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44번째 이야기
예쁜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여보, 당신이 재영이 유치원에서 데리고 와줘. 난 오늘도 야근할 것 같아, 미안해." 유난히 피곤한 아내의 목소리를 전화로 듣고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저희 부부도 다른 가정처럼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야근이 늘어 피곤함에 지친 아내를 위해서 저는 오늘도 아들 녀석을 씻기고 저녁 먹이고 유치원 숙제를 차근차근 봐줬습니다. 겨우 설거지를 끝내고 한숨 돌리려고 TV를 켰는데 해외토픽에 미인대회가 나왔습니다. 마침 아내가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오더니 화려하게 치장된 세계 각국의 미녀들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 부자를 보고서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습니다. 무심코 변명하려는 순간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미인대회라는 게 뭐야?" 순간 당황한 나는 더듬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 그거는 그냥 예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여자에게 상 주는 거야.." 나의 대답에 아들은 엄마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왜 저기에 안 나갔어?" 그 말에 아내는 피곤함에 지친 표정이 단번에 사라지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 그리고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면 말 한마디에도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 진심이 담긴 손짓 하나로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보세요.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선물입니다. |
영원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할 때, 그 아픔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어쩌면 그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언젠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와 소망입니다. 아버지(고故 장왕록 교수)가 계시는 천안공원묘지 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바윗돌에 "나 그대 믿고 떠나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나온 인용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커다란 검정색 붓글씨체로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촌스럽고 투박한 말 같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다 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 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우리들 몫입니다. 아버지, 이곳에 오시고 나서 얼마 후에 거버 박사께 전화했습니다. 1950년대에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아버지를 가르치셨고, 퇴임 후 1980년대에는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계실 때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 말입니다. 올해 91세이신데도 아직 정정하시지만, 가끔 건망증이 심하십니다. 이번에 전화를 드리니까, 아주 반색하시면서 “아, 왕록아! 오랜만이로구나! 그런데, 영희는 죽었지?”하셨습니다. 제가 “선생님, 이름을 바꿔 기억하시네요!”하고 말씀드리니까, 거버 박사가 “참, 그렇지? 미안하다. 너희 둘은 모습도 말하는 것도 너무 닮아서 말이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습과 말하는 것은 닮은꼴이지만, 아버지의 재능과 부지런함, 그리고 명민함은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저는, 아버지께서 하신 일과 하시고 싶었던 일까지 모두 닮고 싶어서, 아버지께서 보셨던 것과 똑같은 강, 똑같은 하늘, 똑같은 길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영국작가 새무얼 버틀러는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요. 떠난 사람의 믿음 속에서,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뵐 때까지, 아버지의 믿음을 기억하면서, 성실하고 부지런히, 그리고 용기 있게 살아가겠습니다. 내일 뵈어요, 아버지!(장영희)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그 삶을 닮고자 했던 장영희 교수님, 비록 57세라는 젊은 나이에 소천하셨지만, 그녀가 남겨놓은 수많은 글들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아주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 언젠가는 두 분 장 교수님들처럼, 육신은 땅 속에 묻히고, 그 영혼은 하늘나라로 향하겠지요! 그 나라에 가기 전까지,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 모두 부단히 노력하고 힘써야겠습니다. 저는 중1 때 아버지를 보냈습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문뜩문뜩 아버지가 몹시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
현재 자리에 머물러선 안 된다③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것을 우리가 우연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 식당에서 우리의 테이블에 음식을 날라다 주는 종업원, 우리의 헤어스타일을 매만져 주고 있는 미용사나 이발사, 자녀의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우리 옆에 앉은 엄마나 할머니, 같은 동네 주민.. 그들을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하신 뒤 적시에 우리의 인생길로 이끄신 이들로 여기기 시작한다면? 빌립은 수레로 "달려가서"(사도행전 8:30).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빌립이 이 임무를 해낸 과정이 실로 본받을 만합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함께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에 관한 대화를 어떻게 진행할지 예수님께 배우게 될 것입니다. 빌립은 이것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빌립은 눈앞의 상황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빌립은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습니다(사도행전 8:35). 이 말씀처럼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예수 복음"입니다. 빌립은 자신의 윤리나 가치, 정치적 견해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켰고, 내친김에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라고 초대했습니다. 그 결과는?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사도행전 8:36-38). 세상에!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의 결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바로 이런 이야기를 계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려면 현재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집에서 나와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찾아가야 합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앞으로 달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
모순처럼 보이는 세상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전도서 8장 9-17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전도자는 모순처럼 보이는 세상을 이야기하며 세상사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악한 일이 속히 징벌되지 않으니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 담대합니다. 전도자는 하나니을 경외하는 자가 잘되고 악인은 잘되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의인이 벌을 받거나 악인이 상을 받는 헛된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세상만사는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속히 실행되지 않는 악의 징벌(9-13절). 우리가 주님의 지혜와 뜻을 신뢰한다면, 눈앞의 상황과 무관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악인들의 형통을 보면 혼란스러워합니다. 9-10절, 때로 사람을 해롭게 했던 권력자가 어떤 형벌도 받지 않은 채 평안히 죽어 무덤에 안치되기도 합니다. 이에 전도자는 악을 일삼고 불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11절,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현실에서 속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악인들이 담대하게 악을 행한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며 좌절하던 전도자는 12절 하반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라며 의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총을 확신합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죄인이 백 번씩 악을 행하고도 장수를 누리겠지만, 결국 악인의 삶은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현실에서 악인에 대한 심판이 지체되는 것은 오직 에스겔 18장 32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바로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지금도 악인에 대한 심판이 속히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지 묵상합시다. 지혜자도 모르는 하나님의 일(14-17절). 헛된 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사는 지혜는 하나님 안에서 "희락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순을 "헛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일상의 기쁨을 만끽하고, 노동을 통해 얻은 것에 만족하는 삶의 지혜를 권합니다. 모든 일을 알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성도는 헛된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가장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즐거움과 만족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14절, 전도자는 선악의 경과가 뒤바뀐 현실에 깊은 허무를 느낍니다. 그는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좌절하기보다 15절, 하나님이 주신 분복에 따라 수고해 얻은 결실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희락의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현실의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지혜자가 밤낮으로 자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정답은 얻지 못합니다. 사람은 모순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높으신 지혜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주어진 삶에 초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날마다 즐겁게 살기 위해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생각은 무엇인지 마음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의 통치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의인이 벌을 받고 악인이 보상받는 세상의 모순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한 적이 있음을 회개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인생의 이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무지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게 하시옵소서. 속히 실행되지 않는 악의 징벌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을 씻어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오늘날 많은 기독교 지도자는 기독교가 세상의 탄압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섬기며 다스리려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일단 부자가 되고, 좋은 학벌로 힘 있는 자리에 올라가야 세상에 부를 적절하게 나누어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일까요? 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일반 공동체라면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어 본 역사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들이 세상에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이 이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찌꺼기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구절 다음에는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는 문장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고지를 점령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날들을 깨끗하고,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세상은 두려워합니다.(끝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조영민 목사) |
예수님의 죽으심②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자기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였습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죄에 대한 공의로운 대가인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확실히 드러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따라서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면, 그것은 곧 그분이 우리 대신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당해야 할 처벌을 받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말하는 두 가지 증거를 생각해 봅시다. 첫 번째 증거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 2:4)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죄를 담당" 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그 자체로 설명이 다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장은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3:18)라는 증거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목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자신의 죽음이었습니다. 즉 이전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원인이 되었던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범죄자 대신 결백한 그분이 죽음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견디어야 했던, 하나님께 버림받는 암흑이야말로 우리의 죄로 인해 받아야 마땅한 바로 그 지옥의 형벌입니다. 바우링 한 가장 놀라운 말들 중에서 두 가지를 인용하자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죄를 삼으신 것"과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신 것 때문에, 우리 죄인들이 죄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21; 갈라디아서 3:13). 아들의 죽음 속에서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친히 우리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자유로운 용서를 제공하시기 위하여 그분이 친히 재판장이 되심과 동시에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되신 것입니다. 이로써 자신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도 신경의 마지막 부분이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는 말로 끝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 내용들이야말로 그분의 수난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도 천사들과 함께 영원토록 다음과 같이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요한계시록 5:12). 그렇지만 사도 신경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로 끝을 맺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구원 사역 이후에 일어난 다섯 가지 사건. 즉, 예수님의 강하, 부활, 승천, 좌정 그리고 재림입니다. 내일부터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①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선교사들을 보내주시고, 복음을 위해 피 흘렸던 수많은 신앙 선배들, 교회를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 나라를 지켰던 선조들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가 없었던 이 민족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시고 가난에 허덕이던 이 땅을 경제 대국으로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했던 믿음의 선조들을 기억합니다. 저들의 눈물과 부르짖음을 기억하며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구름 떼처럼 일어나게 하시고, 저들을 통해 이 나라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 속히 이뤄지게 해 주시옵소서.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세상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양보하고 손해 볼 줄 알게 하시고, 교회가 세상의 근심이 아니라 세상의 희망이 도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야!" 이 한마디가 그 어떤 말보다 보증이 되는 시대가 속히 오게 해 주시옵소서. 젊은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시고, 말씀으로 훈련된 청년들을 통하여 세계 선교의 놀라운 역사가 이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영적 지도자들에게 성도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땅에 가득한 분열의 영을 몰아내 주시옵소서.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하나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서로를 존중하며 이 나라를 거룩하고 저의로운 나라 강하면서 자비로운 나라로 세워가는데 한 마음 한 뜻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동원 목사의 10가지 감사 1.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 된,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은총에 감사. 2. 나 같은 남자가 명자 만나 결혼하여 남편 되고 아빠 된,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감사. 3. 나 같은 웅변대회 단골 낙제생이 설교자로 부름 받음에 감사. 4. 내 한 몸 추스르기 어려운 인생이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목사가 된 감격적인 사실에 감사. 5. 나 같은 사랑에 굶주려 살아온 걸생이 뭇 성도의 사랑을 먹고사는 황송한 사실에 감사. 6. 10대에 꿈을 잃었던 소년이 50대에 10대보다 더 가슴 설레는 꿈을 꾸고 사는 꿈만 간은 사실에 감사. 7. 나 같은 수원 촌놈이 세상이 좁다고 싸돌아다니며 온 지구촌에 복음을 전하게 된 만화 같은 사실에 감사. 8. 나 같이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자란 인생이 온 세상에 그득한 친구들을 갖게 된 기적 같은 사실에 감사. 9. 나 같은 죄짓기 십상인 타락 인생이 유명세 덕분에 몸을 도사리며 근신하도록 특별히 배려된 사실에 감사. 10. 나 같은 편지 쓰기조차 게으른 인생이 인터넷 덕분에 단번에 지구촌 성도 곁으로 다가설 수 있는 편리한 사실에 감사.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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