은혜 아래 있음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팔복/유재명 목사) |
성령의 인격성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격적이십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한 번도 육체를 가지신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으실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드 역시 육체가 없는 상태에서 인격적인 존재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기 동안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들로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격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격성을 믿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요한복음의 헬라어 원본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을 언급하실 때 강조형 대명사인 "에케이노스(ekeinos)"라는 말로 요한복음 14장 2절, 15장 26절, 16장 8절, 13절, 14절, 다섯 번이나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남성 대명사인 "그분"이 중성 명사인 "프뉴마(pneuma)"아 동격이라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입니다. 즉 신학이 문법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영향력이 아니라, 살아 계신 인격체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it)"이 아니라 "그분(he)"이십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성령을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소유하신 분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반적으로 인격의 3대 구성 요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생각에 대해 언급하면서(로마서 8:27), 그분을 감찰하시고, 가르치시고, 증거 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는데, 이런 일들은 모두 지성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또한 성령이 감정을 소유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그분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라는 명령에서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에베소서 4:30). 여기서 언급된 "근심하다"라는 헬라어 동사는 신약에서 42회 등장하는데, 각각의 경우 모두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오직 사람들만이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은 또한 의지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 뜻대로" 각각의 신자들에게 은사들을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합니다(고린도전서 12:11). 그분이 생각하실 수 있고, 근심하시며, 자신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이 완전한 인격체시라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부부를 위한 기도③ 주님, 부부가 성경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갈등을 해결하겠습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겠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되,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도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할 수 있도록 주님, 저희에게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 제가 제 남편을, 제 아내를 잘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저의 배우자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살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제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제 입장에서 판단하고 배려 없이 말했음을 회개합니다. 제가 제 아내의 어린 시절에, 제 남편이 살아온 삶의 시간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겠습니다.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제 남편의 아픔이 제게 느껴지게 하시고, 제 아내의 슬픔이 제게 느껴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저의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과 TV시청으로 저희 부부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켰음을 회개합니다. 이제 절제하겠습니다. 식사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지 않겠습니다. 무의미하게 TV 보는 시간을 줄이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서로 대화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부부가 함께 주님 앞에 기도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이제 매일 남편과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하겠습니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 됨의 축복을 누리겠습니다. 제가 먼저 가정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신앙의 모본이 되겠습니다. 주님, 저희 부부를 복 주시고, 저희 가정을 복 주시옵소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희생하고 용서하는 저희 부부의 삶을 보며 사랑하는 자녀들이 "엄마, 아빠, 저도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주님, 저희 부부를 복 주시옵소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정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나의 삶을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두 귀로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편안하게 숨 쉬는 것도 감사이고, 걸음마다 감사하고, 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감사하고, 하는 일마다 감사합니다. 큰 욕심부리지 않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주셨으니 순간순간 감사이고, 평생 감사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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