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48번째 이야기
변함이 없는 것 하루가 다르게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제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르게 변하거나 없어지기도 합니다. 너무나 빨리, 너무나 많이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이제는 무엇이 옛것이고 무엇이 신상품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4,000년 전에도 사용하던 비슷한 방식의 물건이 지금도 가정마다 보관되고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산입니다. 우산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중국 주나라 시절 도편수였던 노반이었는데, 하루는 정자에서 비를 피하다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습니다. 바로 움직이는 정자를 만들면 따로 정자가 필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는 대나무를 잘게 쪼개 만든 바큇살에 천을 덧대 우산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 발견된 조각이나 회화에 뙤약볕으로부터 파라오를 보호하기 위한 양산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 맞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왕이나 통치자의 권위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산이 언제 처음 쓰였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17세기 중엽의 그림인 김명국의 <기려도>에 우산이 그려져 있어서 그때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비가 오는 날 들고나갔다가 너무나도 쉽게 잃어버리는 물건인 이 우산과 양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형태가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그 기본 형태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 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변하는 것은 있어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저 우산같이 기본 틀은 변함이 없는 것이 나에게도 있는지 말입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나의 삶에서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싶습니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난한 구두장이 "세묜"은 아내와 함께 입을 털외투를 만들 양가죽을 구하려고 마을을 나섰습니다. 한 농부에게서 밀린 장화수선비를 받으면 양가죽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농부는 돈이 없다면서 푼돈만 쥐어줬습니다. 풀이 죽은 세묜은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길모퉁이 작은 예배당 앞을 지나다가, 알몸으로 쓰러져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습니다. 못 본 척하고 지나쳤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낀 구두장이는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낡은 옷을 입히고 장화까지 신겨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내 "마트료나"는 며칠 동안 먹을 빵 걱정을 하면서 남편을 기다리는데, 남편이 낯선 사내를 앞세워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털외투를 만들 양가죽도 못 구하고 술이나 마시고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식구들 먹을 음식도 모자라는데, 남편은 손님 접대할 음식을 차리라면서 타박까지 합니다. 하지만, "마트료나"는 소박한 음식을 차려내어 낯선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미가엘"이었습니다. 미가엘은 6년 동안 세묜과 마트료나 가족과 함께 살면서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숙련된 일꾼이 된 미가엘이 떠날까 봐, 세묜이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미가엘은 천사였습니다. “한 여자의 영혼을 거두어오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벌을 받아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던 겁니다. 하나님은 미가엘에게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어떤 모양,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살펴보라”라고 했습니다. 미가일이 영혼을 거둔 여자의 쌍둥이 딸들은 이웃의 친절과 사랑으로 잘 자랐습니다. 미하일도 한겨울 추위에 얼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세묜과 마트료나의 호의와 사랑 때문에 살아남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이 모든 것보다 앞서는 세상에서,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주었습니다. 연말연시,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우리 이웃에게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천사 미가엘이 말하기를 “내가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가던 남자가, 그리고 그의 아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했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놨습니다.(장동석) |
동정인가 긍휼인가? 예수님의 삶을 보면 긍휼을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긍휼은 누군가를 애처롭게 여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긍휼이 육체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만큼 강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진정한 긍휼의 증거는 "그래서"입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을 따로 메모해 둔 글입니다. "나는 아들과 자주 스키를 타러 다녔다. 주로 우리는 콜로라도 주로 가서 3-4일간 스키를 즐긴다. 로키산맥에서 스키를 타다 보면 사람들이 넘어져 심하게 나자빠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늘 안쓰럽고 딱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코로라도 주에 갔을 때 우리는 어느 때처럼 리프트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내 실력을 추월한 10대 아들에게 너무 빨리 내려가지 말고 능력의 범위 안에서 스키를 즐기라고 장황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들이 먼저 산 아래로 내려가서 나를 기다리면 우리가 만나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기로 했다. 마침내 정상에 이르니 악마의 코스와 지옥의 협곡 같은 친숙한 이름의 슬로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가 처음 탄 슬로프에서 내가 그 슬로프 명칭에 걸맞은 조심성으로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사이 아들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절반쯤 내려갔을까, 내 왼쪽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스키아 폴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아이고 딱해라!' 그는 완전히 뻗어서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안타깝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때 갑자기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아들?!' 순간, 나는 아들에게 미친 듯이 달려갔다. 가서 보니 쇄골이 부러져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내 반응은 '동정'과 '긍휼'의 치이점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쓰러진 사람이 낯선 사람에서 내 아들로 바뀌는 순간, 내 감정은 더 이상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내 가슴이 찢어졌다. 이런 강한 감정은 육체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줌렌즈의 순간이었다. 이제 그 아이를 돕기 위해서라면 내가 못할 일은 없었다. 그 순간, 아무도 나의 행동을 말릴 수 없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긍휼이었습니다. 신음하는 모든 사람이 그분이 아들이요 딸이었습니다. 긍휼은 우리의 무관심에 딱 맞는 해독제입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은 동정입니까 아니면 긍휼입니까? |
우매와 지혜가 좌우하는 개인과 국가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전도서 10장 12-20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우매자와 지혜자의 입술이 좌우하는 개인과 국가의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말은 은혜롭지만, 우매자의 입술은 자신을 삼키니 그 입의 결말은 미친 것입니다. 우매자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왕이 어리고 대신들이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에는 화가 있습니다. 반대로 왕이 귀족들의 아들이며, 대신들이 기력을 보호하는 나라는 복이 있습니다. 게을러 손을 놓으면 집이 셉니다. 심중에라도 왕과 부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과 국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매자의 특성(12-15절). 우매자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10장 3절처럼, 일상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노출합니다. 전도자는 12절,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삼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발라"에는 "파괴하다"라는 뜻도 함께 있습니다. 우매자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기에 13절, 결국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매자는 14절, 자신이 세상의 이치를 다 안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우매한 사람, 즉 지혜가 없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합니다. 그가 말이 많은 이유는 자신이 "지혜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장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자신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자신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잘 듣는 사람이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매함을 넘어 지혜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은 사람을 향한 입술은 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는 활짝 열는 것임을 명심합시다. 성도의 언어생활은 골로새서 4장 절,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같이 공동체에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우매, 그리고 나라의 미래(16-20절).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죄악과 방종의 삶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지혜는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힘입니다. 전도자는 어리석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와 지혜로운 왕이 통치하는 나라를 비교하며 지혜의 필요성을 설득합니다. 전도자는 어린 왕 즉 어리석은 왕과 탐욕스러운 신하가 권력을 잡은 나라는 16절,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가 된다고 말합니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아침에는 국정을 살피는 모임이 열리고, 잔치는 국경일 같은 특별한 날에 열릴 것입니다. 국가란 한 왕이나 권세자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의 나라는 아침을 방탕한 잔치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게으름은 결국 18절, 서까래가 내려앉고 집에 물이 새는 저주로 돌아옵니다. 반면 품성이 귀족 같은 왕과 선한 신하가 통치하는 나라는 국정 운영에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 17절, "정한 때에" 식탁을 차립니다. 부와 권력은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국민은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겸손히 말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는 언제인지, 또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신 부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깊이 묵상합시다. "개인과 국가의 경영을 우매가 아니라 지혜로 하라고 가르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심을 알게 하시옵소서. 입을 열 때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기 원합니다. 많은 말로 결국 망하게 되는 우매자의 길을 걷지 않도록 제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옵소서.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말이 아닌, 하나님 뜻에 합한 지혜로운 말을 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지도자의 자리에 있을 때에는 지혜롭고 겸손하게 국정을 운영하게 하시고, 일반 국민일 때에는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니다. 아멘!" |
시대의 고통을 품는 사람 이 시대는 거대한 아픔의 용광로 속에 빠져 있습니다. 누구도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저 자신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맛보는 것은 단순히 짜릿한 경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영적 권위를 부여하셔서 시대의 아픔과 고통 한가운데 들어가 민족을 일으킬 사명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통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말을 많이 하거나 책임을 떠넘기거나 희생양을 세우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 씨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시키십니다. 은혜를 받고 영권이 회복된 성도는 개인사에 매어 있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만 보지 말고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사람의 문제를 끌어안고 자신만의 다락방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로 승부를 걸며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이 시대의 리더입니다. 한국 교회를 비난하는 글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깊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지혜를 겸비하고 이 나라를 다시 살려 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끝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규현 목사) |
예수님의 중보와 재림 넷째, 예수니은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의 죽음, 강하, 부활 그리고 승천에 대한 언급이 분명하고도 확실한 역사적 사건들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네 번째 사건 역시 분명하고 확실한 은유적인 주장입니다. 하지만 은유라고 해서 해석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후 영광을 받고 계시기 때문에 거기에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분의 승리가 범우주적으로 인정되고 재림하실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마지막 다섯째, 예수님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리라고 믿는 이유는, 마가복음 14장 62절에서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른다고 마가복음 13장 32절에 이미 말슴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그 일이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에 예언들을 긴박하게 말씀하신 의도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깨어 있으라"라고 설득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막 13:33-37).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묵상할 때에,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부정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상상력을 가지고 각색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 지혜롭고 겸손한 자라면, 많은 부분이 신비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면서, 대신 주님의 재림이 인격적이고, 범우주적이고, 논란의 여지없이 명백하며, 영광스러울 것이라는 사실들만을 적어도 확실하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영관 중에 다시 오실 것이라"라고 니케아 신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주된 목적은, 남아 있는 구원의 모든 축복을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 주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사, 자신처럼 새롭고 영광스러운 몬을 입혀 주실 것이며(빌 3:21), 나아가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벧후 3:13). 그러나 사도 신경은 그분의 재림의 두 번째 목적을 심판에 맞추고 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라고 주장하셨으며(요 5:22, 27) 그의 사도들도 하나님이 이미 재판장으로 임명하셨고, 또한 그날도 이미 작적해 놓으셨다고 선포했습니다(행 10:42). 따라서 회개하고 믿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살후 1:9). 그러나 반대로 자기의 죄와 하나님의 분노를 피하여 예수님께로 숨는 모든 사람은 영원한 그분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
배우자를 구하는 기도③ 교제하는 가운데 진실한 마음으로 교제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는 것을 배우게 해 주시옵소서. 상대방에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상대방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덮어주고 용서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꿈꾸며 준비하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가정을 사모게 해 주시옵소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믿음의 가정을 소원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세워나가는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희생하고 용서하면서 천국 같은 가정을 세워나가는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준비된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을 세워가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만남을 계획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열심히 준비하게 하시고, 서로를 알아가는 사귐의 시간을 갖고, 아름다운 결혼을 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사냥 도구와 골프채 및 개 한 마리는 덤으로 드림"이란 광고가 났습니다. 광고를 보고 흥미를 가진 여성들로부터 수십여 통의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남편을 사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남편 말고 개만 줄 수 없냐는 사람부터 골프채만 줄 수 없냐는 사람들, 그리고 개와 골프채만 받겠다는 사람들만 잇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충고와 조언을 하는 사람들로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건강하게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라." 등의 메시지였습니다. 남편이 걸어 다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주부는 아마도 걸어 다니지 못하는 남편으로 인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고, 남편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는 여인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것의 고마움을 모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부부사이에 아내에 대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불평불만으로 타투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 아내에게,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해 보세요!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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