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50번째 이야기
거목의 상처 어느 마을에 몇백 년은 되었을 거목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보면서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나무는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수십 차례 산불의 위험도 있었고, 벼락을 맞는 고초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그 많은 위험 속에서도 긴 시간을 꿋꿋이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굳건한 나무가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 동안 당당히 서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말라죽었습니다. 당황한 사람들이 알아낸 원인은 작은 딱정벌레였습니다. 나무속 줄기를 갉아먹는 딱정벌레들 때문에 결국 나무 속살에 상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거목에 비한다면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작은 상처들이 조금씩 모이면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 것입니다. 사소한 것들도 하찮게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이 훗날 당신에게 매우 크고 소중한 것을 부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바로잡고 새로 고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 다른 사람들의 가치기준에 따라 저의 인생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하여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저의 인생을 잘게 조각내어서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이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라고 할 때, 코웃음을 쳤습니다. 자기들이 돈 없고 못 생기고 능력이 없으니,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살아보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입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저의 실속을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덕을 쌓는 것이, 결국은 저의 실속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살아보니, 제가 베푸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습니다. 제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을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행한 작은 선행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습니다. 어차피 세월은 흐르고, 지구에 중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 몸은 쭈글쭈글 늙어가고 살은 늘어지게 마련입니다. 제가 죽고 난 후, 장영희가 지상에 왔다가 간 흔적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지구상의 79억 인구 중에서 제가 태어났다가 가는 것은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덤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왕 덤인 김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덤이 아니라, 없어도 좋으나 있으니 더 좋은 덤이 되고 싶습니다.(고 장영희 교수)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물건을 사고팔 때에 원래 제 값의 물건 말고 그 위에 더 얹어서 주거나 받게 되는 것이 "덤"입니다. 그러니까 장 교수님은, 자신의 출생이 덤으로 태어난 인생이라고,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원래 태어날 사람으로 예정되어 출생했든지, 아니면 덤으로 태어난 인생이든지, 우리 개인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고 산,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살아가는 귀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이 바로 우리임을 잊지 마세요! |
긍휼의 렌즈로 볼 때① 예수님이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의 바로 앞 장인 누가복음 7장에 아들을 잃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누가복음 7:11-12). 오늘날 길거리에서 시체를 메고 가는 장례 행렬을 본다면 우리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볼 것입니다. 그런 일이 흔치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매우 흔했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죽었고, 사람들이 죽으면 으레 이런 장례 행렬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시체를 짊어지고 거리를 지나며 슬퍼 울었고, 먼저 떠나보낸 자식을 생각하며 아버지나 어머니가 행렬을 따라가곤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풍경이 매우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례 행렬 쪽에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기도하면 일생의 평범한 순간 속에서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평범한 나날을 긍휼의 렌즈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특별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기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날은 그저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누가는 "두 무리"를 언급합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함께 여행하는 무리였고, 다른 하나는 과부와 함께 가는 무리였습니다. 두 무리가 마을 어귀에서 합류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붐비는 곳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한 사람에게 줌인하자 그 많은 무리가 희미해지면서 사라졌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누가복음 7:13). 사건의 순서를 눈여보 보십시오. 첫째, 예수님이 과부를 보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연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죽음, 그것도 단 하나뿐인 자식이 죽어 슬퍼하는 과부를 보셨습니다. 당시 문화권에서는 직계가족 가운데 남자가 없으면 무시를 당하기 쉬웠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셨고, 그 감정은 육체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예수님은 "울지 말라!" 하시며 여인을 위로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초짜들이나 하는 실수처럼 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울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목회 상담학 기초에서나 배울 법한 상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셨습니다.(계속!) |
시험의 원인과 헛된 경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장 12-27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바로 분별해야 할 시험의 원인과 헛된 경건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시며, 오직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처럼 연약한 이를 돌보고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주님의 말씀에 든든히 서서 실천으로 옮길 때 그 참된 의미를 지닙니다. 시험당하는 이유(12-14절). 시험을 참고 견디는 사람은 복됩니다. "견디다"라는 뜻의 헬라어는 "인정받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는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연약한 인간이 시험을 끝까지 통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면 가능합니다. "사랑"이 믿음의 바탕이라면, "인내"는 믿음의 표현이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시험을 견딘 믿음의 사람은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시험은 우리의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박해와 같은 외부이 시험에 대해 교훈한 야고보는 이제 성도의 내부에서 오는 시험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시험받는 성도는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시험은 "유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의 유혹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또한 사람을 유혹하지도 않으십니다. 사람이 누리는 좋은 은사오 선물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과 죄악에 빠뜨린다는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좋은 것을 주시지만,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참된 경건(19-27절). 성도가 세상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풍성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욕망과 욕심은 창세기 3장 절, 죄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15절, "사망"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며 온갖 시험에서 승리한 성도는 12절,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진정으로 경건한 성도는 크게 세 가지 면에서 구별됩니다. 첫째, 19절, 말하는 것과 성내는 것을 적절하게 통제합니다. 무분별하게 자기주장과 자랑을 쏟아 내어 사람들에게 쉽게 분노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므로 삼가야 합니다. 둘째, 21-22절, 악을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준행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기만하는 자요 위선자입니다. 셋째, 27절,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성도가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부와 고아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험받을 때 하나님을 향해, 우리 자신을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묵상합시다. 또한, 특별히 경건함을 갖추도록 우리가 기도하며 훈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우리에게 향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하시며, 시험당함의 이유와 시험을 이기는 참된 경건에 대해 가르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욕심을 뿌리 뽑지 않으면 죄와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매일 하나님께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더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바라며 삶을 절제하고, 이웃을 돌보고 그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내게 하시옵소서. 특별히 절제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경건함을 훈련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경건함의 비결 죄의 유혹을 이기려면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정헤성을 확고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매일매일 내 안에 저장해야 합니다. 은밀히 이루어지는 죄의 진행은 우리를 죽음으로 끌어갑니다. 죄의 실체를 알고 죄의 진행을 막으려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내 안을 비추어 보고,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내놓고 죄와 싸워야 합니다. 매일 말씀으로 내 욕심과 죄를 쳐내는 것이 QT이며, 죄악의 목을 밟는 것이 QT입니다. 무절제의 목을 밟기 위해 식사량을 조금 줄이고, 게으름의 목을 밟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충동구매의 목을 밟기 위해 신용카드를 두고 외출하는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면 됩니다. 그 모습을 볼 때, 주위 사람들이 "이것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구나! 이렇게 죄와 싸우는 거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욕심과 혈기와 분노가 꿈틀댑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고 계신 것을 믿지 못하기에 우리는 0.5초를 못 참고 짜증과 화를 냅니다. 하지만 날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면, 처음에는 참지 못하던 일들을 조금씩 참아 낼 수 있게 됩니다. QT를 하면 할수록 영적 내공이 쌓이고 혈기가 잦아듭니다. 말씀 속에서 사랑의 주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경건함의 비밀입니다.(상처가 별이 되어/김양재 목사) |
성령님에 대한 신앙②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성령에 곤한 첫 번째 진리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삼위 중에서 셋째 위격이시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분 또한 영존하십니다. 즉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으며, 그것을 새롭게 하는 일에 함께 관여하고 계십니다(창세기 1:2; 시편 104:30).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기에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시편 139:7). 그래서 그분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것이며, 또한 진리임을 알면서도 반항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훼방하는 소위 신성모독입니다(마가복음 3:29). 그분은 성부와 성자에 의해서 보냄을 받으셨기 때문에(요한복음 14:16; 16:17)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똑같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그분에 대해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요한복음 15:26). 즉 그분의 신성이 영원히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그분이 또한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라는 니케아 신경의 진술은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각각의 삼위께 동일한 여오강을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이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부의 신격과 성자의 신격 그리고 성령의 신격을 모두 하나시다. 영광도 동일하시고, 위엄도 동일하게 영원하시다. 따라서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시다."라는 언급에 저 또한 동의하며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세상의 창조주요 주관자이며 아버지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
부부를 위한 기도② 주님, 평생 자녀들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느라 수고한 아내에게 수고했단 말 한마디 못 했습니다. 이제부터 고맙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이제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겠습니다. 결혼기념일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내가 더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아내가 저를 만나 행복하다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에베소서 5:22-24). 주님, 제가 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남편의 말을 무시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 남편에게 잔소리하지 않겠습니다. 자녀들 앞에서 남편을 험담하지 않겠습니다. 남편을 신뢰하겠습니다. 남편을 존경하겠습니다. 남편을 격려하겠습니다. 남편을 칭찬하겠습니다. 남편의 기를 살려주겠습니다. 남편의 지지자가 되겠습니다.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되겠습니다. 주님, 제가 남편과 성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성을 통해 남편과 더 깊은 애정을 나누겠습니다. 남편과 거룩하고 행복한 성생활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더욱더 현숙하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배우자를 바꾸려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대화를 기피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과거의 일을 다 끌어들인 것을 회개합니다. 배우자의 인격을 공격하고 배우자의 집안을 건드린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저희 부부가 성경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갈등을 해결하겠습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부부 모두의 자존심을 내려놓겠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소소한 축복들을 감사하라 비누, 치약, 칫솔, 샴푸, 화장실 변기, 샤워기, 욕조, 뜨거운 물, 주방 세제,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숟가락, 실내 화초, 운동화, 슬리퍼, 구두, 선글라스, 모자, 장갑, 목도리, 생일 카드, 푸른 하늘, 수첩, 담요, 파리채, 가족사진, 신선한 과일, 앨범, 액자, 컵, 따뜻한 옷, 점퍼, 책, 책꽂이, 컴퓨터, 깨끗한 이블, 달력.. 등등.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인생이란 원래 이런 것들이 이미 갖추어진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트에서 사 오는 것이라고 우리 머리에 주입시킨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수많은 이유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믿음, 가족, 먹을 것, 건강 등 거의 자동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을 쭉 훑은 뒤 더 말할 것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간단한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니까요!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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