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47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2. 27. 14:06

예림의집 2647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위대한 꼴찌

1990년 11월 2일, 3만 2천 명이 출전한 29회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꼴찌를 한 선수에게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55세의 여성 마라토너인 조 코플로비츠는 29시간 45분의 기록으로 뉴욕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우승자보다 약 27시간 이상 늦은 기록이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완주에 뜨거운 응원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실 그녀는 30년 전 중추신경계 질병인 "다발성 경화증"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기에 두 목발에 의지한 채 절뚝이며 초인적인 의지로 풀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대회 조직위는 일반 참가자들보다 4시간 이른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할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그녀는 달리는 내내 당뇨병으로 인해 2시간마다 멈춰서 혈당을 측정해야 했으며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고독한 레이스가 시작됐습니다. 장시간 목발을 짚어야 하기에 저려오는 팔, 몰려오는 졸음 등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버텨 결국 최종 목표인 완주를 달성했습니다. 완주 한 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록과는 상관없이 승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실하게 전진하면 반드시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이 마라톤의 교훈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라톤보다 훨씬 긴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있습니다. 완주의 과정에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만나게 되며, 때로는 길이 험하다고,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역경을 극복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좌절의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딛고 일어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힘들다고 아니면 늦었다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인생의 완주라는 목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어디서 았으며 어디로 가는가?

인상파 작품전시장에 있는 고갱의 대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작품 앞에서, 우리 일행 여덟 명이 주르르 서서 기념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갖고 있던 사진기가 수동이라,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촬영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촬영을 마친 후, 우리가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는 “뭘요. 아마 아주 자~알 나왔을 겁니다.” 하면서 한 번 싱긋 웃고 갔습니다. 며칠 있다가 사진을 찾으러 갔는데, 사진을 본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것은 우리 모두의 머리를 나란히 다 잘라 놓았고, 두 번째 것은 동생의 발만 크게 확대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것은, 제 머리가 조카 가슴에(그것도 거꾸로), 동생 허리는 조카 머리 위에 붙여놓은, 그야말로 괴기한 사진이었습니다. 분명히 사진기 다루는 솜씨가 좋은 사람이었고, 의도적으로 장난친 게 분명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인간성 자체가 크게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불쾌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고갱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맨 중앙에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사과를 따고 있는 아담의 모습이 있고, 그 주변에는 벌거벗은 채로 서로 눈을 흘기고 앉아있는 모습, 뒤돌아서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 찡그린 얼굴로 뭔가 들여다보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처럼, 고갱이 생각한 인간은 별로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한 세상 살다가 죽어가는, 다 똑같은 길을 가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주 작은 행복까지도 빼앗기 좋아하고, 서로 속이고, 눈 흘기고, 뒤돌아서 욕하는 인간들.. 제 옆에서 사진을 들여다보던 조카가 말했습니다.
“와, 이모! 이 사진들 짱 멋있어요. 그때 그 미술관에서 본 추상화 같아요. 추상화미술관 앞이라서, 그 아저씨가 일부러 이렇게 찍어주신 것 아닐까요?” 조카의 말을 듣고 보니, 전위예술사진처럼 머리 없이 나란히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었고, 거꾸로 박힌 제 얼굴은 샤갈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 그런가 보다! 우리를 예술적으로 찍고 싶으셨던 것 같구나!” 이렇게 해서, 우리의 미술관 방문은 예술적 사진으로 마무리됐지만,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장영희 교수) 

그렇습니다. 어차피 한 세상 살다가 죽어가는, 다 똑같은 길을 가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주 작은 행복까지도 빼앗기 좋아하고, 서로 속이고, 눈 흘기고, 뒤돌아서 욕하는 인간들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과학적으로는 결코 밝혀낼 수 없습니다. 다만, 종교적 신념으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인간은 하나님에서 왔고, 죽은 후에는 다시 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에 대하여,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다면, 그리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겁니다!

 

예림단장 칼럼

내가 긍휼이 많은 사람인 줄..
 
지금 우리가 느끼는 주된 감정을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을 꼽겠습니까?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은 약 6,000에서 34,000가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늘 방송에서 34,000가지 감정을 다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로 느끼는 감정을 굳이 우리 스스로 찾을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 자기감정 상태를 잘 모르겠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들이 섣불리 대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짜증"이나 "성질"이 많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주로 느끼신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어 사복음서를 찬찬히 정독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함, 기쁨, 분노, 답답함, 역겨움, 슬픔, 외로움, 거부감을 경험하셨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성경에 가장 많이 나타난 예수님의 감정은 바로 불쌍히 여김, 즉 "긍휼"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이 감정은 자기중심적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주로 특정한 순간에 우리 자신이 경험하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주된 감정은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내가 슬픈 드라마만 보면 울 정도로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놀립니다.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보여 주는 공익광고만 봐도 눈물을 훔칩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찢어집니다. 오랫동안 나는 긍휼을 이런 감정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내가 긍휼이 많은 사람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에서 예수님이 긍휼을 보이신 상황들을 조사하다가 그분의 경우에는 불쌍히 여기는 감정 이후에 반드시 한 가지 접속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로 진행됩니다. 마태복음 20장 34절에서 예수님은 두 맹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스 그들의 눈을 만지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41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 뒤에는 언제나 행동이 따랐고, 그로 인해 놀라운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복음서들에서 한 번에 한 사람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예수님의 긍휼에서 비롯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저는 긍휼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다음에 무엇인가를 행해야 합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예측 불가능한 인생살이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전도서 9장 11-18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서 전도자는 예측 불가한 인생살이 속에서 지혜자가 당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14절, "흉벽"은 성을 공격하기 위해 높이 쌓는 토성을 말합니다. 시기와 기회는 모두에게 임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해, 새들이 올무에 걸림같이 홀연히 임하는 재앙의 날에 걸립니다. 가난한 지혜자가 성읍을 건져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니, 가난한 자의 지혜는 멸시받습니다. 지혜가 무기보다 낫지만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뜨립니다. 그리스도인이 의지할 분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시기와 기회를 알 수 없는 사람(11-12절).
하나님이 주신 삶을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흥하라는 유혹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세상은 예외가 가득한 곳입니다. 전도자는 11절, 다섯 가지 사례를 들어 세상에서 발견되는 불확실성을 설명합니다. 세상에서는 빠른 경주마가 먼저 도착하는 것도, 강한 군사가 승리하는 것도, 지혜자가 양식을 얻는 것도, 명철한 사람이 재물을 누리는 것도, 지식인이 은총을 받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능과 실력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이 그분의 주권 아래 그 시기와 기회를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12절,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예측하지 못하는 지혜의 한계를 물고기와 새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은밀히 설치한 그물가 올무에 물고기와 새가 걸리듯, 사람도 은밀히 찾아오는 재앙에 걸리는데 사람의 지혜로는 그 시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다, 능력이 있다 자신을 자랑할지라도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자신의 눈을 멀게 하는 독약과도 같습니다. 오로지 겸손한 자가 되어서 그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가 위축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가난한 지혜자 이야기(13-18절).
지혜는 분명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전도자는 17-18절에서,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들이 어리석은 왕의 강한 명령보다 낫고, 지혜가 무기보다 우월한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전도자는 지혜가 지닌 태생적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14-절에 걸쳐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강한 왕이 어느 작은 성을 침공할 때 가난한 지혜자가 그 성을 건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가난한 지혜자의 이야기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 앞에서는 지혜도 무기력할 뿐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는 것보다 죄 고백이 우선입니다. 전도자는 성읍을 건진 지혜자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힘보다 지혜가 필요함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힘보다 강한 지혜도 죄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죄인 한 사람은 많은 좋은 것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누룩 같아서 기회만 있으면 커지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지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자기 죄를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죄성을 인정하며, 편견 없이 분별하도록 주님의 도움을 간구할 일은 무엇인지 마음 깊이 묵상합시다.
 
"예측 불가능한 인생살이 속에서 오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뜻하고 계획한 일이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으로 일관했던 우리의 미성숙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일상을 조급함으로 채우지 않고, 소망과 기대감으로 채우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말씀에 기초를 세우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강의 현장에서 가끔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자녀의 어머니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다 이루었는데, 다만 믿음이 아쉬워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도 사모님 애들처럼 믿음으로 자라 교회에 잘 다닐 수 있을까요?" 사람이 잘 나갈 때는 자기가 잘나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고난을 만나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전능자를 찾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위해 때때로 "인생의 채찍"과 "사람의 매"를 드십니다.
그러니 자녀가 어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원한다면, 고난을 주셔서라도 하나님이 그를 불러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안색이 바뀐 부인은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순된 모습입니다 자녀에게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믿음을 한쪽 구석으로 슬쩍 밀어 둡니다. 그러다가 뜻대로 성공을 잡으면 이제 더욱 완벽한 인생을 위해 믿음을 갖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리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장담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인생의 비밀 앞에 서면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무조건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릴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나 할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신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결국엔 주권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랑하려고 산다/최에스더 사모)

 

신앙생활 가이드

예수님의 강하, 부활 그리고 승천③
 
셋째,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셨다." 우리는 승천에 대한 이야기에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누가는 그것이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목격자들 앞에서 그 일이 벌어졌음을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9-11). 더욱이 승천을 "이륙"으로 간주하고 예수님을 최초의 우주 비행사라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조롱에 우리의 기초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성부께로 가실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더 많은 억측을 낳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눈으로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승천하신 이유는 자신이 우리들을 위한 계속적인 사역을 위해서 가신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이후의 사역은 성령님을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며, 재림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들은 더 이상 그분이 다시 나타나시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성령이 오실 것을 기다려야 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외면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하는 기도

배우자를 구하는 기도②
 
하나님께서 저의 배우자를 준비시키고 계심을 믿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는 사인을 주시고, 그것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마음의 확신이 섰을 때는 지혜롭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 교제 중인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서로를 알아가는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성적인 유혹을 잘 이겨내게 하시고,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게 하시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감정을 받아주는 행복한 만남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공부하겠습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사랑받는지 공부하겠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갈등을 다툼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잘 해결할 방법을 배우겠습니다. 특별히, 관계를 깨뜨리는 말을 하지 않도록 주님이 저희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헤어져야 할 관계에 놓인 커플이 있다면 서로 비난하거나 비방하면서 서로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 있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축복하면서 그리스도인답게 헤어질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결혼을 준비하기 전 먼저 우리가 부모님을 떠나 홀로 설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잘 세워나갈 수 있는 어른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교제하는 가운데 진실한 마음으로 교제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는 것을 배우게 해 주시옵소서. 상대방에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손가락을 두 개 주신 하나님께 감사
 
"나는 손가락을 두 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 손을 생각해 보면 아주 귀중한 보물이다!" 네 손가랑의 피아니스트 "희아(20)"가 열 살 때 일기장에 적은 말입니다. 희아는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으로 양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밖에 없고 지능도 낮습니다. 무릎 아래로 가늘게 달려 있던 다리를 세 살 때 수술해 다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희아는 어머니 우갑선 씨의 사랑으로 하루 10시간의 연습 끝에 세계에서 유일한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가 됐습니다. 희아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캐나다로 입양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년 후, 희아는 입양아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당당히 캐나다 땅을 밟았습니다. 캐나다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에 있는 세인트 막스 교회에서 가진 연주회에서 그이 연주는 많은 캐나다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는 "10개가 있었다면 아무도 신기하게 안 봤겠죠. 이런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