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렌즈로 볼 때①
예수님이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의 바로 앞 장인 누가복음 7장에 아들을 잃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누가복음 7:11-12). 오늘날 길거리에서 시체를 메고 가는 장례 행렬을 본다면 우리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볼 것입니다. 그런 일이 흔치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매우 흔했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죽었고, 사람들이 죽으면 으레 이런 장례 행렬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시체를 짊어지고 거리를 지나며 슬퍼 울었고, 먼저 떠나보낸 자식을 생각하며 아버지나 어머니가 행렬을 따라가곤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풍경이 매우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례 행렬 쪽에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기도하면 일생의 평범한 순간 속에서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평범한 나날을 긍휼의 렌즈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특별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기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날은 그저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누가는 "두 무리"를 언급합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함께 여행하는 무리였고, 다른 하나는 과부와 함께 가는 무리였습니다. 두 무리가 마을 어귀에서 합류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붐비는 곳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한 사람에게 줌인하자 그 많은 무리가 희미해지면서 사라졌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누가복음 7:13). 사건의 순서를 눈여보 보십시오. 첫째, 예수님이 과부를 보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연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죽음, 그것도 단 하나뿐인 자식이 죽어 슬퍼하는 과부를 보셨습니다. 당시 문화권에서는 직계가족 가운데 남자가 없으면 무시를 당하기 쉬웠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셨고, 그 감정은 육체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예수님은 "울지 말라!" 하시며 여인을 위로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초짜들이나 하는 실수처럼 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울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목회 상담학 기초에서나 배울 법한 상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셨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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